• 지난 3월 행정도시특별법 통과로 당이 내홍을 겪을 당시 구원투수로 등장해 10개월여동안 박근혜 대표와 함께 당 지지율을 40%까지 끌어올린 한나라당 강재섭 원내대표가 30일 원내대표직을 사퇴했다.

    이미 지난 9일 사학법 개정안의 본회의 통과 직후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의사를 표명한 바 있는 강 원내대표는 열린우리당이 30일 본회의를 통해 2006년 예산안, 이라크 파병연장동의안 등 굵직한 현안을 단독강행처리할 뜻을 밝힘에 따라 더 이상 자신이 원내대표직에 있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강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기자간담회를 열고 그동안의 소회를 털어놓았다. '도중하차'라는 불명예 퇴진으로 자신의 대권 가도에도 상처와 오점을 남긴 만큼 이날 기자간담회 자리가 상당히 불편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강 대표는 "나는 이상하게 그만둘 때 항상 기분이 좋다. 지금 기분이 좋다"며 속시원한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오히려 "여러분께 담배를 끊겠다고 약속해 놓고 못끊은 것 죄송하다. 내년에는 노력하겠다"고 농담까지 건넸다.

    "여당이라면 집권철학 있어야지, 꼼수정치 그만해라"

    강 대표는 그동안 여당과의 협상테이블에서 느낀 점을 밝히며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는 "여당이 오늘 단독국회를 한다고 한다. 여당은 이제 이런 꼼수정치를 그만했으면 한다"며 "열린우리당은 필요할 때는 이당 저당 끌어들였다가 뱉어버리는 아주 기회주의적인 정당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여당이라면 적어도 집권철학이 있어야 하고 그 철학에 의해 일관성 있게 행동해야 하는데 현안마다 이당 끌어들이고 저당 끌어들이고 하는 꼼수정치를 하고 있다"며 "이런 식으로 정치하면 우리나라 정치는 실종할 수밖에 없다"고 충고했다.

    이어 "여당은 지난 몇년동안 광란의 정치를 했다"며 "집권 때도 광란으로 표를 모았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답게 정치를 하지 못했다"고 지적한 뒤 "지금은 기고만장하지만 결국 역사의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근혜 겨냥 "멀리 보는 습관 가져야"

    강 대표는 사학법 반대 장외투쟁에 '정치적 사활'을 걸고 있는 박 대표에 대해서도 우회적으로 충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는 "당직자를 맡다보면, 과거에는 무심하게 지나치던 일도 세밀하게 들여다보게 된다"며 "주위에서 계급을 보고 여러 가지 잔글씨로 된 서류를 가져와 속삭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돋보기를 쓰게 되고 돋보기를 쓰면 먼 곳이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고 비유했다. 높은 당직을 갖고 있을 수록 정치를 보는 시야가 좁아질 수 있음을 주장한 것이다. 

    이 같은 발언은 박 대표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사학법 반대 투쟁에서 '당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박 대표에게 멀리 볼 수 있도록 눈과 마음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이어 "당직자가 되면 속삭이는 말과 잔글씨에 현혹이 되고 먼 곳이 잘 안보일 수 있다"며 "나도 그렇고 노 대통령도 그렇고, 계급장을 붙이려면 잔글씨에 현혹되지 말고 미래를 봐야 한다. 멀리 보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합의 정치위해 노력 많이했다. 평가는 여러분이 해달라"

    그는 "국회도 가능하면 파행하지 않고 때로는 양보도 해가면서 통합의 정치를 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을 했고 때론 당의 동지들로부터 질책도 많이 받았지만 나름대로 상생의 정치를 위해 노력했다"고 소회를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내 공과에 대해 내가 얘기하면 촌스럽기 때문에 여러분이 평가해달라"고 덧붙였다.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강 대표는 "이제 국민중심, 소비자중심의 정치를 하는 데 앞장서겠다"며 당의 여러 가지 일에 백의종군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앞으로의 대권행보를 묻는 질문엔 "지금 그런 얘기를 하면 타이밍이 맞지 않을 것 같다"며 대답을 피했다.

    강 대표가 사퇴함에 따라 임태희 원내수석부대표를 포함한 8명의 원내부대표단, 원내대표와 러닝메이트인 서병수 정책위의장을 비롯한 7명의 정조위원장단도 동반사퇴하게 된다.

    '사학법 반대 투쟁은 투쟁본부가 알아서 할 것'

    이처럼 당직자 대거공백으로 인해 자칫 사학법 반대 장외투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강 대표는 "후임이 결정될 때까지 임 수석과 서 정책위의장이 이끌어갈 것"이라며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는 사학법 반대 장외투쟁의 지속여부에 대해서도 "사학법은 정말 사악한 법이란 소신엔 변함이 없다"며"비록 사학법 통과를 저지하지 못했지만 한나라당이 확실하게 반대한다는 확신은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를 하다보면 뜻대로 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지만 어떤 철학과 어떤 입장을 갖는지가 중요하다"며 "사학법 반대투쟁도 투쟁본부를 만들어 하기 때문에 투쟁본부에서 알아서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간담회 자리엔 임태희 원내수석부대표와 서병수 정책위의장, 나경원 박순자 이재웅 의원과 차기 원내대표로 거론되고 있는 김무성 전 사무총장이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