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다양성 내세워 자유민주주의 위협자칫 전체주의로 회귀할 수 있어민주주의와 평등의 이름으로 자유 억압하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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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 레몽 아롱 『자유와 평등』피에르 마낭 편집⋅해제, 이대희 옮김, 에코 리브르, 2023 ⓒ 에코 리브르
한국 학계-출판계-언론계 등 지식인 사회는 지나치게 좌파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좌파 지식인들이 담론을 장악, 한국 사회 전반을 좌경화시키고 있다.그런 좌경화에 맞서 싸우는 우파 인터넷신문 뉴데일리는《자유의 파숫꾼》임을 자임하고 있다. ① 자유민주주의 ② 자유시장경제 ③ 자유통일 이라는 사시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창간 20주년을 맞은 뉴데일리는《기업이 대한민국이다》라는 새로운 비전을 선포하고, 그 슬로건에 걸맞는 기획 시리즈를 준비했다.《책을 보다》연재가 그것. 매주 한 권의 책을 골라 소개-분석-비평하는 기획이다. 단순 서평 차원을 넘어 반(反)대한민국-반자유민주주의 세력과《담론 투쟁 / 이론투쟁》을 벌여나갈 생각이다.일곱번째 책으로 레몽 아롱의 『자유와 평등』(피에르 마낭 편집⋅해제, 이대희 옮김, 에코 리브르, 2023)가 선정됐다,필자는 서명구 한국자유회의 운영위원. 서명구 박사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성신여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통령 비서관, 국회의장 비서관 등을 역임했으며 통일부 정책 자문위원도 맡았었다.======================= -
- ▲ 자유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 서구 뿐 아니라 대한민국도 위기에 처해 있다. ⓒ GPT
《레몽 아롱(Raymond Aron)이 바라본 자유민주주의의 위기》■ 레몽 아롱 다시 봐야 할 이유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오늘날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심지어 무너지고 있다 는 우려가 심화되고 있다.그런 점에서 일찍이 20세기 한복판에서 이 문제와 정면에서 씨름했던 레몽 아롱(Raymond Aron)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최고의 학자, 언론인, 사상가로서 “20세기의 토크빌”이라는 평가를 받는 아롱은 “참여적 관찰자”로서 실로 여러 분야에 걸쳐 방대한 저술을 남겼지만, 여기에서는 그의 민주주의 정치관이 집약된 1978년 4월 4일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한 마지막 강연을 살펴보고자 한다.『자유와 평등』이라는 제하에 한국말로 번역된 짧은 소책자는 피에르 마낭(Pierre Manent)이 편집하고 해제를 붙인 것이다. (레몽 아롱 지음, 피에르 마낭 편집⋅해제, 이대희 옮김, 에코 리브르, 2023)■ 좌파 세상에서 자유민주주의 외치다저자는 자유를 규명하는 데 있어서 모든 사회에 적용될 수 있는 일반이론, 예를 들면 자연상태론 같은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다.그 대신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들, 다시 말해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인정⋅보장되는 자유는 어떤 것들인지를 파악하는 데서 출발하였다.전제조건 없이 역사가 건네는 손길을 받아들여, 정치 생활의 실질적 조건들 속에서 현실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실제 가능한 것들을 식별해 내려고 하였다.물론 존재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당대의 지배적인 의견을 중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는 결코 이에 동조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나아갈 방향의 기본 요소를 찾고자 했던 것이다.저자는 하이에크의 시장적 “자율적 질서”에 공감하고, 그와 함께 인간의 통치는 될수록 제한하고 법에 의한 통치는 늘린다는 자유주의 정치 이상을 갖고 있었다.그러나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유의 현실적인 “유보 조건”을 파고들었다.인간과 제도들은 미완의 것이며, 인간의 운명은 정치를 다루는 방식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다.그는 필연적인 진보를 맹종하는 결정론적 진화론 이나, 모든 역사는 그 자체로 가치를 갖는다는 역사적 상대주의 를 배격하였다.인간은 시간의 노리개도 지배자도 아니라는 것이다.저자는 이러한 방향에서 자유주의 정치는 합리성의 최고 기회를 제시한다고 보면서도, 정치를 다양한 형태와 체제에 따라 그 자체로 연구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
- ▲ 악수하는 아롱과 사르트르(1979). 오른쪽이 레몽 아롱. 사르트르는 중국공산당의 문화혁명을 찬양한 극좌 마르크시스트였다, 레몽 아롱은 레닌-스탈린의 소련과 모택동의 중국이 대변하는 공산사회주의를 누구보다 강하게 비판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옹호했다. 좌파가 득세한 당시 프랑스 지식인 사회는 레몽 아롱을 수구꼴통이라고 배척하고 사르트르에 열광했다. 하지만 소련이 붕과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사르트르는 추락하고 레몽 아롱은 부활했다. ⓒ 나무위키
■ 정치적 자유의 중요성오늘날 우리는 경제적 자유, 사회적 자유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그러나 아롱은 정치적 자유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다.정치적 자유들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국가를 통하여 여타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등 다른 자유들의 핵심적 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정치 공동체는 의무도 부과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개인에게 권리를 인정해주고 존중해 준다는 것이다.아롱은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그들이 만든 체제의 현실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한마디로 사회주의는 정치적으로는 전체주의를 의미한다.“생산수단의 개인적 소유는 부르주아 독재를 의미하며, 따라서 생산수단의 개인화를 타파해야 한다” 는 주장만 해도, 실제 공산주의 사회들을 단순히 관찰하기만 해도 대부분의 근거가 허물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혁명 이후에도 국가권력은 소수 즉 당에 의해 행사되었을 뿐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행사된 적은 결코 없다는 것, 그리고 그 소수는 시민사회마저도 지배함에 따라서 개인의 자유는 축소되었다는 것이다.반면에 저자는 자유민주주의는 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그는 무엇보다 오늘날 자유주의는 주로 전체주의의 반대로 규정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거기에서는 좋은 사회 그리고 진리와는 무관한 채 오직 투표를 통해 간접적으로 국가를 선택한다는 한계가 있다.그러나 이는 바람직한 자유를 모두 보장해 주지는 못해도 적어도 우리가 알게 된 자유를 박탈하는 극단적인 형태들은 피하게 해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다음으로 자유민주주의는 인간의 통치에 헌법의 원칙을 점진적으로 도입한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았다.물론 권력 행사에서 완전한 합법성의 보장은 역사에서 예외적으로 드물고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항상 유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이상은 여전히 존속하고 있고 때때로는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에 대한 오해와 자유민주주의의 위기이와 동시에 저자는 자유민주 사회는 커다란 한계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도 인정하였다.심지어 자유주의는 많은 이에게 억압의 본질로까지 간주되고 있는 것이다.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불평등 문제다.이와 관련하여 흔히 자유는 무엇을 할 능력이나 힘으로 정의되고 있는데, 저자는 그럴수록 불평등은 더욱 해결되기 어렵게 된다고 보았다.따라서 자유를 “힘의 평등”으로 볼 것이 아니라, “권리의 평등”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저자는 또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회를 전적으로 거부하는 다시 말해 권력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대두되는 현상에 주목하였다.이는 전체주의 사회를 거부한다고 하면서도 자유주의 사회를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 나타나는 것인데, 여기에는 “공동체”, “무정부” 로 정의되는 어떤 것이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고 보았다.이들은 공동체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찾는 사상에 집착하고 있지만, 문제는 긴밀한 공동체는 또한 아주 빠르게 전체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저자는 자유의 정치가 자유의 철학 문제로까지 이어지는 현상에도 주목하였다.자유는 인간이 무엇을 선택하는가의 문제로서 이는 의지, 이성의 작동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여기에는 “합리적 인간”을 전제로 할 때라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인간과 사회에는 비합리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서구 사회의 다수가 자유는 욕망의 해방 속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를 방해하는 모든 것 즉 국가, 권력, 모든 금지와 제도 등을 적으로 간주한다는 것 이다.법에 복종하면서 합리적인 법에 따라 스스로 통치하라고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성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고 욕망을 있는 그대로 따르라고 부추기고 있고, 그 결과 자유민주 국가들의 “도덕적 위기”가 발생하고 있다 는 것이다.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각자의 목소리를 선택하도록 허용하는 것 이외 다른 방법은 없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역사 속 사회들의 관찰자로서 저자는 그렇게 해서는 민주주의 체제에 안정성을 부여하기 어렵다고 의문을 제기한다.아무리 자유민주주의라고 해도 공동의 진실 그리고 공공재가 부재한다면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다.저자는 마지막으로 이러한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당시로서는 인류 가운데 작은 일부분 주로 구미 사회에 국한된 것이라는 점을 겸허하게 받아들였다.그 사회는 특혜 입은 사회로서 다른 국민과 사회에 영향을 미쳐온 “행복한 예외”라는 것이다.그러나 그 사회의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도 비관도 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역사적, 공간적으로 드물게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되, 오로지 자유를 사랑하면서 지금의 현실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려면아롱이 타계한 지도 벌써 40여 년이 지났다.그동안 공산주의가 몰락하였고 오늘날 자유민주주의는 커다란 위기를 맞고 있다.반세기 전 아롱이 씨름했던 민주주의 한계와 문제점은 오늘날 세계적으로 특히 우리 사회에서 더욱 심각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먼저 불평등문제를 놓고 극심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그러나 아롱이 지적한 바와 같이, 자유를 무엇을 할 수 있는 “힘의 평등” 으로 바라본다면 문제는 영원히 풀릴 수 없을 것이다.경쟁을 보장하되, 패자에게도 재도전 기회 부여 등 “권리”를 인정하는 방식만이 불평등문제를 완화 시킬 수 있을 뿐이다.자유는 어디까지나 “권리의 평등”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둘째, 우리 사회에서도 자꾸 “공동체”, “자치” 등을 내세우는 흐름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아롱이 지적한 대로 이미 시험과 평가가 끝난 공산주의를 내세울 수 없으니 이를 비틀어 “공동체” 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공동체 는 아주 풀뿌리 기초단계에서는 일정 부분 가능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정치체제 차원에서는 결코 지속 가능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역사의 경험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셋째, 오늘날 다원성을 주장하면서 특히 소수 약자의 권익을 강조하는 흐름에 대해서다.이는 기본적으로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그 전제로서 민주주의 체제의 안정과 지속이 담보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공동의 진리에 대한 어떤 합의(consensus) 같은 것이 필수적이라는 점이다.다원성(plurality)은 존중하되, 무조건적 다원주의(pluralism)에 함몰되는 것은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마지막으로 강조할 것은 아롱이 지적한 바와 같이 자유민주주의 자체는 역사의 필연도 우연도 아니라는 것이다.그것은 서구 사회에서 형성된 것이지만 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기도 한 것이다.다만 이는 자유를 소중히 여기고 지켜나가려는 명확한 인식과 각오가 있을 때만 지탱될 수 있는 인류 역사의 예외적 현실이라는 점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 ▲ 필자 서명구 한국자유회의 운영위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