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파숫꾼 뉴데일리 창간 20주년 기획대한민국 기적, 기업이 일궜다슘페터가 살아서 대한민국 봤으면…
  • [편집자 주] 
    한국 학계-출판계-언론계 등 지식인 사회는 지나치게 좌파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좌파 지식인들이 담론을 장악, 한국 사회 전반을 좌경화시키고 있다.

    그런 좌경화에 맞서 싸우는 우파 인터넷신문 뉴데일리는《자유의 파숫꾼》임을 자임하고 있다. ① 자유민주주의 ② 자유시장경제 ③ 자유통일 이라는 사시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창간 20주년을 맞은 뉴데일리는기업이 대한민국이다라는 새로운 비전을 선포하고, 그 슬로건에 걸맞는 기획 시리즈를 준비했다.

    《책을 보다》연재가 그것. 매주 한 권의 책을 골라 소개-분석-비평하는 기획이다. 단순 서평 차원을 넘어 반(反)대한민국-반자유민주주의 세력과《담론 투쟁 / 이론투쟁》을 벌여나갈 생각이다.

    첫번째 책으로 슘페터《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가 선정됐다. 필자는 김용철 한국전략포럼 연구위원.《박정희가 옳았다 : 5.16과 10월유신의 정치경제학》의 저자. 이강호란 필명을 사용한다.

    필자는 서울대 사회학과 82학번으로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한차례 복역도 한 운동권 출신. 한때 마르크스-레닌주의자를 자처하며 이른바《사회변혁》이란 이름의 혁명운동에 몸을 담갔던 인물이다. 그는 "박정희야말로 근대화를 이룬 진정한 진보 정치가"라고 그의 저술에서 평했다. 박정희로 상징 되는 독재체제를 뒤집어 엎겠다는 이른바《민주화 운동가》의 진솔하고 용기있는 자기 고백서로 주목받았다.
    =======================
  • ▲ 《뉴데일리 새 비전 선포》캘리그라피 퍼포먼스에서 이성복 뉴데일리 대표(왼쪽 끝)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오른쪽 세번째) 등 내빈들이 함께 하고 있다. ⓒ 서성진 기자
    ▲ 《뉴데일리 새 비전 선포》캘리그라피 퍼포먼스에서 이성복 뉴데일리 대표(왼쪽 끝)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오른쪽 세번째) 등 내빈들이 함께 하고 있다. ⓒ 서성진 기자
    ■ 뉴데일리의 새 비전 선포

    지난 10월 26일 뉴데일리는 창간 20주년 기념행사에서 이후 기치로 삼을 비전을 다음과 같이 선포했다. 
    “기업이 대한민국이다.” 
    선언문은 그 함의의 핵심을기업이 살아야 대한민국이 잘 살게 됩니다. 기업을 살려야 미래세대에 희망이 생깁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중요한 선언이다. 
    대한민국이 지금 직면하고 있는 안팎의 도전과 진통을 이겨내며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반드시 견지해야 할 지침이다. 
    대한민국의 건국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는 “기업이 대한민국이다”라는 비전이 증명된 교훈임을 가르쳐주고 있다.  
     

  • ▲ 인보길 뉴데일리 회장이
    ▲ 인보길 뉴데일리 회장이 "기업이 대한민국이다"에 관한 비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정상윤 기자
    ■ 선진국 대한민국을 있게 한 힘 
     
    2021년 7월,《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한국을 개발도상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공식 변경했다. 
    당연했다.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 중 하나다. 
    규모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질적으로는 더 강력하다. 
    반도체를 비롯한 정보산업 분야에선 세계 1~2위의 순위에 있다. 
    그러면서도 기존의 기계공업에서 중화학공업에 이르기까지의 분야에서도 세계 정상급이다. 
    이처럼 종합적인 경제적 경쟁력은 선진국 그룹 중에서도 드문 경우에 해당한다.  
     
    어떻게 이런 성취가 가능했을까? 
    1945년 8.15 해방 후 3년간의 진통 끝에 남북한은 각각 따로 나라를 세우게 됐다. 
    거의 동시에 탄생하고 출발한 남북한은 이후 극명한 차이를 보이게 됐다. 
    경제사학자 차명수《기아와 기적의 기원》(2014)의 표현을 빌자면, 북한은《기아(飢餓)의 나라》가 되고 대한민국은《기적(奇蹟)의 나라》가 됐다.  
     
    물려받은 역사적 유산과 조건에는 전혀 차이가 없었다. 
    해방 이전 일제 식민치하, 그 이전 망국을 맞은 조선왕조시대라는 역사적 경험은 남북 모두 동일했다. 
    출발기의 조건은 남쪽의 대한민국이 오히려 더 열악했다. 
    일제는 식민통치기에 북한지역에는 수력발전소를 짓고 군수산업을 위한 중화학공업지대도 조성했다. 
    해방 직후에도 한반도 전역에 전기를 공급했던 수풍댐 발전소는 대표적 상징이다. 
    하지만 남쪽은 경공업이 일부 있었을 뿐이며, 거의 대부분은 농업지대로 남았다.  
     
    게다가 대한민국은 건국 3년 만에 북한을 앞세운 공산세력의 침략에 의한 3년간의 6.25전쟁으로 그나마도 완전히 폐허가 됐다. 
    6.25전쟁 직후인 1955년 10월《유엔한국재건위원회》(UNKRA)에 참여한 인도 의원은 “한국에서 경제재건을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바라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대한민국은 기적적 발전을 이룩해 마침내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 
    반면 북한은 기아의 지옥으로 전락해 갔다. 
    건국 당시 남북 각각이 선택한 이념과 체제의 차이가 결정적이었다. 
    자유민주 대한민국은《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의 길을 갔다. 
    북한은《사회주의 계획경제》로 갔다. 
    그 차이가 운명을 갈랐다.  
     

  • ▲ 필자의 저서《박정희가 옳았다》.ⓒ 기파랑
    ▲ 필자의 저서《박정희가 옳았다》.ⓒ 기파랑
    ■ 기업과 기업가 

    사회주의의 실패는 새삼 논할 필요도 없는 세계적 세계사적으로 증명이 끝난 문제다. 
    남북한의 운명적 귀결도 역사적 증명이다. 

    그렇다면《자본주의 시장경제》《사회주의 계획경제》는 왜 그런 상반된 결과를 맞게 되는 것일까? 
    핵심에는《기업⋅기업가》의 존재가 있다. 

    대한민국이 선택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는 기업과 기업가의 존재와 활동을 확고히 보장했다. 
    대한민국이 마침내 선진국이 되게 한 한강의 기적은 그 바탕이 있었기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건국 대통령 이승만자유민주 시장경제의 선택은 훗날을 약속한 예언적 위업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 선택을 지키며 기업과 기업인이 종횡으로 뛸 수 있게 이끌었다. 
    그리하여 한 시대에 한 명만 있어도 큰 역할을 하기에 충분한 기업가들이 줄을 지어 등장했다. 
    그리고 그들이 일으킨 기업들은 지금 세계적 반열에 올라 있다.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 1883~1950)는 그와 같은 기업가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표적인 경제학자 중 한명이다. 
    슘페터《자본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민주주의》(1942)에서자본주의의 가장 큰 강점은 역동성인데, 그 역동성은《기업가 정신》에서 나온다고 했다. 

    슘페터는 자본주의 경제는《창조적 파괴》를 가능케 하는《혁신》을 통해 발전해 가는데, 그 혁신을 이끄는 주역은 바로《기업가》(entrepreneur)라 했다. 
    기업가(entrepreneur)는 ‘시도하다’, ‘모험하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앙트러프랑드르(entreprendre)’에서 유래했다. 
    자본주의는《모험도 시도하는 기업가의 활력》을 보장함으로서 역동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슘페터《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이 아직 탄생하지도 않았던 1942년 발간된 책이다. 
    그런데《기업가의 역할》《자본주의의 역동성》에 대한 지적은 마치 이후 대한민국의《한강의 기적》에 대한 준비된 설명처럼 다가온다. 

    한편, 슘페터의 통찰은 오늘날 한국에서도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디지털 혁명⋅AI혁명을 비롯한 제4파 산업혁명에 대해서도 생생하다. 
    《창조적 파괴》《혁신》은 그에 대한 설명에서 빠질 수가 없다.  
     

  • ▲ 체제 선택이 가른 극명한 결과. 너무 대조적이다. ⓒ 챗Gpt
    ▲ 체제 선택이 가른 극명한 결과. 너무 대조적이다. ⓒ 챗Gpt
    ■ 슘페터의 경고 
     
    그런데 슘페터는 그처럼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적극 옹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앞날에 대해 비관적 전망을 했다. 
    자본주의는 결국 사회주의에 자리를 내주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슘페터는 반(反)자본주의적 좌파가 전혀 아니다. 
    그는 오히려《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에서 사회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사회주의는 경제의 역동성을 죽인다는 것이다. 
    슘페터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모든 장점을 가져오려 하지만, 결국에는 혁신을 질식시킨다”고 지적했다. 
    사회주의는 기업과 기업가를 사라지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슘페터는 마르크스주의적인《자본주의 붕괴론》에 대해선 일관되게 비판했다. 
    공황과 양극화 계급투쟁에 의한 자본주의 붕괴 운운은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본주의의 앞날에 대해 비관적 전망을 했다. 
    그는 자본주의의 성공이 가져다준 풍요가《혁신을 이끄는 기업가정신》의 후퇴를 초래해 역동성을 상실케 할 수 있음을 우려했다. 
    그리고 지식인 계층의 문제를 지적했다.  
     
    ■ 비판으로 먹고 사는 ‘무책임한 훼방꾼’ 
     
    슘페터는 일찍이 1920년대에 이미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지식인 계층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그 논지를《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1942)에서 다시 체계적으로 기술했다. 
    “자본주의의 진정한 자기 파괴적 경향은 지식인 계층의 끝없는 확대”라는 지적이었다. 
    지식인들은 체질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비판적이기 일쑤이다.
    이 같은 속성을 지닌 자들이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계속 확대됨으로써 위기가 가속화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비판⋅공격하는 이들을 통상 좌익이라 하니 결국 좌익 지식인의 문제다. 
    슘페터는 그 속성을 통렬하게 지적한다. 

    “지식인은 비판으로 먹고 살며, 그의 모든 지위는 비판을 얼마나 따끔하게 쏘아대는가에 달려 있다.” 
    “지식인이 인정받게 되는 주된 기회는 현실적으로든 잠재적으로든 훼방꾼으로서의 가치가 있느냐에 달려 있다.” 
    “지식인들이 다른 자들과 구분되는 특징의 하나는 실제 업무에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임지지 않기 때문에 안심하고 떠들어대는《무책임한 훼방꾼이라는 얘기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지식인은 혜택 받은 계층이다. 
    직접적인 생산자가 아니면서도 생존에 충분한 정도만이 아니라 기여 이상의 대우도 받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혜택을 주고 있는 그 체제에 대해선 삐딱해지기 일쑤다. 
    허위의식 이다. 
    자본주의가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은 이런《무책임한 먹물》들의 증가 때문이라는 게 슘페터의 지적이다.  
     
    그 외에도 그는 민주주의 항목에서《포퓰리즘》에 대한 비판도 빠뜨리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경제적인 면에서는 당연히 성공적이지만, 사회적 정치적인 면에서 위험에 처한다는 게 슘페터의 결론이었다.  
     
    자본주의의 운명에 대한 그의 비관적 전망은 일단은 빗나갔다. 
    먼저 붕괴한 것은 사회주의 진영이었다. 

    그럼에도 좌익적인 비판과 선동은 끊이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도 그렇다. 
    슘페터의 지적들은 여전히 유효한 경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