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무실 인근 주민들 "시끄러워 죽겠다" 주위 경찰 늘어 삼엄해진 분위기 전장연 대표 "(금지 유지는) 오히려 공안사회로 가는 길"상인들 "다 집값 때문이지, 피해는 없어"
  • 24일 오전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한 1인 시위 참가자가 집무실을 보고 있다. ⓒ서영준 기자
    ▲ 24일 오전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한 1인 시위 참가자가 집무실을 보고 있다. ⓒ서영준 기자
    "야이 x바리야!" "개xx야!"

    용산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1인시위를 하던 60대로 보이는 한 남자가 집무실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친다. 주위 경찰들의 아랑곳하지 않는 표정을 보고 익숙한 광경임을 깨달았다. 1~2분간 욕이란 욕을 다 퍼붓던 남자는 제 풀에 지쳤는지 가로등에 기대앉아 숨을 골랐다.

    도로 위를 가득 메운 차들, 경찰복을 입고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30명 남짓한 경찰, 1인시위 참가자들과 그들 뒤에 빽빽히 붙어 있는 피켓과 현수막들이 24일 오전 9시쯤 용산 대통령집무실 앞 풍경이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피켓을 찍어대자 한 경찰관이 다가와 "뭐 하시는 분인가요?"라고 물었다. 명함을 보여주며 기자라는 신분을 밝히자 의심의 눈초리를 거뒀다. 반대편으로 가니 다른 경찰관이 같은 질문을 했다. 
    그렇게 세 번이나 신분 조사(?)를 마치며 삼엄한 경계태세를 실감했다.

    이런 광경이 이제는 대통령집무실 앞 사거리의 평범한 모습이 될 수 있다. 주말이면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열리던 집회·시위 단골 장소가 용산 시대를 맞아 이동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시대에도 그랬지만 대통령집무실과 관저 앞 집회·시위는 사전에 금지하려는 경찰과 집회의 자유권을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늘 다툼의 소재였다. 용산 대통령집무실 역시 경찰과 시민단체 측 사이에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해석을 놓고 법적 공방을 벌였다.

    1차전은 시민단체 '승'. 그리고 현재까지 법원은 집회를 여는 사람들의 손을 들어 주고 있다. 집무실이 대통령의 생활공간인 '관저'가 아니라는 판단이다. 

    경찰은 그러나 대통령집무실도 '관저'에 포함해야 한다며 집무실 100m 이내에 신청한 각종 집회·시위를 사전에 금지하고 있다. 법원에 낸 본안소송이 마무리될 때까지 금지 통고 원칙을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최관호 서울경찰청장은 23일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며 경찰 지도, 경찰 강제권을 적절히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또 "법원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 집무실 100m 이내 집회 금지 통고 원칙을 유지하겠다"면서 "1심 판결이 나오면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해 최종 결정을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 24일 오전 대통령 집무실 앞에 피켓·현수막이 걸려있는 모습ⓒ서영준 기자
    ▲ 24일 오전 대통령 집무실 앞에 피켓·현수막이 걸려있는 모습ⓒ서영준 기자
    그렇다면 대통령집무실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 반응은 어떠한지 직접 만나 물었다.

    "판사들이 여기 와서 살아봤으면 좋겠어" 

    집무실과 불과 50m도 떨어지지 않은 주택에 사는 60대 여성 김모 씨는 "저희는 조용히 살다가 솔직히 말해서 시끄럽다"며 "(집무실 앞 집회 시위를 허용한) 판사들이 여기 와서 살아봤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김씨는 이어 "판사들이 살아보면 (집회 시위를 허용한다고) 안하지 않을까"라고 자문하더니 "그건 아니다"라며 들고 있던 빗자루를 허공에다 내리치며 말했다. 

    김씨는 그동안 쌓인 것이 많았는지 옆에 지나가던 다른 여성의 소매를 붙잡으며 "여기도 여쭤봐"라고 등을 떠밀었다. 그러면서 김씨는 자신이 대신 질문했다. 

    "여기 집회·시위 때문에 시끄럽잖아?" 

    질문을 들은 여성은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시끄러워 죽겠다"고 말했다. 여성의 잔뜩 찌푸린 표정에서 얼마나 당혹해 하는지 느껴졌다. 

    이번에는 대통령집무실 인근에 위치한 교회를 찾아갔다. 문을 두드리자 인자한 인상의 여성이 나와 반겼다.
    교회에서 전도사 일을 한다는 40대 후반 이모 씨는 "아무래도 (집회·시위로 인한) 소리가 계속 들리니 일상에서 늘 불편하다"고 말했다. 

    "집회·시위 반대를 위해 주민들과 어떤 말이 오가느냐"는 질문에 이씨는 "말은 나오고 있는데 아직 그런 계획은 없다"면서 "(집회·시위가) 계속 이어지면 주민들과 합의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집회·시위 관리를 위해 배치된 경찰들과 관련해서도 "경찰관들이 늘고 이러니 너무 좀 삼엄해졌다고 해야하나…"라고 바뀐 거리의 분위기를 지적했다.   

    일부 상인은 집회·시위에 그닥 부정적이지 않았다. 

    "집값 때문이지 피해는 전혀 없어"

    대통령집무실 근처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50대 중반 김모 씨는 "'재개발하는 데 혹시 지장이 있지 않을까' 그것 한 가지 외에는 (집회·시위 때문에) 불편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주민들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 다 이촌동 사람들이 집값 문제 때문에 그렇다"며 집회·시위로 인한 피해는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집무실 앞 집회·시위를 찬성하는 시민단체 측 이야기도 들어봤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는 본지와 통화에서 "(경찰이 금지 통고를 내린 것과 관련) 경찰이 헌법적 권리를 갖다가 자의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나요"라며 집회의 자유를 강조했다. 

    박 대표는 "금지 통고는 너무 월권이라고 생각한다"며 전날 경찰 강제권을 행사하겠다던 서울경찰청장 발언에 "혼자 자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박 대표는 그러면서 "경찰이 지속적으로 이렇게 한다는 것은 오히려 공안사회로 가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며 경찰의 행태를 꼬집었다.    
     
    현재 대통령집무실 앞 집회·시위 가능 여부를 두고 서로 다른 견해에 따라 마찰음이 커질대로 커진 상황이다. 향후 경찰이 낸 본안소송에서 사법부가 '허용' 견해를 이어갈지, 경찰과 인근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그들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