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한반도 비핵화' 노선과 정합성 논란협상 레버리지 아닌 양보의 출발점 우려교류·정상화 앞세운 END, CVID와 충돌자율성 확대 구상, 억제력 약화 신호될 수도한미동맹 이완은 北·中 오판 키울 위험 높여
  • ▲ G20 정상회의 일정을 마친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 시간) 중동·아프리카 순방의 마지막 방문국인 튀르키예 앙카라로 향하는 공군 1호기에서 순방 기내 기자간담회를 하며 미소 짓고 있다. ⓒ뉴시스
    ▲ G20 정상회의 일정을 마친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 시간) 중동·아프리카 순방의 마지막 방문국인 튀르키예 앙카라로 향하는 공군 1호기에서 순방 기내 기자간담회를 하며 미소 짓고 있다. ⓒ뉴시스
    한미 연합연습 축소·연기가 남북 평화체제 구축의 '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이상주의적 접근법'이 북한식 '한반도 비핵화' 전략과 사실상 궤를 같이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대화의 선결 조건으로 방어적 성격의 한미 연합연습을 '핵 전쟁연습'이라고 규정하며 폐지, 나아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해 왔다.

    문제의 발언은 이 대통령이 아프리카·중동 4개국 순방 중 24일(현지 시간) 튀르키예로 향하는 전용기 내에서 연 기자 간담회에서 '긴장완화 노력의 하나로 한미 연합군사훈련 축소 등을 검토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이 대통령은 "북한이 가장 예민해하는 부분"이라며 "선제적으로 우리가 훈련 규모 축소나 연기를 검토하자는 주장도 일부에서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어떤 방향으로 갈지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운을 뗐다. 

    이어 "남북 간 평화 체제가 확고하게 구축되면 훈련을 안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며 "길게 보면 대한민국 방위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또 가급적 군사훈련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싸울 필요가 없는 평화 체제'가 되면 그때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돈이 드는 합동군사훈련을 안 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상황에 따라 (훈련 축소·연기는 평화 체제 구축의) 결과가 될 수도, 지렛대가 될 수도 있다"며 "당장 (둘 중 어느 쪽이 될지는) 말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이 평화주의적 이상주의의 차원에서 '전략적 활용'이라는 취지로 꺼낸 한미 연합훈련 축소·연기 카드는 북한의 오랜 요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김정은의 친동생인 김여정은 문재인 정부 시절 수차례 담화를 내고 "전쟁연습과 대화는 절대 양립될 수 없다"며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을 대미·대남 협상의 선결 조건으로 일관되게 고착화해 왔다. 

    김여정은 지난 7월 담화에서도 이재명 정부를 향해 "선임자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면서 방어적 성격의 한미연합연습을 "침략적 성격의 대규모 합동군사연습"이라고 규정했다. 전 세계 5위라는 한국의 재래식 전력은 북한의 핵 전력에 비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국이 방어적 성격의 한미 연합훈련을 협상 레버리지로 언급하는 순간, 지렛대가 아니라 양보의 출발점이 될 우려가 있다. 이 대통령의 접근법이 실제 협상 테이블에서 의도와는 반대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이유다.

    북한의 요구는 단순한 협상 전술이 아니라, 북한이 장기간 고수해 온 '한반도 비핵화' 접근법의 연장선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00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의 탈퇴를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수십년 간 국제사회를 기만하며 불법으로 핵무기를 개발·고도화해온 북한의 현실주의적 인식은 이 대통령의 평화주의적 이상주의와는 상반된다. 북한은 미국의 핵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한미 연합연습을 '핵 전쟁연습'으로 규정하며 중단 및 폐지를 요구해 왔다. 2018년 미북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북한 비핵화' 대신 담긴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의 주장을 반영한 것이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 즉 미북 수교를 뜻하지만, 사실상 핵보유국으로서 미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한다면 제재 해제와 주한미군 철수는 자동으로 따라온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면 이 대통령이 '국익 중심 실용외교'의 핵심 목표 중 하나로 제시한 '대한민국의 군사·안보 영역에서 자율성 확대'는 더욱 우려를 자아내는 대목이다. 이 대통령은 해당 간담회에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회복도, 핵추진잠수함(원잠) 건조도 국익에 부합한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현재는 전작권도 없는 데다, 일각에서는 마치 한국이 외부의 지원이 없으면 자체 방위도 못 하는 것처럼 오해를 유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이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결과로 미국과 동맹을 맺고 확장억제(핵우산)의 혜택을 누리면서 일정 부분 안보 자율성을 포기하고 있는데, 이는 피할 수 없는 '안보-자율성 교환 딜레마'에 해당한다. 그러나 한국군 C4ISR·핵심 전력 운용·연합지휘체계 등 필수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되는  전작권 조기 전환은 안보 불안정성을 가져온다. 자율성 차원에서 추진하는 원잠 보유도 미 전략자산 운용 구도와 상호운용성 측면에서 괴리를 만들 것이라고 미국이 판단한다면 실현되기 어렵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전직 고위 안보 당국자는 "자율성이라는 말은 좋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억제력의 핵심 요소를 한국이 스스로 약화시키는 구조"라며 "여기에 연합훈련 축소 가능성까지 언급되면, '자율성 확대'가 아니라 '동맹 디커플링(decoupling)'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발신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대통령이 다시 언급한 ▲'E·N·D 이니셔티브(Exchange·교류, Normalization·관계정상화, Denuclearization·비핵화) ▲한미 연합훈련 축소·연기 ▲자율성 강화 차원의 전작권 전환과 원잠 보유 추진이라는 세 축은 모두 한미동맹 이완이라는 하나의 선으로 연결된다. END를 제안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 따르면 교류와 관계 정상화를 비핵화보다 앞세우는 구조다. 이 구상이 정 장관의 구상대로 진행된다면 미국의 전통적인 비핵화 원칙인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 혹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북한이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3단계 해법은 2단계에서 멈추면 북한이 인도·파키스탄 급 '사실상 핵보유국'으로서 핵을 가진 채 교류만 진행되는 모순적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한 대북 전문가는 "2단계라는 것이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려면,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합의된 방식처럼 '불능화'(disablement)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불능화 없는 2단계는 말장난에 불과하다"며 "END 구상을 추진하기보다는 2005년 '9·19 공동성명'으로 돌아가는 게 낫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안보 전문가는 "평화와 자율성 확보를 강조하는 이 대통령의 구상은 실제로는 한미 동맹을 분리시키는 효과를 낳는다"며 "동맹의 결속이 약해지면 북한과 중국의 오판 가능성을 높이고, 한국의 전략적 공간은 더 좁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구상은 역설적으로 북핵 위협을 오히려 심화시켜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앞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지난 11일 중의원(하원)에서 3대 안보 문서 개정 시 '비핵 3원칙'(핵무기를 보유하지도, 제조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을 견지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에 "이제부터 작업이 시작된다. 표현을 말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즉답을 피하고 사실상 재검토 가능성을 열어놨다. 일본이 핵무장을 추진하면 한국은 동북아의 유일한 '비핵국'으로 남게 되고, 미·일 주도의 안보 구도에서 외교·군사적 자율성이 축소될 위험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