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총독' 스티코프, 평양 남북한연석회의 공작유명한 '삼천만에 읍고함' 성명작성에 성시백 참여2월폭동은 제주4.3사건으로...이승만, 스탈린에 승리
  • ▲ 해방후 '북한 만들기'와 남한 공산하의 주역들, 소련 장군 스티코프와 평양 소련군정사령관 레베데프(오른쪽).
    ▲ 해방후 '북한 만들기'와 남한 공산하의 주역들, 소련 장군 스티코프와 평양 소련군정사령관 레베데프(오른쪽).
    ●2월의 건국 드라마 #1 <2.7폭동과 김구>

    ★”해방후 남북한에서 스티코프의 결재 없이 진행된 일은 하나도 없다“ (평양의 소련군정사령관 ‘레베데프 비망록‘)★

    “통일 위해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김구 성명서
     알고 보니 거물간첩 성시백이 공동작성 했다고?!

    ◆1948년 2월7일, 남로당의 이른바 ’2.7구국투쟁‘이 일어났다.
    해방직후 소련이 남한에 조직한 남로당 전평(全評: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와 ’민주주의민족전선‘이 좌익단체들과 노조들을 총동원 전면투쟁에 나선다. 철도 전기등 총파업을 일으켜 전국 생산기관이 파괴되고, 교통 운송 통신이 마비되었다. 무장시위대들은 곳곳의 경찰서와 지서들을 습격하여 경찰과 양민들을 학살하고 폭력시위로 공권력과 무한투쟁을 벌였다.

    이 2.7폭동은 말할 것도 없이 유엔이 결의한 남북한 총선거를 거부(1.22)한 스탈린이 남한만의 선거도 원천봉쇄하려는 것, 유엔한국위원단의 철수와 미국의 남한포기를 노린 작전이다.
    남로당은 사흘 만에 파업동원 8만471명, 군중투쟁에 134만3,289명이 참가하고 사망 57명, 피검 1만854명이라고 스스로 발표한다. 
    미군정장관 딘(W. Dean), 경무부장 조병옥 등은 사태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담화를 잇따라 발하며 진압에 나섰지만 경찰력은 태부족이다.
  • ▲ 1946년 미소공동위원회에 참석한 소련 스티코프(흰군복), 그 옆에 김구와 이승만이 보인다. 맨오른쪽은 안재홍 미군정민정장관.
    ▲ 1946년 미소공동위원회에 참석한 소련 스티코프(흰군복), 그 옆에 김구와 이승만이 보인다. 맨오른쪽은 안재홍 미군정민정장관.
    ◆2월10일, 공산당의 파업과 폭동이 한창일 때 백범 김구는 장문의 성명을 발표한다. 유명한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이다. (읍고(泣告)는 울면서 고함)

    “....통일하면 살고 분열하면 죽는 것은 고금의 철칙이나 자기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하여 남북의 분열을 연장시키는 것은 전 민족을 죽음의 구렁텅이(死坑)에 넣는 극악 극흉의 위험한 일이다.(중략). 지금으로서 나의 단일한 염원은 3000만 동포와 손을 잡고 통일된 조국, 독립된 조국의 달성을 위하여 공동 투쟁하는 것뿐이다. 이 육신을 조국이 수용한다면 당장에라도 제단에 바치겠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도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나는 내 생전에 38도선 이북을 가고 싶다....” (서울신문·1948년 2월 11~13일)

    ‘통일 조국’을 강조한 성명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대목에서 뜨거운 감동에 눈물이 솟는다고들 지금도 말한다. 국민감성에 호소하는 비장한 문장들로 수식된 핵심은 바로 ”남한단독선거를 막기 위해 북한과 공동투쟁 하겠다“는 한 줄이다.

    그런데, 김구는 스스로 연설문을 작성한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사사로운 편지들도 대필해주는 형편이라 사람들은 “선생께서 한글을 쓰실 줄 모르시나” 수근거렸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였다. 임정 때부터 김구의 문건들을 작성한 이는 최측근 엄항섭(6.25때 납북)으로 알려져 있다.

    이 ‘38선을 베고 쓰러지는’ 성명도 그의 작품이라는데 뜻밖의 사실이 밝혀진다. 
    놀랍게도 거물간첩 성시백이 ’공동작성‘한 것이라는 비밀이 드러난 것.(소련 기록과 북한 저작물 등). 중국에서 김구-엄항섭과 친분을 쌓은 국제간첩 성시백은 장제스 측근부대 요원이 되어 마오 공산당을 오가며 비밀 선전요원으로 기자노릇도 하였다.
  • ▲ 변장한 거물간첩 성시백.
    ▲ 변장한 거물간첩 성시백.
    ◆’가짜 김일성‘을 만들어 북한두목을 삼은 주역 스티코프는 필란드 공산화를 성공시킨 노하우로 한반도 공산화를 책임진 ’북한 총독‘이다. 중국말은 잘하는데 한글은 잘 쓸줄 모르는 소련군 빨치산 김성주를 데려다가 공산주의 상식부터 연설법 제스처 말투까지 가르쳐주고 연설문을 모두 써주고 연습시켰다는 에피소드를 보면 절로 기막힌 웃음이 나온다. 

    이런 스티코프가 남한적화사업에서, 성시백을 시켜 김구의 성명을 공동작성케 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적다고 전문가들이 지적한다. 스티코프는 모든 계획을 모스크바 당중앙 스탈린의 결재를 받은후 결재하여 시행 감독하였고, 남한내 주요 투쟁에 당시 화폐 몇 백만원씩 제공했다는 기록까지 남겼다.

    ’3.8선 베개‘ 성명을 낸 김구는 며칠 후 2월16일 남북한지도자 연석회의를 제의하는 편지를 김일성에게 전달한다. 김구가 먼저 남북회의를 제의하게 하고 다음달 3월에 북한이 수락한 것을 비롯, 남북회의 전체는 소련의 치밀한 정치공작 각본대로였다. 김구 일행 외에 남한 측 회의 참석자들을 수백명 결정하고, 북한에 인솔, 회의 진행 등을 맡은 남측 총괄자는 물론 성시백이었다. 
    해방 이듬해 10.1 대구폭동과 달리 전국적 조직망이 가동된 2.7폭동은 제주4.3사건으로 5.10선거를 방해하고 건국후 6.25까지 만행을 계속하였다. 이처럼 스탈린은 김구유인과 폭동작전을 병행하였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이승만 때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