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M·현대차·현대제철 일제히 손배소 포기숨통 죈 정치권 … 피해 손실 모두 회사 몫으로소급규정 없는데도 백기투항 … 기세등등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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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D현대중공업 노조가 지난 9월 3일 울산 본사 조선소에서 집회하는 모습. ⓒ연합뉴스
"노란봉투법으로 수천 곳에 달하는 협력업체들이 원청에 대한 교섭 신청을 시작하면, 내내 교섭만 진행하다 1년이 끝날 것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이 파업하기라도 하면 약속한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게 불 보듯 뻔합니다."취재 현장에서 만난 조선업계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강조한 말이다.이른바 'K-조선업'이 중국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었던 점 중 하나가 바로 납기일을 맞춘다는 점이다. 중국 업체들은 납기일을 제때 지키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약속한 날짜를 반드시 지키는 것은 물론, 종종 조기 인도도 해 해외 고객사들을 놀라게 한다는 점이다.내년부터는 이러한 이점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위헌 논란과 정·재계 우려에도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본격 시작되기 때문이다.그야말로 노조 전성시대다. 국내 산업계는 글로벌 경기 둔화와 미국발(發) 고율 관세, 중국의 고성장 등 유례없는 대외 불확실성에 놓였지만, 미래를 외면한 과욕을 앞세운 노조들의 입김은 더욱더 심해지는 모습이다.특히 노란봉투법은 시행하기까지 5개월이나 남았음에도 국내 산업계를 뒤덮고 있다. 노조는 이미 노란봉투법을 등에 업고 전방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이다.실제로 전일 KG모빌리티(이하 KGM·옛 쌍용자동차)는 지난 2009년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에 제기해 대법원에서 확정된 '쌍용차 파업' 손해배상 채권 40억 원을 집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이는 앞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가 지난 2009년 5월부터 8월까지 77일간 정리해고 반대 파업 농성을 벌이자, 쌍용차는 노조 측의 공장 점거 농성 등으로 생산 차질 등 손해가 발생했다며 노조와 소속 조합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낸 사건이다. 노란봉투법의 유래가 된 사건이기도 하다.KGM뿐 아니라 현대자동차, 현대제철 등 앞서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했던 기업들은 일제히 꼬리를 내리고 있다.앞서 현대차는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가 지난 2010년과 2013년, 2023년에 벌였던 파업에 대한 총 3억6800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 소송 3건을 지난 8월 취하했다. 현대제철도 지난 2021년 파업을 벌인 비정규직 노동조합 노동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46억 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했다.이밖에 한화오션도 대우조선해양 시절 노조 파업으로 막대한 피해를 봤다며 파업 하청 노동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470억 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취소하는 것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한 기업들은 그들의 결정이 '대승적 차원'에서 이뤄진 것일 뿐 노란봉투법과는 관련이 없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이는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업계에선 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두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측에서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 상대 손배소 취하를 압박한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실제로 민주당은 지난 7월 현대차와 현대제철에 파업 근로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취하할 것을 요구해 논란이 됐다. 노란봉투법 통과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가 제한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정치권이 기업을 상대로 과거 제기한 손배 소송 취하까지 요구하면서 '친노동 일변도'라는 지적도 나왔다.해당 과정에서 정부와 민주당은 형법상 배임죄 폐지를 천명하면서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한 기업들의 족쇄를 교묘히 풀어줬다.당초 기업들은 노조에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취하하는 것이 '배임죄'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지 판단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었다.실제 한화오션이 올해 초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취하할 수 없다며 이에 대한 근거로 든 것도 배임죄였다. 특별한 사정 변경 사유가 없음에도 소송을 중단하는 경우 현 경영진에 대한 배임죄 성립 등 법적 문제 제기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의미에서다. 이에 회사 측은 "배임죄에 대한 우려가 해소된다면 국회 주선의 사회적 대화 기구에 적극 참여하겠다"라고 밝히기도 했다.그러나 정부와 여당이 무려 72년 만에 배임죄를 폐지하기로 하면서 기업들은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하지 않을 명분을 잃어버렸다. 그야말로 기업의 숨통을 막는 '꼼수'가 아닐 수 없다.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모습이다. 그러나 기업이 무너지면 고용도 없다. 노동권을 강화하고 싶으면 그만큼 기업에도 숨 쉴 곳을 마련해주는 균형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