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거리, 체감 온도 영하 10도에도 기부 '행렬'"크리스마스 앞두고 많은 이들이 행복해졌으면""조금이라도 도움 주고자 구세군 종소리 울릴 것""작년과 기부액 큰 차이 없어 … 위기 속 연대 작동한 결과"
  • "경기가 안 좋아서 조금이라도 나누고자 기부하게 됐어요."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 체감온도 영하 10도를 기록한 이날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금빛의 돼지 저금통을 든 시민이 자선냄비에 기부하며 남긴 말이다.

    경기 파주에 사는 60대 김모씨는 기부 소감을 묻자 "매년 하는 일"이라며 머쓱해했다. 그는 "1년 동안 돼지 저금통에 잔돈을 꼬박꼬박 모아 직장 근처인 명동에서 매년 기부를 한다"며 "요새 다들 어렵다는데 누군가에게 꼭 도움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 ▲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서 한 남성이 구세군 자선냄비에 돼지 저금통을 기부하고 있다. 2024.12.24. ⓒ정혜영 기자
    ▲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서 한 남성이 구세군 자선냄비에 돼지 저금통을 기부하고 있다. 2024.12.24. ⓒ정혜영 기자
    ◆ '경기 불황·탄핵 정국'에도 주머니에서 지폐 꺼내는 시민들

    경기 불황과 탄핵 정국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온정을 나누는 기부 손길이 적지 않다. 기자가 명동 거리 한복판에 위치한 구세군 자선냄비에 서 있던 한 시간 동안 지갑을 연 이는 30명이 훌쩍 넘었다.

    자선냄비를 찾은 이는 많으면 10분에 20명 남짓. 가족 10명이 와서 기부에 동참한 이들도 있었다. 손이 얼 정도로 추운 날씨였지만 주머니에서 기꺼이 지폐를 꺼내는 이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누나 손을 잡고 빨간색 자선냄비에 성금한 6살 아이가 눈에 띄었다. 장갑과 모자와 패딩으로 무장한 다른 아이도 고사리 손으로 모금함에 지폐를 넣었다. 이날 모금함에 다가온 시민들은 하나같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선냄비 앞에 서 있던 70대 구세군 현장 담당자는 "6·25 이후 나라가 못살았다"며 "그때를 생각하며 모금 활동에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가를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구세군 종을 울리겠다"는 말은 명동거리를 훈훈하게 만들고 있었다.
  • ▲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서 영하의 날씨 속에서도 어린아이가 자선냄비에 기부를 하고 있다. 2024.12.24. ⓒ정혜영 기자
    ▲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서 영하의 날씨 속에서도 어린아이가 자선냄비에 기부를 하고 있다. 2024.12.24. ⓒ정혜영 기자
    ◆ "작년과 기부액 큰 차이 없어 … 위기 속 사회적 연대 작동한 결과"

    24일 구세군에 따르면 올해 기부액은 거리모금이 시작된 날로부터 12월 16일까지를 기준으로 했을 때 지난해보다 1.6%밖에 줄지 않았다. 

    구세군 관계자는 "연말 분위기가 어수선해도 시민들이 기부에 많이 동참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어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모금, QR 코드·카드 단말기를 통한 스마트자선냄비, 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에 놓인 기부 키오스크를 통해 기부도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기부금이 가장 많이 모이는 장소를 묻자 "서울 명동과 용산역 광장"을 꼽았다. "'구세군 자선냄비'가 1928년에 시작됐는데 처음 모금 활동이 이뤄진 곳이 바로 명동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시민들의 경제적, 심리적 여력이 부족한데도 기부 행렬이 이어지는 것은 '위기 상황에서 시민들의 연대 의식이 발휘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향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보통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 기부가 줄어드는 특성이 있다"며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시민들이 공익을 위해 희생하는 흐름이 감지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최근 많은 시민들이 탄핵 집회에 함께 참여하고 서로 돕는다"며 "이는 국난의 위기를 함께 극복한 역사적 DNA가 작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외환위기 때 금모으기 운동처럼 시민들의 사회적 연대 필요성이 무의식적으로 발휘된 결과"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