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3국' 표기 순서 '한중일'로 통일중국-일본 갈등 고조 속 나온 발표앞선 '셰셰 외교' 논란에서 발표 시점 논란까지
  • ▲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일 경북 국립경주박물관에서 한중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일 경북 국립경주박물관에서 한중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정부가 동북아 3국의 공식 표기를 '한중일'로 다시 통일하기로 했다. 윤석열 정부가 전통적 우방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한일중' 표기를 병행하던 기조를 중단하고, 중국을 일본보다 앞에 두던 기존 관행으로 복원하는 것이다. 정부는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표기'라는 이유를 들었지만, 최근 중국과 일본의 갈등이 격화되는 시점과 맞물리며 외교적 메시지 논란이 제기될 우려가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16일 "동북아 3국 표기를 한중일로 통일해 사용하기로 했다.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표기로 통일해 불필요한 논란을 없애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정부의 표기 혼용으로 '어느 나라와 더 가깝나' 하는 등의 소모적 논쟁이 이어졌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에 따르면 전임 정부 이전까지는 '한중일' 표기가 일반적으로 사용돼 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3년 9월 아세안(ASEAN) 정상회의에 참석한 이후 정부는 동북아 3국을 '한일중' 순서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전통적 우방 관계를 고려하면 '한중일'보다는 '한일중', '북미'보다 '미북'이 적절하다는 판단이었다.

    이번 복원 결정이 단순한 표기 통일을 넘어 중국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한중 관계를 전면적으로 회복하고, 전략적 협력 동반자로서 실용과 상생의 길로 다시 함께 나아가게 됐다"고 언급했다.

    또한 이 대통령은 지난 14일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원자력추진잠수함(원잠) 관련 내용이 담긴 한미 관세·안보 협상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를 발표하면서도 "중국과 꾸준한 대화로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한 길을 흔들림 없이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정치권에서는 정부의 대중국 외교를 두고 공방이 지속돼 왔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최근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설치된 중국 구조물을 두고 "대한민국 해양 안보에 대한 명백한 위협이자 해양 권익에 대한 침탈"이라고 비판하며, 이 대통령을 향해 "아직도 중국에는 '셰셰(謝謝·고맙습니다)인가"라고 공세를 펼쳤다.

    이 대통령은 지난 5월 대선 유세 당시 "중국에도 셰셰하고 대만에도 셰셰했는데 틀린 말을 한 것이냐"면서 친중 논란에 대해 정면 돌파에 나선 바 있다. 지난해 총선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대중 외교를 비판하며 "왜 중국에 집적거리나. 그냥 셰셰,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된다"고 주장했다.
  •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경북 경주 APEC 정상회의장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기념촬영 후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경북 경주 APEC 정상회의장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기념촬영 후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표기 복원이 외교 정책 변화로 직결되지는 않겠지만, 발표 시점이 미묘하다는 평가도 있다. 중국과 일본의 갈등이 다시 격화하는 흐름에서 한국 정부의 조치가 의도와 무관하게 대외 메시지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전날 자국민에게 일본 여행 자제를 권고했고, 중국국제항공·중국남방항공·중국동방항공 등 3대 항공사는 일본행 항공권 취소·변경을 무료로 처리하겠다고 공지했다. 쓰촨항공·하이난항공도 같은 조치를 발표했다.

    일본 관광청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중국인의 방일 소비액은 1조7265억 엔으로 전년 대비 2.3배 증가했다. 올해 9월까지 중국인 관광객 수는 748만 명으로 이미 지난해 연간 수치를 넘어섰다.

    과거에도 중·일 간 외교 충돌은 교류에 직접 타격을 줬다. 2010년 9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인근에서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과 중국 어선이 충돌한 이후 중국 정부는 일본 여행 자제를 요청했고, 이듬해 중국인 방일객 수는 전년 대비 26% 감소했다. 2012년 센카쿠 영유권 분쟁 당시에도 중국인 단체 관광객 예약 취소가 잇따라 한 달간 중국발 방일객 수가 전년 대비 40% 이상 급감했다.

    일각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충돌이 장기화될 경우 중국이 과거 미국을 상대로 사용했던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일본에 적용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