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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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대통령 임기동안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던 외교안보의 중심축은 대북관계였다. 문 정부가 중국에 대해 시종일관 저자세를 취했던 이유 중 하나도 ‘북한에 대한 긍정적 영향력 행사’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현실마저 도외시한 외교 무지의 소산이다.
제 아무리 뜻이 좋다고 하더라도 현실과 동떨어진 외교로는 그 판을 조금도 바꿀 수 없다. 그런 생각은 몽상(夢想)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상대에게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하고 굴종적인 자세로 일관했다면 국민적 공분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중외교’가 그랬다.
문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몽상을 가지고 있던 것은 취임 전부터였다. 2015년 8월 16일,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문 대통령은 광복70주년 기자회견에서 “동북아외교의 최우선 가치를 ‘평화’와 ‘국익’에 두고,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일과 한중 협력을 발전시키는 일을 균형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날 당 최고위원회에서는 “끌려가는 외교가 아니라 주도하는 외교를 해야 한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중국 전승절 70주년기념행사에 참석할 것을 권유했다. 제1야당의 대표가 공개적으로 중국 방문을 권유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미중 양국에 대한 균형외교가 필요하다’는 문 대통령의 생각 자체가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냉엄한 외교 현실을 간과했다는 점에서 그것은 한낱 이상적 구호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나이브(naive)’함에서 파생된 외교력은 정글과 같은 외교 무대에서 효용을 발휘할 수 없다. 문 정부의 ‘대중외교’가 성공할리 만무했던 이유다.
‘허니문’에서 ‘비터 문’으로 돌변한 한중관계
6.25전쟁으로 우리에게 ‘먼 나라’였던 중국은 1992년 한중수교이후 ‘가까운 나라’로 성큼 다가왔다. 한국은 대만의, 중국은 북한의 반대를 무릅쓴 결과였다. 이후 양국의 인적, 물적 교류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992년 64억 달러였던 대중 교역은 수교30주년인 2021년에는 3천억 달러가 넘어 47배로 급성장했다.
우리가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는데 중국의 시장은 큰 도움이 됐다. 2014년 시진핑 주석의 방한에서 펑리위안 여사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연배우 김수현을 언급할 정도로 한류는 중국에서 위세를 떨쳤다.
중국도 한국과의 수교로 많은 것을 얻었다. 한국의 앞선 기술과 마케팅을 전수받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을 키워내는데 성공했고, 이는 중국이 미국과 함께 세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G2(G2Group of 2)의 위상을 확보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2015년 중국을 방문해 ‘항일전승70주년기념열병식’에 참석했다.
‘밀월(蜜月)’로 표현될 만큼 가까웠던 양국관계는 북한의 연이은 핵미사일 도발로 인해 금이 가기 시작했다. 2016년 7월,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가 확정된 것을 계기로 중국의 태도는 돌변했다.
중국은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며, 한국에서 제작한 콘텐츠 또는 한국 연예인이 출연하는 광고 등의 중국 내 송출을 금지하는 ‘한한령’(限韓令)을 내렸다. 한국행 단체관광 상품판매가 금지됐고, 한류열풍이 최고조였던 대중문화는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 기업들과 상점들도 큰 타격을 입었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삼성전자 가전제품의 시장 점유율은 현저히 하락했고, 현대기아차도 판매량이 급감했다. 경북 성주의 골프장을 사드 부지로 제공했다는 이유만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롯데는 쫓겨나다시피 모든 사업을 정리했다. 이때부터 한중관계는 달콤했던 ‘허니문(honeymoon)’에서 쓰디쓴 ‘비터 문(bitter moon)’으로 변했다. 수교 이후 양국 관계를 상징하는 용어에서 빠지지 않았던 ‘협력’과 ‘동반자’란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관계는 악화됐다.
‘3불(不)합의’ - 굴욕적인 대중외교의 시작
문재인 정부는 사드 배치로 인해 중국과의 관계가 경색된 시기에 출범했다. 대통령 후보 시절 사드 배치에 강력히 반대했던 문 대통령은 2017년 9월 대국민 입장문을 통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사드 임시배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핵실험과 잇따른 미사일 실험 발사로 어쩔 수 없이 입장을 바꾼 것이다.
문 정부 출범으로 사드 배치 철회를 기대했던 중국은 압박 수위를 끌어올렸고, 그해 10월 문 정부는 중국의 보복을 완화해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사드 추가배치 불가’, ‘미국 미사일방어체제(MD) 불참’, ‘한미일 군사동맹 불가’ 등 주권 포기와 다름없는 굴욕적인 ‘3불(不)합의’를 하고 말았다.
사드 배치는 엄연한 대한민국의 안보주권 행사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이를 문제 삼은 중국에 처음부터 당당히 맞서지 않음으로써 굴욕으로 점철된 대중외교 행보를 자초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중국을 향해 “사드 배치는 명백히 우리 주권적 영역”이라며, “사드 배치 철회를 주장하려면 자국 국경 인근에 배치한 장거리 레이더를 먼저 철수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과는 크게 대비된다.
중국은 사드 배치에 대해 공식적으로 “중국의 전략안보이익을 직접 훼손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막상 훼손된다는 ‘전략안보이익’이 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사드 배치 철회를 주장하는 중국의 속내가 따로 있다는 지적들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 중 ‘한국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위해 한미동맹을 흔들려는 의도’라는 외교전문가들의 주장과 “중국이 유사시 한국 타격용으로 쓸 미사일들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라는 군사전문가들의 분석은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린다.
‘3불(不)합의’는 사드 배치를 한미동맹의 견고함을 측량하는 척도라 여겼던 미국의 기대를 무너뜨렸다. 문 정부가 앵무새처럼 한미동맹이 ‘철통(Iron clad)’ 같다고 반복하면서도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는 참여하지 않는 모호한 태도에 실망하고 있던 미국은 더 이상 문 정부를 신뢰하지 않았다. ‘만만한 아낙네 제 서방 굿도 못 본다’더니, ‘3불(不)합의’로 인한 문 정부의 처지가 딱 그 꼴이었다.
※ 문재인 정부의 대중외교 굴욕사례를 다룬,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2)'가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편집자 주] 윤석열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지났다. 문재인정권이 5년 동안 남긴 커다란 상흔은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다. 문재인정권이 대못을 박아놓은 반시장·친사회주의 정책들이 윤 정부 앞에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다.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비정상적인 국정 운영으로 나라를 망가뜨렸다. 대한민국은 경제·외교·국방·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쉽사리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그 상처도 깊다. 국격(國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나라 곳간도 거덜났다.떼쓰기로 헌법을 농락하는 이른바 ‘촛불정신’을 팔아 반시장주의자의 입맛에 맞는 ‘적폐청산’에 돌입했다. 전체주의 국가의 공포정치가 그렇듯 법치와 상식을 벗어난 뒷방인사와 여론재판으로 사법부와 언론마저 장악했다. 문재인정권의 도를 넘은 ‘편 가르기’ 정책으로 국민들 간 정치적 반목과 대립은 일상이 되어버렸다.해방 직후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좌우 대립이 극심했던 이데올로기 대혼돈의 시기로 되돌아간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국민이 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살고 있는 우리 국민들은 특히 상식과 공정을 파괴한 문재인정권에 분노했다. ‘조국사태’로 대변되는 문대통령과 586 운동권 인사들의 ‘내로남불’과 ‘아시타비(我是他非)’는 이제 민주당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윤 정부를 포함, 앞으로 들어설 정권들이 다시는 이 같은 무지와 오기, 당파적 이기주의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려면 무엇보다 문 정권의 정치적, 정책적 과오들을 낱낱이 기록하고 기억해야만 한다. 문 정권의 패악질은 정권이 바뀌었다거나 더 강력한 패악정권이 나타났다고 해서 잊어서는 안 될 만큼 심각하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기에, 대한민국 국민의 기억에 일목요연하게 저장해 놓아야 한다. 뉴데일리는 문 정부 출범 이후 벌어진 기막힌 실정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