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K-제조업 뺏으려 혈안인데금융·AI·반도체 돈 되는 산업만 챙겨공장 불 꺼지면 양극화·갈등 더 심해져중산층 양산 계층 이동 사다리 걷어차는 꼴일하는 평범한 사람 대접하는 풍토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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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대통령이 1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여승주 한화그룹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재명 대통령,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기선 HD현대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정관 산업부 장관ⓒ연합뉴스
누군가 민주주의를 외칠 때 묵묵히 고속도로를 닦고 제철소를 지었다. 박정희 대통령 얘기다. 민주주의 투사라 여겨졌던 이들은 어렵사리 마련한 종잣돈을 농민들과 서민들에게 나눠주자고 했지만, 그는 꿋꿋이 산업화를 이끌었다. 가난을 벗어나야 민주주의도 이뤄질 수 있다는 박 대통령의 혜안은 반백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공식이다.국민 모두가 가난을 벗어나는데는 제조업만한 게 없다. 돈이 돈을 버는 금융산업이나 한명의 천재가 수만명을 먹여살리는 첨단산업과는 결이 다르다. 평범한 사람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비교적 평등한 일자리다. 숙련공이 되면 중산층으로 진입 가능한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도 한다. 금융과 첨단산업이 발달하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양극화를 막아주는 안전판인 셈이다. 평범한 사람도 어느 정도 잘 살 수 있게 만드는 제조업은 민주주의의 근간이 된다.그런 제조업이 무너지고 있다. 중국도 미국도 모두가 한국 제조업을 뺏으려 혈안이다. 그들의 공세도 버거운데 정부 정책도 무책임하다. 일하는 사람보다 금융이나 AI 반도체 등 돈 되는 산업만 알뜰살뜰 살핀다. 빚투를 부추기고, 서울 아파트를 사지 않으면 벼락거지가 되는 풍조를 오히려 조장한다. 한국은행 총재도 금융당국 수장도 입만 열면 부동산과 주식시장 얘기다. 오죽하면 김 부장에게 대기업 보다 서울 자가 사는 게 앞선 가치가 됐을까.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취임 후 한국거래소를 방문해 '코스피 5000'을 외치는가 하면, 4대 그룹과 소위 요즘 잘 나가는 한화·HD현대 총수를 대통령실에 불러 억지춘향 투자약속을 끌어내는 쇼맨십만 보인다. 정작 관세협상에서 빗겨나 미국과 유럽 양쪽에서 50% 관세를 맞은 철강이나 고난의 구조조정을 앞둔 석유화학 기업들은 나몰라라다. 대통령부터 이러니 공직사회는 물론 국민들도 부동산과 주식시황만 쳐다보기 마련이다. '이 모든 게 노무현 탓'이던 참여정부 시절에도 코스피는 500 언저리에서 2000을 돌파하며 4배 뛰었다. 자본시장에 버블이 끼면 전통 산업과 서민 삶은 곤궁해진다.국회예산정책처 중기 경제 전망에 따르면 내년 제조업 실질 부가가치 성장률은 1.5%로 올해(1.8%)보다 0.3%p 하락했다. 내년 흐름만 봐도 상반기 1.6%에서 1.4%로 점차 낮아지는 흐름이다. 인공지능(AI)·반도체 착시에 주식시장은 고공행진이지만, 2030 청년 백수는 역대 최대치를 매달 경신한다.문과는 은행원이 목표고, 의대를 가지 못한 이과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돈 많이 주는 회사만 쳐다본다. 어디에도 끼지 못하면 '그냥 쉬는게 낫다'는 인식이 만연하다. 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의 취업유발계수는 2.1로, 전체 제조업 평균(6.2)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열심히 일하는 평범한 사람이 대접받는 전통 제조업이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정부의 무차별 확장재정도 제조업을 벼랑끝으로 몰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처음 마련한 내년 예산안에서 발행되는 적자국채는 110조원. 코로나 팬데믹이 덮쳤던 2021년 117조원 이후 가장 큰 규모다. 국채발행이 늘어나면 시장금리를 끌어올려 가계와 기업 대출금리로 전이된다. 당장 자금조달이 막막한 석유화학 기업들에겐 치명상이 될 수 있다. 과거 이명박 정부가 세간의 우려 속에서도 회생을 강행한 대우조선해양이 오늘날 한화오션으로 한미 관세협상의 일등 공신이 됐다는 점은 곱씹어봐야 할 지점이다.제조업이 무너진 나라에선 지독한 양극화와 끝없는 분열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 사는 국가다. 영국이나 미국처럼 든든한 내수를 바탕으로 금융과 서비스업으로 버텨낼 경제체력이 없다. 중산층이 무너지면 기득권과 플랫폼 노동자만 남아 허울 뿐인 민주주의로 전락할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민주주의는 투표함에서만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공장 불빛이 꺼지지 않을 때 비로소 지켜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