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총선서 우파 압승…폴란드·헝가리 등 유럽 곳곳서 '우파 승리'이민 급증·물가 불안이 키운 민심 이반…"기성 정치엔 더 이상 기대 안 해"
  • ▲ '프라하의 트럼프'로 불리는 포퓰리스트 억만장자 안드레이 바비스 ANO 대표가 4일(현지 시간) 프라하에서 기자회견 하고 있다. ⓒAP/뉴시스
    ▲ '프라하의 트럼프'로 불리는 포퓰리스트 억만장자 안드레이 바비스 ANO 대표가 4일(현지 시간) 프라하에서 기자회견 하고 있다. ⓒAP/뉴시스
    유럽 전역에 '우파 물결'이 거세다. 지난 3∼4일(현지시간) 치러진 체코 하원 총선에서 우파 포퓰리즘 성향의 긍정당(ANO) 이 중도보수 여당 연합을 꺾고 압승을 거두며, 안드레이 바비시(71) 전 총리의 정치 복귀에 청신호가 켜졌다. 이로써 체코는 폴란드·헝가리·이탈리아·슬로바키아에 이어 또다시 '우파 승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체코 하원 총선 승리 원인으로 우크라이나 탄약 지원 프로그램 종료, 반(反)이민 정서 등을 앞세운 점이 주요 원인으로 거론된다.

    9일 체코 선거당국 등에 따르면 긍정당은 지난 5일 총선개표 결과 총 34.7%를 득표하며 하원(총 200석)에서 약 80석을 확보했다.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가 이끄는 시민민주당(ODS)이 중심이 된 중도보수 연합인 함께 연합(SPOLU)는 23.2%를 득표하며 52석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바비시 전 총리는 승리 확정 이후 지지자들을 향해 "역사적인 결과"라고 평가했다. 긍정당은 극우 자유직접민주주의당(SPD, 15석), 민족주의 포퓰리즘 성향 운전자당(13석)과 손잡을 경우 과반(101석)을 웃도는 108석을 확보해 우파 연정을 꾸릴 것으로 예상된다.

    바비시의 긍정당은 헝가리의 피데스(Fidesz), 프랑스의 국민연합(RN) 등과 함께 유럽의회에서 강경 우파 혹은 극우로 분류되는 '유럽을 위한 애국자(PfE)' 교섭 단체를 꾸리고 있다.

    피데스를 이끄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 프랑스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진정한 유럽의 보수가 체코에서 이겼다"며 바비시의 승리를 축하했다.

    바비시 전 총리는 1993년 농업·식품 분야 대기업 아그로페르트 그룹을 창립, 2000년대 들어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이후 2011년 친기업·실용주의와 정치 엘리트 부패 척결을 주장하며 우파 포퓰리즘 성향의 긍정당을 창당했다. 그는 2017~2021년 총리를 지냈다.

    정치 기득권과 유럽연합(EU)에 회의적 시각을 드러내며 '프라하의 트럼프'라 불리는 바비시 전 총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방위비 지출 대폭 증가 약속 등에 반대하고 있다. 아울러 총리직 복귀 시 체코 주도로 서방 국가들이 기금을 모아 우크라이나에 탄약을 공급하는 '체코 이니셔티브'를 중단하겠다고 언급했다.

    바비시 전 총리는 우크라이나 지원을 체코가 나서지 않고 EU와 나토에 맡기자는 입장이다. 체코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중도보수 연정과 나토 군사위원장 출신인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긍정당의 총선 승리 원인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이민자가 급증하며 유럽 내에서 반(反)이민 정서가 확산하고,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고물가와 불안정한 경제 상황 등이 복지 축소로 이어져 저소득층의 불만이 증폭됐다는 점 등이 꼽힌다.

    이는 체코만의 현상이 아니다. 지난 6월 폴란드 대선에서 강경 우파인 법과정의당(PiS) 의 카롤 나브로츠키 후보가 승리하며 집권세를 굳혔고, 프랑스에서는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RN)이 차기 총선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또 독일에서는 반이민 정서를 앞세운 '독일을 위한 대안(AfD)', 영국에서는 나이절 파라지가 이끄는 영국개혁당(Reform UK) 이 집권 보수당을 제치고 여론조사 선두권에 올랐다.

    이미 이탈리아(멜로니 총리), 헝가리(오르반 총리), 슬로바키아(피초 총리) 등은 수년째 우파 정권이 유지되고 있다.

    이처럼 유럽 주요국에서 잇따라 우익·국민주의 세력이 약진하면서, 내년 유럽의회 선거는 '보수 재편의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이민·불평등·경제·안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전통 정당을 유권자들은 더는 믿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고물가와 경기 침체 속에서 복지 재원을 둘러싼 갈등이 커지면서 '국민 먼저'를 외치는 우익 포퓰리즘이 전면에 부상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