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전술에 끌려가 3500억 달러 기정사실화평택 험프리스, 관타나모식 특수협정 카드 될 수도원자력협정, 경제 아닌 안보 패키지 넣은 건 실책안보·경제, 패키지로 묶어 지렛대로 활용했어야韓, 우크라와 달라 … 美의 中 견제 직접 기여 가능
  • ▲ 이정훈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장은 지난 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새천년관에서 한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의 요구에 따라 안보 패키지와 경제 패키지를 분리한 것을 대미 관세 협상의 가장 큰 실책으로 꼽으며
    ▲ 이정훈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장은 지난 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새천년관에서 한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의 요구에 따라 안보 패키지와 경제 패키지를 분리한 것을 대미 관세 협상의 가장 큰 실책으로 꼽으며 "문제는 한국이 이에 대응해 상호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포괄적인 패키지 전략으로 맞서지 못했다는 점이다. 관세를 따로 떼어 협상한 결과, 교환 가능한 카드가 줄었고 결국 관세·투자 현안만 남는 비효율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서성진 기자
    "문제는 한국이 이에 대응해 상호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포괄적인 패키지 전략으로 맞서지 못했다는 점이다. 관세를 따로 떼어 협상하니 교환 가능한 카드가 줄었고, 결국 관세·투자 현안만 남는 비효율이 발생했다."

    이정훈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장은 지난 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새천년관에서 진행한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의 요구에 따라 안보 패키지와 경제 패키지를 분리한 것을 대미 협상의 가장 큰 실책으로 꼽았다.

    한국 정부가 안보와 경제를 분리해 대응한 것이 협상 전략상 가장 큰 실책이었다면, 한미 원자력협정 조기 개정을 경제 패키지가 아닌 안보 패키지에 포함시킨 점도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정부 스스로도 이번 개정이 핵 잠재력 확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 산업적 차원에서 추진되는 사안임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이번 갈등의 본질이 "터무니없이 높은 요구를 먼저 제시해 상대를 압박한 뒤 양보를 끌어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협상 전술"에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기 시절 주한미군 방위비 협상에서 50억 달러(약 6조7500억 원)를 요구했지만, 실제 부담액은 약 10억 달러 수준으로 합의했던 사례를 언급하면서 최근 3500억 달러(약 492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요구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고 짚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한국이 약속한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를 현금으로 집행하지 못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평택 주한미군기지 부지의 소유권을 요구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법·제도적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이지만, 이 역시 압박용 최대치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법적으로 불가한 요구에는 원칙적으로 선을 긋되, 조선업, 원전, 방위비, 비자, 금융(통화스와프·결제망) 등 교환 가능한 카드를 '통합 패키지'로 묶어 협상 지렛대를 극대화해야 한다. 불가능한 것과 가능한 것을 분리해 가능한 것의 총량을 키워 관세 압박을 상쇄하는 쪽으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 이정훈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장은 지난 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새천년관에서 한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 이정훈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장은 지난 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새천년관에서 한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법적으로 불가한 요구에는 원칙적으로 선을 긋되, 조선업·원전·방위비·비자·금융(통화스와프·결제망) 등 교환 가능한 카드를 '통합 패키지'로 묶어 협상 지렛대를 극대화해야 한다. 불가능한 것과 가능한 것을 분리해, 가능한 것의 총량을 키워 관세 압박을 상쇄하는 쪽으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성진 기자
    다음은 이 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한미 관세협상 갈등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보나.

    "트럼프 대통령과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은 동맹국을 포함한 미국과의 교역국들이 지난 수십 년간 안보라는 명분 아래 미국을 경제적으로 이용해 왔다고 생각하는 데 갈등의 본질이 있다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불균형을 바로잡겠다며 누적된 대미 무역 흑자를 일괄 정산하려는 접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번 갈등의 본질은 터무니없이 높은 요구를 먼저 제시해 상대를 압박한 뒤 양보를 끌어내는 트럼프 특유의 협상 전술로도 볼 수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나.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당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으로 50억 달러(약 6조7500억 원)를 요구했지만, 실제 한국의 부담액은 10억 달러 남짓이 됐다. 결국 협상을 통해 매년 일정 비율을 인상하는 방식으로 조정됐고, 2021년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에서는 전년 대비 13.9% 인상안에 합의했다. 마찬가지로 지난 7월 말 한미 양국이 합의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도 과장된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액수를 트럼프 측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가 애초에 협상 테이블에 오른 것 자체가 의문이다."

    -차라리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올려줌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의 위신을 세워주고 관세협상에서 양해를 얻는 편이 좋았겠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1조5000억 원 수준인 방위비 분담금이 내년 8.3% 오르기로 했다. 그런데 사실 예전부터 생각해 온 것이 있다. 3조 원으로 두 배를 주면 어떨까. 1조5000억 원의 10%인 1500억 원을 놓고 실무자들이 미국과 실랑이를 벌이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이다.

    1조~2조 원은 사실 아무것도 아닌 금액이다. 처음 협상할 때부터 포괄적 차원에서 접근했어야 한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방위비분담금으로 50억 달러를 달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큰 금액이 아니다.

    안보 측면에서는 방위비와 국방비 지출을 확대해 트럼프의 체면을 세워주되, 관세 측면에서는 기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존중하라고 요구했어야 한다. 조선업과 원전은 한국이 기술적 우위를 지닌 핵심 산업이자 동시에 미국이 필요로 하는 분야다. 따라서 이들 산업에서 크게 내주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협상 카드로 활용하고, 전략적으로 생색을 냈어야 했다."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를 문제 삼기에는 타이밍을 놓친 감이 있다.

    "우리가 이 비현실적인 규모를 정면에서 반박하지 못한 채 끌려 들어가면서 기정사실화돼 버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8월 말 기준 우리 외환보유액은 4159억 달러다. 그런데 미국 측 요구대로라면 이 중 3500억 달러, 즉 84%를 내놓아야 한다. 이는 사실상 외환보유액 대부분을 소진해야 한다는 의미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상황을 스스로 불러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국가 간 협상에서 이런 조건은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출발부터 비현실적인 금액을 전제로 들어간 것이 문제다. 지금은 3500억 달러를 기정사실로 놓고 어떻게든 채워야 한다는 식으로 가고 있는데, 이건 협상이라기보다는 굴복에 가깝다."

    -결국 대미 협상에서 미국의 요구대로 안보 패키지와 경제 패키지를 분리한 것이 가장 큰 실책이 아니었나 싶다. 더 나아가 한미 원자력협정 조기 개정을 핵 잠재력과는 무관하게 경제적, 산업적 차원에서 추진한다고 하면서도, 경제 패키지가 아닌 안보 패키지에 포함시킨 것은 '잘못된 분류'라는 또 다른 실책으로 지적된다.

    "처음부터 포괄적 패키지 협상으로 상호이익을 극대화했어야 한다. 조선업과 원자력 협력 등 산업·안보 이슈도 함께 거론된 것을 보면 미국의 관심은 단순한 대미 투자나 무역 불균형 시정에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통합 패키지로 협상하기보다 오히려 안보와 경제를 분리해 압박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취했다.

    문제는 한국이 이에 대응해 상호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포괄적인 패키지 전략으로 맞서지 못했다는 점이다. 관세를 따로 떼어 협상해 교환 가능한 카드가 줄었고, 결국 관세·투자 현안만 남는 비효율이 발생했다. 트럼프식 협상은 크게 던지고 크게 받는 방식인 만큼, 우리도 전략적 묶음으로 대응했어야 한다."

    -정부가 최근 기업들에 대미 투자·홍보(특히 'MASGA' 관련)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보도가 있다. 조선업 카드는 어떻게 봐야 하나.

    "트럼프는 집권 초부터 미국 조선업 부활을 공개적으로 강조해 왔다. 이는 단순한 산업 정책이 아니라 중국과의 격차를 줄이겠다는 정치·산업 아젠다였다. 그가 제시한 조선업 협력 조건은 단순한 경제 협력을 넘어 중국 조선업을 견제하려는 전략적 성격을 지닌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구상 중 약 1500억 달러를 미국 조선업 협력을 위한 소위 'MASGA 펀드'로 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내 조선소 현대화와 신설을 위해 한국이 직접 투자하고 기술을 제공하라는 요구도 나왔다.

    이는 한국 조선업의 미국 진출과 미국 조선소 재건을 병행하는 전략 프로젝트이자 미국의 조선업 부흥 정책과 연계된 협력이었다. 단순히 선박 건조 차원을 넘어 한국이 대중 노선을 분명히 하라는 압박이 함께 담겨 있었다. 외국 기업의 미국 조선업 참여를 제한해 온 '존스법'(Jones Act)을 풀거나 예외로 적용하는 문제도 거론됐다.

    결국 트럼프가 제시한 조선업 협력 조건은 한국 기술력을 활용해 미국 조선업을 되살리는 동시에, 중국을 압박하는 무역 협상 카드로 쓰겠다는 복합적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이 해양 패권을 추구하는 현시점에서 미국은 앞으로 30년간 1조750억 달러(약 1600조 원)를 조선·해양 인프라에 지출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국엔 엄청난 기회지만, 참여 조건은 분명하다. 미국의 동맹국일 것, 단가가 미국보다 저렴할 것, 무엇보다 반중 노선을 명확히 할 것. 이 세 가지를 충족하지 못한다면 기회는 곧 제약으로 바뀔 수 있다."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요구가 몰고 올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한미 간 통화스와프 체결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에 대해서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반면, 아르헨티나의 친트럼프 정부에는 먼저 통화스와프를 제안했다.

    "미국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유럽연합(EU)에도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한국에는 그 강도가 유독 크게 체감되고 있다. 이런 상황일수록 관세 문제를 따로 떼어 볼 것이 아니라 포괄적 전략동맹인 한미동맹의 특수성을 살려 안보와 경제 현안을 아우르는 '패키지 협상'으로 접근했어야 한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관세와 투자, 대중 견제이므로, 한국은 조선업·원전 수주·건설·방위비 등 경제와 안보 카드를 동시에 꺼내 한 바구니에 담아 협상에 임해야 했다. 조선업과 원전, 방위비와 금융 협력까지 묶어 패키지 협상에 임했다면 관세 압박을 상쇄할 수 있었을 것이다."
  • ▲ 이정훈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장은 지난 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새천년관에서 한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 이정훈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장은 지난 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새천년관에서 한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고 '스쿼드'(S-QUAD·미국·일본·호주·필리핀로 구성된 비공식 안보협력체) 참여 등 인도·태평양 지역 내 역할 확대에 나서는 한편, 중국의 해양 굴기에 대응하는 미국 해군력 강화 과정에서 한국 조선업이 선박 수출·보수·수리·정비(MRO)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서성진 기자
    -트럼프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현재 미국이 한국에서 임차해서 쓰고 있는 주한미군 기지 부지의 소유권을 미국에 넘겨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가능하다고 보나.

    "사실 관계와 제도적 측면에서 성립하기 어렵다. 주한미군 기지의 부지 소유권은 한국 정부에 있고, 미군은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사용권만 보유한다. SOFA 제2조에는 한국이 해당 시설과 구역을 '공여'하고, 필요가 없을 경우 한국에 '반환'하도록 명시돼 있다.

    국내법도 제약 요인이다. 우리 헌법 제3조는 한반도 전체를 대한민국 영토로 규정하고 있어 주한미군 기지 부지를 외국에 넘겨주는 것은 곧 영토 조항과 직결되는 문제다. 더구나 국유재산법은 군사기지와 같은 행정재산을 원칙적으로 처분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결국 헌법 개정과 국유재산법 등의 개정을 동시에 추진하지 않는 한 소유권 이전은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

    단, 장기 임차나 특수협정 같은 방식은 가능하다. 물론 SOFA 개정, 국내법 정비, 국회 동의 등 복잡한 절차가 뒤따르겠지만, 영유권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기존 SOFA 체계를 뛰어넘는 쿠바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와 같은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외교력을 발휘한다면 지금 직면하고 있는 관세 협상 난항을 돌파하는 동시에 한미동맹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즉 전세를 완전히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될 수도 있다."

    -만약 한국이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액을 감당할 수 없다고 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그 대신 평택 주한미군 기지 캠프 험프리스 부지의 소유권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캠프 험프리스는 해외 미군 기지 가운데 최대 규모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핵심 거점으로 꼽힌다.

    "트럼프식 협상의 특징은 극단적인 조건을 먼저 제시해 상대방을 압박하는 것이다. 소유권 발언도 '압박용 최대치'로 해석하는 게 합리적이다. 결론은 명확하다. 법적으로 불가한 요구에는 원칙적으로 선을 긋되, 조선업·원전·방위비·비자·금융(통화스와프·결제망) 등 교환 가능한 카드를 '통합 패키지'로 묶어 협상 지렛대를 극대화해야 한다. 불가능한 것과 가능한 것을 분리해 가능한 것의 총량을 키워 관세 압박을 상쇄하는 쪽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쿠바 관타나모 기지는 스페인-미국 전쟁 이후 맺어진 조약과 군사점유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미국이 장기 사용권을 확보한 경우이고, 영국령 디에고가르시아는 영국이 영토 지배권을 유지한 채 미군에 장기 임차를 허용한 사례다. 두 경우 모두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유산이라는 특수성이 크다.

    "한국과 같은 민주헌정국가에서 주권 일부를 외국에 넘기는 조약을 체결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헌법 개정과 국민적 합의라는 정치적 조건이 충족된다면 절차적으로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국민적 합의와 정치적 리더십이 뒷받침된다고 해도 그 장벽은 매우 높다. 박정희 정부가 1965년 국민적 반발을 무릅쓰고 한일 국교 정상화를 성사시킨 사례처럼 정치 지도자의 결단이 반대 여론을 돌파한 경우는 있었다.

    이는 감정보다는 국익을 우선시하는 '실용외교'의 전형으로,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과 기술 도입을 위해 역사적 감정을 뒤로 하고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를 추진한 사례였다. 결국 현실성은 매우 낮지만, 정치적 결단과 국제 환경의 변화가 맞물릴 경우 '압박 카드' 이상의 의미를 가질 여지는 남아 있다."

    -한미 관세협상이 교착된 가운데, 최근 백악관이 '조건 없는 미북 대화'를 언급했다. 북한도 체제를 존중한다면 대화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군축 협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기하는 대신 한국을 위협하는 전술핵은 유지하고 제재를 해제 받음으로써 사실상 인도·파키스탄급 핵보유국 지위를 얻을 수 있다.

    "북한이 전략핵 폐기를 약속할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 지킬지는 의문이다. 북한은 1994년 제네바 합의, 2005년 9·19 공동성명, 2018년 싱가포르 공동성명에서도 비핵화를 약속했지만 결국 이행하지 않았다. 북한이 제재 해제를 위해 당장 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ICBM 해체 정도겠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ICBM 해체만으로 대북 제재를 풀어준다면 큰 실수가 될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북핵 자체다. 특히 북한의 ICBM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단계이기 때문에 실질적 위협을 제거하는 조치가 아니다. 만약 트럼프가 이런 조건으로 제재를 해제한다면 국제사회는 이를 큰 실수로 평가할 것이다. 제재 해제와 미북 대화가 진정성을 가지려면 결국 비핵화로 귀결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트럼프도 국제사회의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은 아직 ICBM 재진입 기술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 그럼에도 폐기 자체는 의미가 있지 않나.

    "북한이 그간 불가능하다고 평가받던 것들을 결국 다 해 왔다. ICBM,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전술핵까지 차근차근 확보해 왔다. 북한이 러시아를 위해 파병까지 한 상황에서 반대급부로 군사기술 이전이 이뤄졌을 가능성도 크다. 특히 ICBM 완성의 핵심은 대기권 재진입 기술인데, 러시아가 이를 지원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ICBM을 쉽게 포기할 가능성은 낮다."

    -북한은 영변 냉각탑 폭파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처럼 상징적 조치를 취하며 과거의 '핵 폐기 쇼'를 반복할 가능성이 있다.

    "설령 ICBM을 폐기한다고 해도 기술 자체를 완전히 제거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북한은 언제든 ICBM을 재건할 수 있다. ICBM은 단순히 미국 본토를 타격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개입을 차단하려는 전략적 무기다. 하와이나 괌의 미군 기지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므로 미북 간 군축 협상이 쉽게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트럼프 혼자 결정할 사안도 아니다. 주한미군, 인도·태평양사령부, 군 출신 인사들의 반대도 거셀 것이다."

    -북한이 미국과 수교하고 제재를 해제 받은 후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얻어 국제사회에 편입될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제재 해제는 북한이 원하는 것이지만, 미국 대사관이 평양에 들어서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미국 대사관은 단순한 외교 거점에 그치지 않고 정보 수집 기지 역할까지 수행한다. 북한 입장에서는 이러한 활동이 곧 중앙정보국(CIA)의 전초기지와 다르지 않게 인식될 수밖에 없고, 이는 체제 안전을 정면으로 위협하는 요소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김정은은 베트남이나 중국식 개혁·개방 모델을 원하지 않는다. 통제된 체제를 유지해야 권력을 세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 편입은 체제 안정이 아니라 오히려 내부 혁명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의 삶이 조금씩 개선되고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할 때 체제가 흔들린다는 사실을 김정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의 수교나 대사관 개설 같은 근본적 변화는 김정은이 결코 쉽게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최근 '두 국가론' 논란이 제기됐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평화적 두 국가론'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사실상 수용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아 위헌 논란을 자초했다.

    "대한민국 헌법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 헌법 제3조는 한반도 전체를 영토로 규정하고, 제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헌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북한을 별도의 국가로 인정하는 두 국가론은 성립할 수 없다. 두 국가론은 결국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논리인데, 이는 헌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위헌이다."

    -입법 절차상 개헌은 국회의원 3분의 2 찬성과 국민투표 과반으로 가능하다. 국민의힘에는 개헌에 찬성하는 의원들도 있을 수 있어 형식적으로는 불가능하지 않다.

    "헌법 개정으로 북한을 국가로 인정한다면 헌법 제3조와 제4조를 손대야 한다. 이는 한반도 전체 영토를 스스로 절반 떼어내 북한에 넘겨주는 것과 같은 의미가 있다. 파장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 특히 통일 정책의 근간이 흔들리고, 북한 급변사태가 발생했을 때 한국의 대응 범위가 크게 제약될 수 있다. 헌법에 북한 지역과 체제를 국가로 인정한다는 조항을 삽입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이제는 북한에 급변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평가도 있지만, 만에 하나 북한에 급변 사태가 발생할 경우 중국 개입 문제는 어떻게 보나.

    "북한에서 급변 사태가 발생하면 중국은 개입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우선 군을 투입해 발판을 마련한 뒤 철수 시점에는 막대한 조건을 제시할 것이다. 현행 헌법 체제하에서는 북한 지역에서의 사태가 곧 대한민국 영토 내 사건에 해당하기 때문에 중국의 군사 개입은 즉각적인 주권 침해가 되며 이는 한미동맹 차원에서 미군의 대응을 촉발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을 별도의 국가로 인정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중국은 '국경 인접국에서 발생한 사태에 개입한다'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고, 이는 사실상 19세기 말 열강의 한반도 개입 구도를 재현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면 중국의 탈북자 북한 인권 문제 제기에도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인권은 인류 보편적 가치다. 북한 인권 문제든, 중국 신장 위구르나 티베트, 홍콩 민주화, 나이지리아 기독교인 탄압이든, 우크라이나 전쟁이든 모두 국제사회가 제기할 수 있는 사안이다. 자유민주국가로서 한국이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건 당연하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든 하지 않든 인권 유린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헌법상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좌시할 수 없는 문제다. 두 국가론이 현실화하더라도 북한 인권 문제에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다."

    -앞으로 4년 가까이 트럼프 2기와 이재명 정부 임기가 겹친다. 그 시기 한국 외교가 맞닥뜨릴 가장 큰 도전과 기회는 무엇이며, 이를 돌파하기 위한 전략적 방향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한미 양국의 가장 시급한 당면 과제는 관세 협상이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조속히 매듭지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 외교의 중장기적 도전은 대중·대북 정책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크다. 동맹은 공동의 적과 구체적 목표를 공유하지 못하면 사실상 와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만 유사시 미국이 방어에 나섰는데 한국이 강 건너 불구경하듯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면 한미동맹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이는 중국과 전쟁하자는 뜻이 아니라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이 동맹을 어떻게 유지·발전시킬지를 미리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크라이나와 달리 한국은 미국이 최대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한 중국을 견제하는 데 직접적인 기여가 가능하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고 '스쿼드'(S-QUAD·미국·일본·호주·필리핀로 구성된 비공식 안보협력체) 참여 등 인도·태평양 지역 내 역할 확대에 나서는 한편, 중국의 해양 굴기에 대응하는 미국 해군력 강화 과정에서 한국 조선업이 선박 수출·보수·수리·정비(MRO)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또 하나의 기회는 미국 원전 시장이다. 미국은 AI 확산과 산업 수요 증가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고, 안정적 전력 공급이 시급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23일 행정명령을 통해 원자력 발전 용량을 현재 약 100GW에서 2050년까지 400GW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는 약 300GW의 순증가를 뜻하며, 대형 원자로 수백 기에 해당하는 대규모 확충이다.

    한국은 축적된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원전 건설에 참여할 기회를 적극 모색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SMA) 재협상도 새로운 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단순히 액수 증감의 문제가 아니라 동맹의 전략적 역할과 맞물려 논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 ▲ 이정훈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장은 지난 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새천년관에서 한 뉴데일리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 이정훈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장은 지난 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새천년관에서 한 뉴데일리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이정훈 연세대 국제학대학원(GSIS) 원장은

    1961년생으로 미국 터프츠대 국제정치학 학사와 동 대학 플레처스쿨 국제정치학 석사를 거쳐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외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부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2008~2010년 연세대 언더우드국제대학장을 역임했다.

    현재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원장직을 맡고 있다. 2013년 외교부 인권대사, 2016년 북한인권법에 따른 초대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로 활동하며 국제사회에서 북한인권 증진에 기여했다. 2022년 통일부로부터 북한인권재단 이사로 추천됐고, 2023년에는 통일부의 북한인권증진위원장과 통일미래기획위원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의 인권·탈북민지원분과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북한 문제 전문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동북아 안보 및 국제정치 전문가로서 탈북민 인권보호와 한반도 평화 구축을 위한 학술적, 실천적 노력을 계속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