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학로서 노제 진행…유족·동료 100여명 참석후배들 '꽃밭에서' 추모곡 노래…길해연 "고인에게 연극은 가장 진실한 땅"
  • ▲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예극장 앞에서 열린 배우 윤석화의 노제에서 유가족이 영정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예극장 앞에서 열린 배우 윤석화의 노제에서 유가족이 영정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예술에는 지름길이 없어요. 쉬운 길도 없고요. 예술은 인생이 아니죠. 하지만 수많은 인생을 담고 있어요. 마술처럼 무대의 한가운데 오를 수는 없는 겁니다. 등장하고 마찬가지로 퇴장하는 거죠. 예술은 그 사이에 있는 거구요. 훈련과 기법, 무트, 용기만이 존재하죠. 나머지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에요. 예술이 없어도 내일 태양은 떠오르겠죠. 세상은 우리 없이도 돌아갈 수 있고, 또 돌아갈 거예요. 하지만 우린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왔다고 생각해요. 예술이 없던 세상에 비해 훨씬 더 풍요롭고 현명한 세상으로 말입니다." - 연극 '마스터 클래스' 중에서(1998년, 2016년 故 윤석화 공연 작품)

    '1세대 연극 스타' 배우 윤석화(1956~2025)가 대학로에서 마지막 작별을 고하고 천상의 무대로 떠났다.

    윤석화는 지난 19일 오전 9시 53분께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족과 측근들이 보는 가운데 향년 69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2022년 7월 13일~8월 13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햄릿'에 출연했으며, 그해 10월 뇌종양 수술을 받고 투병 생활을 해왔다.

    고(故) 윤석화의 영결식과 발인이 21일 오전 8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발인을 마친 운구 행렬은 고인의 흔적이 깊게 남아 있는 서울 대학로로 향했고, 한예극장 마당에서 노제가 진행됐다. 이곳은 고인이 2002~2019년 직접 운영했던 설치극장 정미소가 있었던 자리다.
  • ▲ 길해연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예극장(옛 설치극장 정미소) 앞에서 진행된 고 윤석화의 노제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한국연극인복지재단
    ▲ 길해연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예극장(옛 설치극장 정미소) 앞에서 진행된 고 윤석화의 노제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한국연극인복지재단
    오전 10시쯤 치러진 노제에는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배우 박정자·손숙·주호성·성병숙·박상원·남경주·우현주·이석준,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박명성 신시컴퍼니 예술감독, 손진책 연출가, 고희경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장, 이종규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 등 유족과 지인, 동료 선후배 예술인 100여 명이 참석했다. 운구차가 도착한 후 고인의 영정 사진을 품에 안은 아들 김수민 씨가 극장 앞에 섰고, 추모사가 이어졌다.

    길해연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은 추도사에서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무대를 삶의 중심에 두고 연극과 뮤지컬,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한 시대를 대표하는 배우이자, 연출가·제작자로 한국 공연예술계에 깊은 발자취를 남기신 분이다. 선생님께서 무대로 보여주신 삶에 대한 깊은 시선과 존재감은 수많은 관객에게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감동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윤석화 선생님에게 연극은 언제나 '가장 진실한 땅'이었다. 선생님은 연극이란 '대답될 수 없는 대답을 던지는 예술'이라 말하며 관객에게 질문을 건네고, 그 질문이 삶 속에서 계속 이어지기를 바랐다. 투병 중에도 무대를 떠나지 않으셨던 이유 역시 그 진실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라며 애도했다.
  • ▲ 2022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햄릿'에서 앙상블로 출연한 故 윤석화 배우.ⓒ신시컴퍼니
    ▲ 2022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햄릿'에서 앙상블로 출연한 故 윤석화 배우.ⓒ신시컴퍼니
    길 이사장은 마지막으로 "오늘 우리는 무대에 대한 열정으로 그 누구보다 뜨거운 연기 인생을 사셨던 한 명의 배우이자, 한 시대의 공연계를 이끈 위대한 예술가를 떠나보낸다. 그러나 윤석화 선생님이 남긴 무대와 질문, 그리고 예술과 사람을 향한 사랑은 한국 공연예술의 역사 속에서 오래도록 살아 숨 쉬며 후배 예술인들과 관객들의 길을 밝혀줄 것"이라고 말했다.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났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꽃이여.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추도사가 끝나자 고인이 무대에서 자주 노래했던 정훈희의 '꽃밭에서'를 최정원·배해선·박건형 등 16명이 불렀다. 이들은 고인이 2003년 제작한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의 공연팀이기도 하다.

    대학로를 울리는 노래 소리에 추모객들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고인의 남편인 김석기 전 중앙종합금융 대표도 딸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노래가 끝나고 모두가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박수로 배웅했으며, 추모객들은 한참이나 자리를 뜨지 못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안녕히 가세요"하고 소리치는 이도 있었다.

    박명성 신시컴퍼니 예술감독은 "고인이 연출로 참여했던 박정자 선생님 팔순기념 공연 '해롤드와 모드(19 그리고 80)'와 쓰러지기 전 출연했던 연극 '햄릿'을 함께 작업하면서 참으로 행복했다. 항상 뜨거운 열정으로 소통의 분위기를 띄워주신 분이셨고, 탄탄한 앙상블을 만들 수 있는 특별한 예술가였다"고 회상하며 "고인이 80이 되는해 '19 그리고 80'을 저에게 꼭 만들어 달라고 하셔서 '대환영입니다'라고 말씀드렸는데, 이제는 연극 작업을 같이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다"고 전했다.
  • ▲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예극장 앞에서 열린 배우 고 윤석화의 노제에서 동료들이 운구차를 배웅하고 있다.ⓒ연합뉴스
    ▲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예극장 앞에서 열린 배우 고 윤석화의 노제에서 동료들이 운구차를 배웅하고 있다.ⓒ연합뉴스
    1975년 연극 '꿀맛'으로 데뷔한 윤석화는 연극·뮤지컬·영화·방송 등을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연극 '신의 아그네스', '덕혜옹주', '딸에게 보내는 편지', '마스터 클래스', 뮤지컬 '명성황후'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백상예술대상 연기상을 네 차례 받았고, 제26회 동아연극상 연기상, 제8회 이해랑연극상 수상 등 명실상부 한국 연극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배우였다.

    1995년 자신의 이름 석화(石花)를 딴 '돌꽃컴퍼니'를 세우고 만화 영화 '홍길동'을 제작했다. 1999년에는 경영난을 겪고 있던 공연예술계 월간지 '객석'을 인수해 발행인으로 활동하며 공연 문화의 저변 확대에 힘썼다. 2002년 건축가 장윤규와 함께 서울 대학로에 소극장 '정미소'를 열어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품을 꾸준히 선보였다.

    1994년 결혼한 고인은 2003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아들과 딸을 입양하는 등 입양문화 개선에 앞장서 왔으며, 이에 2005년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2000년에는 제작과 연출로 활약했다.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를 연출했으며, 제작에 참여한 '톱 해트'는 영국 로렌스 올리비에상을 받았다.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의 초기 운영 기반을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제2대 이사장(2017~2020)으로 재임하며 연극인 복지 체계 확립에도 힘썼다.

    고인의 장지는 용인공원 아너스톤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연극계 발전에 기여한 고인의 공로를 인정해 문화훈장 추서를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