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이 참전 기억마저 진영 논리로 몰아"文정부, 中 영화 ‘1953 금성대전투’ 논란 후폭풍도 언급"6·25 예우, 4·19보다 낮아…정치권이 참전용사 현실 봐야"
  • ▲ 류재식 6·25참전유공자회 서울시지부 대표는 1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 류재식 6·25참전유공자회 서울시지부 대표는 1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잘못돼 있으니 그 아래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라며 "감사의정원은 극우 사업이 아니라 참전국과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억하기 위한 공간"이라고 말했다. ⓒ서성진 기자
    광화문광장에 들어선 '감사의정원'을 두고 범여권 일각에서 '극우 구애용 사업'이라는 비판을 내놓자, 6·25 참전유공자 측이 "정부 눈치를 보는 정치인들이 참전의 기억마저 진영 논리로 몰아가고 있다"고 울분을 표시하고 나섰다. 

    류재식 6·25참전유공자회 서울시지부 대표는 19일 뉴데일리와의 특별 인터뷰에서 "정부가 잘못돼 있으니 그 아래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라며 "감사의정원은 극우 사업이 아니라 참전국과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억하기 위한 공간"이라고 말했다.

    류 대표는 "6·25 참전유공자들은 보훈단체 중에서도 가장 낮은 대우를 받고 있다"며 "4·19, 5·18 유공자보다도 예우가 부족한 현실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참전용사를 기리는 일까지 보수와 진보로 갈라서는 것은 역사를 잊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 ▲ 6·25참전유공자회 서울시지부 사무실에 걸린 류재식 대표의 과거 군시절 모습들 ⓒ김승환 기자
    ▲ 6·25참전유공자회 서울시지부 사무실에 걸린 류재식 대표의 과거 군시절 모습들 ⓒ김승환 기자
    ◆ "잊혀진 전쟁이 된 6·25…참전용사 기리는 일이 왜 진영 문제인가"

    류 대표는 감사의정원을 "꺼져가는 6·25를 일깨워주는 조형물"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참전유공자 사이에서 6·25는 '잊혀진 전쟁'이라고 일컬어진다"며 "우리가 살아 있는데도 6·25가 잊혀지고 있는데 이제 우리 같은 사람들이 가고 나면 더 희미해질 것 아니냐"고 말했다.

    류 대표는 1950년 열여덟 살 나이에 학도병으로 6·25 전쟁에 참전했다. 이후 월남 파병을 다녀왔고 1980년대까지 군 생활을 이어가다 대령으로 전역했다. 올해 95세인 그는 70여 년 전 전장의 장면을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기억했다. 류 대표는 당시 전황을 두고 "전쟁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따질 형편도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북한군은 탱크를 앞세워 내려왔지만 우리는 맨몸에 가까운 상태로 버텨야 했다"고 회고했다.

    그의 몸에도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다. 류 대표는 중공군과 맞선 전투에서 총탄을 맞아 어깨뼈와 갈비뼈를 크게 다쳤다고 했다. 그는 "총알이 조금만 더 들어갔으면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라며 "그렇게 치열하게 나라를 지켜냈는데 6·25를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류 대표가 6·25의 망각을 심각하게 보는 이유는 학교 현장에서 마주한 경험 때문이다. 그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나가보면 '6·25가 뭐냐'고 묻는 경우가 있다"며 "북한과 싸운 전쟁이라는 사실조차 제대로 모르는 학생들도 있고 젊은 사람들 중에는 일본과 싸운 전쟁쯤으로 아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피란 당시 굶주림을 설명하면 "왜 라면이라도 끓여 먹지 않았느냐"고 묻는 학생도 있었다고 했다.

    류 대표는 감사의정원 준공식에 참석했을 당시를 떠올리며 "늦게나마 서울 한복판에 6·25에 대한 조형물을 만들어줬다는 데 감회가 깊었다"고 했다. 그는 "그 나라 사람들이 우리를 도와주러 오지 않았다면 우리가 오늘 이렇게 살 수 없었다"며 "참전국의 돌을 가져와 기둥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고 앞으로 더 채워나간다고 하니 대견하고 고마웠다"고 말했다.

    범여권 일각에서 감사의정원을 ‘극우 구애용 사업’이라고 비판하는 데 대해서는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류 대표는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6·25를 정치 프레임으로만 보는 것"이라며 "6·25 참전용사를 기리는 일이 어떻게 보수와 진보의 문제로 나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류 대표는 특히 감사의정원 비판이 정부 기류를 의식한 결과라고 봤다. 그는 "정부가 잘못돼 있으니 그 아래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라며 "지금은 정부 눈치를 보며 말하더라도 사람에게는 본심이 있는 만큼 언젠가는 감사의정원을 보고 고마움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 류재식 대표는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 중국 시선에서 그려진 6·25전쟁 영화의 국내 상영 문제를 두고
    ▲ 류재식 대표는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 중국 시선에서 그려진 6·25전쟁 영화의 국내 상영 문제를 두고 "이게 나라냐"라고 비판했다가 고초를 겪었다고 설명했다. ⓒ서성진 기자
    ◆ '이게 나라냐' 이후 말 아꼈지만…"6·25 예우, 이대로 맞나"

    류 대표는 감사의정원을 둘러싼 정치권 논란에 대해 말을 이어가면서도 여러 차례 표현을 고르는 듯했다. 선거를 앞둔 시점인 만큼 주변에서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중국 영화 '1953 금성대전투' 국내 상영 논란 당시 "이게 나라냐"고 공개 비판했다가 부담을 겪은 기억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였다.

    '1953 금성대전투'는 6·25전쟁 말기 국군과 중공군이 맞붙은 금성전투를 중공군 시각에서 다룬 영화다. 류 대표는 당시 이 영화의 국내 상영 움직임에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우리 시각으로 금성지구 전투를 제대로 다룬 영화도 없는 상황에서 적국의 시각으로 중공군을 미화한 영화가 국내에서 상영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고 했다.

    류 대표와 재향군인회 등의 반발 이후 논란은 커졌고 결국 영화의 국내 상영은 불발됐다. 그러나 류 대표에게는 당시의 후폭풍도 적지 않았다. 그는 "그때 '이게 나라냐'고 말한 게 기사화되면서 이목이 집중됐다"며 "자리에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문제가 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했다. 정부를 정면으로 겨냥한 발언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정치권과 지지층 일각의 곱지 않은 시선도 감수해야 했다는 설명이다.

    이어 류 대표는 보훈단체 안에서도 정치 시각에 따른 대우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며 6·25 참전유공자 예우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우리는 49만 원을 받는데 4·19 유공자는 50만 원이 넘는다"며 "나라를 위해 총을 들고 싸운 사람보다 조국에서 만세를 부른 사람들이 더 받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고 했다.

    류 대표는 5·18 유공자에 대해서도 "묘역과 시설이 국립묘지와 비교해도 훨씬 잘 갖춰져 있다"며 "그분들을 낮게 보자는 것이 아니라, 6·25 참전유공자들이 보훈단체 중에서도 가장 낮은 대우를 받고 있다는 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는 싸워서 이 나라를 지켜낸 사람들"이라며 "몸에 실탄을 지닌 채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도 있는데 예우가 이 정도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6·25 참전유공자들이 보훈단체 중 제일 끝에 앉아 있다고 느낀다"고 했다. 그러면서 "참전용사 예우는 부족한데 그 희생을 기억하자는 감사의정원마저 극우로 몰아가는 것은 맞지 않다"며 "정치권이 정말 6·25를 말하려면 살아 있는 참전유공자들의 현실부터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 ▲ 류재식 6·25참전유공자회 서울시지부 대표 사무실 한켠에 놓여진 공로·감사패들. ⓒ김승환 기자
    ▲ 류재식 6·25참전유공자회 서울시지부 대표 사무실 한켠에 놓여진 공로·감사패들. ⓒ김승환 기자
    ◆ "역사를 잊으면 미래 없다"…감사의정원 존치 호소

    류 대표는 감사의정원이 앞으로도 광화문광장에 남아 6·25를 기억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했다. 일부에서 전쟁기념관 이전 등을 거론하는 데 대해서는 "전쟁기념관은 6·25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라며 "임진왜란부터 여러 전쟁의 역사가 함께 있는 곳이고 6·25는 그중 한 귀퉁이에 들어가 있는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감사의정원이 없어질까 전전긍긍하는 게 본심"이라고 했다. 류 대표는 "시장이나 정부가 바뀌면 전임자가 하던 일을 없애려는 경우가 많다"며 "이 공간이 말썽의 씨앗처럼 취급되다가 사라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류 대표는 감사의정원이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다음 세대 교육의 장으로 활용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교육 현장에 나가면 학생들에게 감사의정원을 꼭 한 번 가보라고 말할 생각"이라며 "감사의정원을 보고 6·25 할아버지들을 생각해달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정치권을 향해서는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강조하며 "제2의 6·25가 오지 않게 하려면 우리 스스로 역사를 기억하고 각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류 대표는 외국의 전몰자 추모 문화를 예로 들며 "전승기념일에 돌아가신 아버지, 할아버지, 외삼촌의 사진을 들고 시가행진을 하는 나라들도 있다"며 "자기 조상이 나라를 위해 싸웠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도 그렇게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류 대표는 "감사의정원은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아니라 이 나라가 어떻게 지켜졌는지 알려주는 공간"이라며 "감사의정원을 넘어, 6·25를 잊지 않게 하는 역사의정원으로 남았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