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통해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됨] 만들어졌다6.25는 재앙이자 시험···오늘의 대한민국 만든 원동력침략자가 일으킨 전쟁이 유발한 의외의 결과··· 헤겔이 말한 '이성의 간계'가 구현됐다
  • [편집자 주]
    올해는,
    △ 건국 75주년
    △ 6.25 73주년
    △ 한미동맹 결성(강제 휴전 당함) 70주년.

    전쟁은 국민을 [각성] 시킨다.
    전쟁은 [나라와 국민의 정체성(Identification)]을 확립 시킨다.
    침략·피침략, 적군·아군, 적·동지가 명확하게 구분되기 때문이다.

    1948년 8월15일.
    한반도 최초의 [자유민주공화국]이 탄생했다.
    무려 반만년만.
    [대한민국이란 나라]와 [대한민국 국민이란 의식]이 탄생했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깨우쳐
    [근대국가 국민의식]으로 성숙하기엔
    더 많은 시간·교육·시행착오가 필요했다.
    인구의 80% 이상이 문맹인 상황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건국 2년도 안돼, 6.25가 터졌다.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됨]이란 의식은,
    스탈린·모택동·김일성의 남침을 막아내는 전쟁을 통해,
    압축적으로 그리고 혹독하게 단련되어,
    단단하게 익어 갔다.

    서구 근대국가들이 수백년 걸려 이룬,
    [자유민주주의 공화국 수립 + 산업화 + 세계 시장경제 체제 + 정보화 = 현대 문명국가]를 우리는 압축적으로 해냈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이뤄낸 이런 문명사적 성취를 자극한 게 [전쟁 6.25].

    이런 차원에서,
    [전쟁 6.25]의 의미를
    4회에 걸쳐 집중해부·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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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6.25의 양면성

    6.25 남침은 신생 대한민국엔 재앙이었다.
    그러나 [스탈린·마오쩌둥·김일성의 남침]은,
    이를 계기로
    [한·미 동맹+유엔지지 확보]에 성공한 한국인을 한반도란 조그만 동굴 속에서 뛰쳐나와
    광활하고 선진적인 근대 자유민주주의 해양문명권으로 차원 상승하게 만든 의외의 효과를 냈다. 

    특히 [전쟁 6.25 ]가,
    전통사회 한국에 가한 [네 가지 충격]
    [봉건 왕조+일제 잔재]를 더욱 역동적으로 해체하고,
    대한민국의 [근대 국민국가다움]을 한층 더 촉진했다. 
  • ■ 근대화 군부(modernizing soldiers)의 충격

    [전쟁 6.25]는,
    전쟁 수행 군대의 비중을 대폭 증대시켰다.
    전통사회 한국 안의 가장 근대화한 조직이 된 군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전근대적 유산을 급속히 청산했다.
    군·경찰·행정공무원 등 전문가(expertise)와 사업가의 경영 효율성을 중시했다.
    군은,
    [근대적 나라 만들기(modern nation building)]의 기수로 떠올랐다. 

    ■ 서양 문물제도(文物制度)의 충격  

    주한미군 등 유엔군 주둔으로,
    서구 문명과 근대적 사고방식·제도·교육·대중문화가 물밀 듯 들어왔다.
    주자 성리학과 토착 민간신앙들이
    양이(洋夷)·남만(南蠻)이라 배척하던
    ‘서양 오랑캐’의 선진 문물이,
    전통사회 한국인들의 일상에 쓰나미처럼 밀려들었다.
    빅 뱅(Big bang)이었다. 

    △ 한·미 동맹 △ 서구적 세계관·가치관·문화
    △ 미제(美製) 상품 △ 원조물자
    △ 동·서 인적 만남·접촉·교류가
    전통사회 한국인들의 의식을 흔들어 놓았다.

    ■ 개인·개인주의의 충격 

    [전쟁 6.25]는,
    가부장적 대가족을 해체하고,
    △ 개인주의 △ 보편주의 △ 메리트 주의를 불러왔다. 

    <필자 註>
    개인·개인주의 : 근대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단위인 개인 ‘나’의 탄생.
    보편주의 : 글로벌 기준에 맞추려는 것.
    메리트주의 : 개인의 경쟁력을 중시하는 것.
    이 모두는 근대 문명의 필수적 요건.

    ■ 프로테스탄티즘의 충격

    [전쟁 6.25] 기간중
    북한에서 온 개신교 신자들·주한 미군·선교사들의 영향으로
    한국 사회엔 프로테스탄티즘(개신교) 신앙이 확산했다.
    청교도 정신은,
    자본주의적 이윤추구를 ‘좋은 것’으로 규정하고,
    천직(天職)을 중시한다.
    이 에토스(기풍)는,
    한국 사회 전반에 근대의 DNA를 파종했다.

    ■ 이승만·박정희, 6.25 4대 충격 극복에 성공하다

    이승만·박정희 두 대통령은,
    [전쟁 6.25]가 불러온 위와 같은 군사·정치·경제·사회·문화 충격들을 수용해,
    한국을 오늘의 자유민주주의 글로벌 중추 국가로 만든 초석을 놓았고 기둥을 올렸다.

    그들의 [대한민국 만들기]는,

    △ 성리학적 봉건 잔재·쇄국주의를 타파하고
    △ [조선+일제] 유산을 도태시키고
    △ 북·중·러 전체주의를 거부하고
    △ 종속이론(dependency theory)의 ‘적실성 없음’을 반증(反證)한,

    ‘한강의 기적’이었다.

    이것이,
    6.25 남침 당사자들(스탈린 + 모택동 + 김일성)이 휴전선 이남에 ‘바라지 않았던’,
    전화위복의 역설적 효과(헤겔이 말한 이른바 '이성의 간계')였다.

    <필자 註>
    참고 문헌 :

    <Effects of the Korean War on Social Structures of the Republic of Korea> Eui Hang Shin, Professor of Sociology, University of South Carolina.

    <The Impact of the Korean War on the Korean Military> Choong Nam Kim, POSCO Fellowship Coordinator, East-West Center (Hawaii)

    <한국전쟁과 기독교> 윤정란, 숭실대 교수, 한울 출판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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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근일 칼럼 : 6.25 73주년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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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6.25 계기로, 한국은 반만년만에 세계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