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위, 美 구글 방문‥ 선제적 규제 요청야권, '유해 유튜브 차단 약속' 성과 무시방심위원장 태도 지적‥ "국제 망신" 비난공언련 "사회적 책임 방기 기업 왜 감싸나"
  • ▲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뉴시스
    ▲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뉴시스
    최근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위원장이 유해 콘텐츠 차단에 소극적인 구글의 '자율 규제 시스템'에 경종을 울리는 외교적 성과를 거뒀음에도, 방심위 노조를 비롯한 야권에서 되레 구글의 입장을 두둔하고 류 위원장의 처신을 맹비난해 논란이 일고 있다.

    류 위원장은 지난 14~18일 3박 5일 일정으로 미국 구글 워싱턴 본부를 방문해 마컴 에릭슨(Markham Erickson) 구글 정부·대외정책담당 부사장 등과 실무 협의를 갖고, 얼마 전 부산 모처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이 유튜브로 10시간가량 생중계된 것을 거론하며 구글 측의 늑장 대응을 문제 삼았다.

    이 사건은 지난 9일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일어난 형사사건으로 당시 한 유튜버가 다른 남성 유튜버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는데, 피해자의 음성 등이 여과 없이 유튜브 생방송으로 공개됐다.

    이에 방심위가 구글 측에 영상 삭제를 요청했으나, 이 참혹한 영상은 10시간이 지나서야 삭제됐다.

    업계에 따르면 구글은 유튜브 콘텐츠의 경우 주로 자체 규정을 위반했을 때만 차단이나 삭제 조치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로부터 삭제 요청을 받아도 이를 즉각 수용하기보다 '자율 규제 시스템'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특히 구글은 국내 인터넷 검색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네이버·카카오·SK컴즈 등 국내 기업들이 회원사로 있는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에 가입하지 않아 가짜뉴스 차단과 청소년 보호 등을 위한 선제적 조치에 미온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 구글코리아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특정 국가의 자율 규제에 따르기 어렵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이번에 류 위원장이 마컴 부사장으로부터 "한국 내 불법·유해 유튜브 콘텐츠에 대해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삭제·차단 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성과라는 분석이다.

    당시 류 위원장이 "한국 내 불법·유해 유튜브 콘텐츠에 대한 구글 측의 삭제·차단 조치가 신속히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이에 대한 개선을 촉구하자, 마컴 부사장은 "향후 한국의 실정법과 규정에 어긋나는 유튜브 콘텐츠에 대해서도 신속하게 차단 조치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불법·유해 유튜브 콘텐츠들이 유통될 경우 한국의 방심위와 보다 더 긴밀히 협력할 수 있도록 검토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류 위원장이 구글을 방문하기 전 구글코리아를 통해 전달한 의제에는 이 내용이 없었으나, 최근에 발생한 유튜버 살인사건 영상의 심각성을 고려해 긴급 의제로 선정적 콘텐츠에 대한 '선제적 자율 규제'를 구글 본사에 요청한 것이라는 게 방심위 측의 설명이다.

    류 위원장이 구글 워싱턴 본부를 다녀간 후 구글코리아 정책총괄담당 등 2명의 실무진이 지난 21일 방심위 사무실을 찾아와 실무 협의를 한 데 이어, 유튜브 담당 실무자 2명도 지난 24일 방심위를 방문해 워싱턴 미팅 결과에 따른 후속 조치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코리아 측은 애당초 의제에 없었던 '유튜브 유해 콘텐츠 문제'가 류 위원장과 마컴 부사장 간 회의에서 논의된 것을 두고 구체적인 협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방심위를 방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구글코리아 관계자들이 후속 협의를 위해 방심위를 방문한 당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통신심의위원회지부는 <류 위원장의 해외출장, 국제적 망신이 따로 없다>는 성명을 통해 "구글코리아 측이 방심위를 '항의 방문'한 것"이라며 비난의 소리를 높였다.

    방심위 노조는 "임기 말 급하게 추진한 류희림 위원장의 해외 출장, 떠나기 전부터 불안하더니 결국 사고를 친 모양"이라며 "구글 본사 회의실의 책상을 쾅 내리치며 호통을 쳤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이런 무례한 회의를 처음 경험했을 구글 본사의 임직원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고 비아냥댔다.

    방심위 노조는 "긴급하게 출장을 잡은 이유가 본인의 무례함을 국제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던가"라며 "사전에 조율한 의제와 질문지를 아예 무시하고 본인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는 모습이 훤하게 그려진다"고 비난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방송심의소위원회와 전체회의에서 일방적으로 떠들다가 회의를 종료해 버리는 광경이 우리야 익숙하지만, 마컴 에릭슨 부사장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구글 측을 염려한 방심위 노조는 "오죽하면 구글코리아에서 출장 이후 방심위에 항의 방문을 왔겠느냐"며 "구글 본사 직원들이 류 위원장과의 미팅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후문이 들린다"고 밝혔다.

    방심위 노조에 이어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비난의 소리가 나왔다. 조승래 민주당 의원(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민주당 간사)은 지난 23일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의 나라 망신이 안팎을 가리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며 "안으로는 '입틀막 제재'로 언론 자유를 추락시키고, 밖으로는 해외 출장지에서의 기행으로 국격을 추락시켰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이 같은 일련의 주장과 비난에 방심위 측은 "일방에서 '~소문이 무성하다'는 등 근거도 불명확한 내용으로, 사실을 오인케 하는 주장을 펼치고, 일부에서 이를 그대로 인용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구글코리아 측이 찾아온 것은 항의가 아닌, 구글 본사와의 협의 내용을 묻는 질의 차원의 방문이었다"고 반박했다.

    또한 "류 위원장의 구글 본사 방문은 지난해 9월 구글의 대외정책을 책임지는 마컴 부사장이 방심위를 방문해 1차 협의를 한 데 이은 구체적 후속 협의를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며 "이틀 연휴까지 낀 3박 5일의 '일하는 출장'으로, 연초 업무운영계획 및 국외 출장 계획에 따라 추진됐다"고 설명했다.

    시민단체 공정언론국민연대(이하 '공언련', 상임운영위원장 이재윤)도 방심위 노조 측을 비판하고 나섰다.

    공언련은 지난 27일 배포한 <유해콘텐츠 방치한 '구글' 옹호하는 민노총, 사회혼란 조장하나?>는 제하의 성명에서 "민노총 방송통신심의위(방심위) 노조가 류희림 위원장의 미국 출장을 음해하기 위해 온힘을 쏟고 있다"며 "이들은 류 위원장이 출장을 가기 전에는 '외유성 출장'이라고 비난하더니 구글 측으로부터 유튜브 불법·유해 콘텐츠의 신속 삭제·차단 조치에 협력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성과를 올리자 뜬금없이 '국제적 망신'이라고 깎아내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언련은 "유튜브의 가공할 파급력을 감안하면 최근 빈발하는 불법·유해 콘텐츠 확산을 신속하게 차단하는 조치는 시급한 현안"이라며 "우리뿐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가 갈수록 자극적이고 편향적으로 조작된 콘텐츠를 단속할 방안을 마련하는데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인데, 구글은 막대한 수익을 내는 거대 글로벌 기업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재무관리학회 2023 추계 학술세미나'에서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구글코리아의 2022년 매출액은 해당 기업의 감사보고서 수치인 3449억 원의 최대 30배인 10조5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 같은 매출이 사실일 경우 구글코리아는 실제 납부액인 169억 원보다 26배 많은 4420억 원의 법인세를 내야 한다.

    공언련도 바로 이 같은 맹점을 지적했다. 공언련은 "2022년 구글이 우리나라에서 번 돈은 최대 10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국내 기업이라면 대략 4000억 원에 달하는 법인세를 내야했지만 싱가포르에 고정사업장이 있다는 이유로 구글은 155억 원을 내는 데 그쳤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에도 10조 원대 매출을 올렸을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 구글이 신고한 매출은 3600억 원, 납부한 세금은 233억 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공언련은 "이런 엄청난 '세금회피'로 배를 불리는 구글은 유튜브로 소비되는 콘텐츠에 대한 최소한의 감시와 사후 조치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따라서 "류희림 위원장은 한국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벌고도 사회적 책임을 방기한 구글 측에 합당한 요구를 한 것이고, 구글 측도 이를 받아들였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 공언련은 "그런데도 방심위 노조는, 허술한 콘텐츠 관리를 강력 항의한 류 위원장을 향해 '구글 측에 무례했다' '마컴 에릭슨 부사장이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는 등 마치 구글의 홍보회사라도 되는 양 희한한 광경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공언련은 "70~80년대 운동권은 '대기업이 외국 자본의 앞잡이 역할을 해 국내에서 발생한 이익을 해외 글로벌 업체에 넘겨줘 결국 국민을 가난하게 만들 것'이라는 논리로, 대기업을 '매판자본'이라고 몰아붙였다"며 "2024년 한국에서는 구글이 바로 그 매판자본 역할을 하는 기업이 됐다. 이런데도 구글을 두둔한다. 정치적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라면 국민의 이익과 사회 안전은 안중에 없다는 태도"라고 꾸짖었다.

    공언련은 "유튜브의 살인 생중계 등 불법·유해 콘텐츠 확산 방지는 방심위의 업무"라며 "방심위 노조는 민간 독립기구 방심위에 맡겨진 소임을 다하는 류 위원장에 대한 근거없는 비난을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