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마크117'의 또 다른 문제작무한경쟁 현대 사회의 잔혹한 민낯'블랙박스'서 벌어지는 생존의 혈투6월 17~21일 서강대 메리홀 소극장
  •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짐승이 되리라." 

    검은 가지가 뒤엉킨 '숲'인지, 인간을 옭아매는 거대한 시스템의 '신경망'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그 한가운데 놓인 '붉은 새' 한 마리는 자유를 꿈꾸는 인간성의 마지막 흔적처럼 보인다. 연극 '서바이트'의 포스터는 무대가 열리기도 전에 관객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살아남기 위해 짐승이 된 자는 과연 살아남은 것인가."

    인간의 내면에 도사린 본능과 윤리적 경계 등을 주제로 매번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극단 '마크117(대표 서철)'이 또 한 번 도발적인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연극 '서바이트(SUR-BITE)''는 오로지 생존을 위해 남을 짓밟고 올라서는 현대인들의 어두운 민낯을 그려낸 작품. 특수 보안 조직의 요원이 되기 위해 극한의 면접에 내몰린 세 남자(이만우, 오동진, 전재훈)의 이야기를 다룬다. 

    일명 '분리수거장'이라 불리는,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고립된 공간에 갇힌 이들에게 '무고(無辜)할 수도 있는' 용의자를 고문하라는 최후의 미션이 던져진다.

    테러를 막아야 한다는 거창한 명분 아래 정의와 도덕은 허물어지고, 오직 특권의 상징인 '하얀 목걸이'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물어뜯는 '날 것'의 원초적 경쟁이 펼쳐진다.

    작품의 제목인 '서바이트(SUR-BITE)'는 '생존(Survival)'과 '물어뜯다(Bite)'의 합성어로, 쓸모를 증명하지 못하면 언제든 폐기처분되는 무한 경쟁 사회의 서늘한 이면을 함축한 말이다.

    '마크117'은 개막을 앞두고 수수께끼 같은 포스터 한 장을 공개했다. 

    포스터는 뒤엉킨 검은 수목과 그 사이에 고립된 붉은 새를 통해 작품이 던지는 잔혹한 질문을 선명하게 시각화한다. 

    메마른 나뭇가지가 우거진 숲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탈출구 없는 미로에 가까운 공간을 상징한다. 상단에는 늑대나 개를 연상시키는 실루엣이 보이고, 나뭇가지 곳곳에 동물의 형체처럼 보이는 윤곽들이 숨어 있다. 

    포스터에서 가장 시선을 집중시키는 지점은 중앙에 위치한 작은 붉은 새다. 전체가 흑백 톤인 이 포스터에서 오직 이 새만 붉은색을 띠고 있다. 이는 빠져나올 수 없는 덫, 혹은 경쟁 구조 속에 갇혀 서로를 물어뜯는 현대인의 초상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자유를 상징하는 새가 하늘이 아니라 검은 가지들 속에 갇혀 있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 새는 탈출을 앞둔 존재일까, 아니면 이미 사냥당한 존재일까.

    '서바이트'를 연출한 서철 '마크117' 대표(정화예술대학교 융합예술학부 연기과 교수)는 "이 포스터는 '인간이 짐승으로 변해가는 과정'과 '빠져나올 수 없는 경쟁 구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며 "도태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시스템의 사냥개가 되기를 자처하는 인물들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밟고 올라선 생존이 과연 진정한 생존인지 묻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이어 "포장된 이성이 무너지고 짐승들의 혈투만이 남은 텅 빈 무대 위, 세 남자의 처절한 연기 대결을 기대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 작품은 '블랙박스 극장'의 장점을 극대화해 관객으로 하여금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도록 하는 게 특징이다. 블랙박스 극장은 직사각형의 상자형 공간 속에 객석을 자유롭게 배치하는 가변형 극장으로, 보통 장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실험적 무대를 시도할 때 사용된다.

    '서바이트'는 직사각형 무대의 각 변에 카메라와 스크린을 설치해 동서남북에 위치한 관객들이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을 모든 각도에서 관찰할 수 있도록 했다. 

    화려한 무대 장치를 과감히 걷어낸 텅 빈 공간은 그 자체로 인물들을 짓누르는 거대한 시스템의 폭력을 상징한다. 

    관객들은 밀폐된 어둠 속에서 오직 살아남고자 발버둥 치는 배우들의 거친 호흡과 핏발 선 눈빛, 그리고 밑바닥을 드러내는 인간의 짐승 같은 민낯에 온전히 압도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잔인한 경쟁 구도로 내몰린 세 남자를 사방에서 지켜보면서, 자신 역시 이 시스템의 일부가 되고 마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서바이트'에는 서철 대표의 '페르소나'들이 대거 참여해 작품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철학과 박사이자 전직 사회운동가인 '이만우' 역을 맡은 배우 이승구는 '마크117'의 전작, '기억+지각x상상=표상'에서 '엥스트란트' 역으로 열연했다. 소극장 혜화당 대표인 이승구는 1993년 연극 '닥터지바고'로 데뷔해 영화 '바이스탠더' '걸음이 빠른 달팽이', 드라마 '더 박스' '푸른 날'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연출가로도 활동하며 연극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팔방미인 배우다.

    '기억+지각x상상=표상'에서 레제네 역을 맡았던 배우 김은혜('마크117' 부대표)는 이번 작품에서 '감시관'으로 분한다. '기억+지각x상상=표상'에서 '만데르스' 역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배우 김효진은 액팅코치를 맡았다.

    '서바이트'에서 '소장'으로 분하는 배우 이태리는 '마크117'의 유닛팀인 극단 '그릿807(GRIT807)'을 이끌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 문제의 세 남자 중 전직 용병(PMC)이자 정보국 공작원인 '오동진' 역을 맡은 배우 곽민호는 영화와 연극을 넘나들며 맹활약 중인 베테랑 연기자다. 최근엔 넷플릭스 '소울 메이트' '중증외상센터', 디즈니+ '나인 퍼즐' 등 OTT 작품들로 관객들의 눈도장을 찍었다.

    같은 배역을 맡은 배우 최원우도 tvN 시즌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연극 '와이파이' '이웃사람들', 뮤지컬 '비망' 등으로 얼굴을 알린 연기자다. 

    '전재훈' 역을 맡은 배우 이태현과, '심사관' 역을 맡은 배우 한서인은 다양한 작품에서 활발한 연기 활동을 하고 있는 차세대 기대주다.

    '서바이트'의 예술감독은 서 대표와 함께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는 임주현 정화예술대학교 융합예술학부 연기과 교수가 맡았다. 제작감독은 이나라 백석예술대학교 공연예술학부 연기과 교수, 무대디자인은 임민 디자이너, 조명디자인은 이차훈 디자이너, 음악은 민혜리 작곡가가 맡았다.

    시장경제, 디지털포스트(PC사랑), NGO저널, HUBOT, MARKRAM, ACTING LAB117 등이 후원사로 참여했다.

    시스템의 부품이 되기 위해 기꺼이 타인을 향해 이빨을 드러낸 현대인들의 자화상을 그린 '서바이트'는 오는 17일부터 21일 까지 서강대학교 메리홀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사진 제공 = 극단 '마크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