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팔로워 200만 보유, 6월 4일 롯데콘서트홀 리사이틀 앞두고 서면 인터뷰연습 플랫폼 '토닉'부터 숏폼까지…클래식의 새로운 가능성 확장
  • ▲ 바이올리니스트 레이 첸.ⓒ데카 레코드
    ▲ 바이올리니스트 레이 첸.ⓒ데카 레코드
    "클래식 공연도 스포츠 경기처럼 관객이 함께 호흡하고 열광하는 살아있는 예술이어야 해요. 집에서 편하게 감상할 수 있음에도 시간과 비용을 들여 공연장을 찾은 관객에게 단순한 수동적 청취 이상의 경험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예술가로서 사명을 다하지 못한 것입니다."

    스무 살의 나이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를 우승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바이올리니스트 레이 첸(37). 오늘날 대중은 그를 '우승자'라는 타이틀보다 소셜미디어 속 '쇼츠 장인'이자 'IT 개발자'로 더 가깝게 느낀다. 완고한 클래식의 벽을 허물고 200만 팔로워와 소통하는 레이 첸이 오는 6월 4일 롯데콘서트홀 내한 리사이틀을 앞두고 서면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음악 철학을 전했다.

    첸은 클래식계에서 보기 드문 '소통의 귀재'다. 연습 장면을 라이브로 생중계하고, K팝이나 애니메이션 음악을 바이올린으로 편곡해 올리는 그의 행보는 보수적인 클래식계에서 전통적인 틀을 깨는 '21세기형 클래식 스타'라 불린다. 하지만 첸은 단호하다. 그에게 숏폼 콘텐츠는 단순한 유희가 아닌, 바이올린의 물질성과 감정을 수백만 명에게 전달하는 강력한 무기다. 

    "스크롤을 내리다가 우연히 접한 K-팝 멜로디에 '바이올린으로 이런 것도 돼?'라고 놀라는 그 찰나가 바로 클래식으로 들어오는 문이 열리는 순간이에요. 일단 문을 열고 들어오면, 알고리즘을 타고 어느샌가 바흐와 시벨리우스를 듣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클래식은 박물관 유리 너머의 유물이 아니에요. 강렬하고 살아 숨 쉬는 예술이라는 걸 단 몇 초 만에라도 보여주고 싶어요."

    바이올리니스트의 시작은 엉뚱하면서도 운명적이었다. 네 살 무렵, 부모님이 사준 장난감 기타를 턱에 얹고 젓가락을 활 삼아 연주하던 소년은 여덟 살 무렵 나가노 동계올림픽 초청 공연을 통해 인생의 목적을 깨달았다. "이 작은 나무 상자 하나가 나에게 세상을 열어주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하나의 계시였어요. 음악을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제 인생의 본질입니다."

    '21세기형 클래식 스타'라는 수식어에 대해 그는 담담하다. "저는 그저 제가 옳다고 믿는 일을 할 뿐입니다. 예술가는 주변 세상이 자신의 예술 세계를 만들어가도록 허용해야 해요. 만약 제가 100년 전이나 100년 후에 살았다면, 그 시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지금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연주했을 거에요. 사회의 일부가 되지 못하고 거품 속에 자신을 가두는 것은 진정한 예술가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첸은 팬데믹 시기, 온라인 연습 플랫폼 '토닉(Tonic)'을 직접 개발하며 IT 분야로도 활동 반경을 넓혔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서로의 연주를 들어주던 기억에서 착안한 이 앱은 현재 전 세계 음악인들의 '온라인 연습실'이 됐다. "음악은 함께할 때 더 의미가 있어요. 팬데믹으로 고립된 학생들과 아마추어 음악가들이 홀로 연습하며 느낄 외로움이 마음 아팠죠."
  • ▲ 바이올리니스트 레이 첸.ⓒ데카 레코드
    ▲ 바이올리니스트 레이 첸.ⓒ데카 레코드
    첸이 연주하며 느끼는 가장 순수한 즐거움은 '관객과의 연결'이다. 그는 연주자가 작곡가와 관객 사이의 매개체가 돼 모든 음을 전달할 때, 관객이 숨을 멈추고 연주자의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순간을 '궁극의 기쁨'이라 표현했다. "오늘날 관객은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되길 원해요. 제가 청중에게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이유를 주지 못한다면 제 사명을 다하지 못한 거죠."

    첸은 이번 내한 공연에서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그리그 바이올린 소나타, 바흐의 파르티타, 화려한 기교의 끝판왕인 사라사테의 '카르멘 환상곡'을 들려준다. 피아니스트 첼시 왕과의 긴밀한 호흡을 통해 고전과 낭만, 바로크를 넘나드는 음악적 대화를 즐기실 수 있다. 그는 이를 '코스 요리'에 비유하며 "관객들이 한 자리에서 다양한 음악의 맛을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어요"라고 했다.

    첸은 100년 뒤의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음악으로 시벨리우스와 코른골트의 협주곡을 꼽았다. 대담하고 예측 불가능한 이 곡들이 미래 세대에게도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용기를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다시 태어나도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다"는 첸. "스타트업 운영과 콘텐츠 제작 등 다양한 경험을 해보니 예술가로 사는 것이 인생 최고의 특권임을 확신하게 됐어요. 제가 걸어온 이 길이 모든 가능한 우주를 통틀어 가장 좋은 길이라고요. 힘든 순간이 있더라도 매 순간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것과 바꾸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