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캐즘 앞에서 갈린 포드와 현대차다음 승부처는 SDV … 소프트웨어 중심 모빌리티 방점
  • ▲ 부산 동백공원 이피트(E-pit) 전기차 충전소 전경ⓒ현대차
    ▲ 부산 동백공원 이피트(E-pit) 전기차 충전소 전경ⓒ현대차
    미국 대표 완성차 업체 포드가 전기차 캐즘 여파로 국내 배터리사 LG에너지솔루션과 맺은 9조6000억원 규모의 배터리 공급 계약을 위약금을 감수하면서까지 해지한 가운데, 현대자동차는 국내 전기차 생태계 조성을 위한 충전 인프라 확대 계획을 내놓으며 ‘극명한 온도차’를 드러내 관심을 끌었다.

    현대차그룹은 18일 내년 1분기까지 PnC 기술이 적용된 충전소를 현재 64곳에서 1500곳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LG에너지솔루션이 포드와의 수주 계약 해지를 공시한 지 하루 만이다.

    PnC 충전은 국제표준 기술로, 충전 케이블만 연결하면 인증과 결제가 자동으로 이뤄진다. 회원 인증이 필요한 기존 전기차 충전 방식과 달리 충전 편의성을 크게 높여준다. 복잡한 절차를 없앤 만큼 소비자의 전기차 이용 장벽을 낮추고, 전기차 보급 확대에도 기여할 수 있는 핵심 인프라인 셈이다.

    현대차는 내년 하반기부터 정부의 스마트 제어 충전기 보급 확대 정책과 연계해 완속 충전기에서도 PnC 충전이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정부와 함께 충전 인프라 혁신을 위한 노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전통 강자인 포드는 최근 전기차 부문에 투자한 195억달러(약 28조원)를 손실로 처리하며 전기차 투자 속도를 늦추는 대신 하이브리드와 내연기관 차량에 다시 무게를 두겠다고 밝혔다. 전기차 전환을 둘러싼 완성차 업체들의 온도차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현대차가 전기차 생태계 조성에 나선 배경에는 국내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자리한다. 올해 3분기까지 국내에서 판매된 친환경차 가운데 하이브리드(30만9529대)가 전기차(10만3371대)보다 더 잘팔렸지만, 신장률은 전기차가 전년 동기 대비 49%로 하이브리드(25%)보다 훨씬 가팔랐다. 하이브리드와 함께 전기차가 인기를 끌고 있단 의미다.

    무엇보다 현대차가 여유로운 행보를 보일 수 있는 결정적 배경은 이미 전기차 속도조절을 해오면서 중장기 전략을 짜왔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지난 9월 2030년까지의 로드맵을 제시하며 하이브리드(HEV), 현지 전략 전기차(EV),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 등 다양한 친환경 신차를 2026년부터 대거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소비자들에게 보다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면서 전기차 캐즘 등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복합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단 뜻이다.

    현대차는 전날 2026년도 정기 임원 인사를 마무리하고 내년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설 채비도 갖췄다. 이번 인사에서는 미래차 전략의 핵심인 연구개발 R&D의 양대 축인 R&D본부와 첨단차플랫폼(AVP)본부 리더를 교체하며 치열했던 고민의 흔적을 드러냈다. 인사에 담긴 메시지는 분명하다. 소프트웨어 중심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전환 가속화다. 탄탄한 하드웨어 기반 위에 소프트웨어(SDV) 경쟁력 강화에 나선 것이다.

    현대차는 테슬라와 GM 등 경쟁사에 비해 자율주행 기술 역량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미래차 핵심 기술인 자율주행 사업을 이끌던 송창현 현대차그룹 첨단차플랫폼(AVP) 본부장이 최근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현대차의 기술 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한층 커졌다.

    현대차는 이번 인사에서 송 전 본부장이 주도해온 SDV 개발 전략과 주요 프로젝트는 예정대로 이어가겠다고 밝히면서도 후임 인선은 보류했다. 성급한 결정보다는 신중한 접근을 택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독일 폭스바겐은 최근 창사 88년 만에 독일 내 공장을 폐쇄하는 상징적 위기를 맞았다. 중국 완성차 업체들과의 기술·가격 경쟁에서 주도권을 잃었다는 평가가 깔려 있다.

    포드의 전기차 후퇴와 폭스바겐의 공장 폐쇄는 단순한 불황 탓이 아니다. 변화의 방향을 잘못 읽은 기업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기술 전환의 흐름을 놓친다면 현대차 역시 예외일 수 없다. 기술 전환의 골든타임, 현대차가 놓치지 않고 미래차 경쟁의 주도권을 잡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