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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보길 칼럼]12월의 흑역사, 암살→ 암살→ 암살… 미군정 "배후는 김구, 쿠데타 말라" 경고

김구세력 "미군정 엎어버리고 임정이 통치하자"비밀 테러조직, 송진우 여운형 장덕수 총격살해김구, 법정 증언… 사면초가 고립 자초 궁지에

입력 2021-12-14 11:11 | 수정 2021-12-14 11:11

▲ 백범 김구. ⓒ한중 근대화 100년 우호인물 선정위원회 / 연합뉴스 제공

건국전야 김구의 독주와 ‘좌충우돌’ 피바람! 
‘인간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행한다‘ 했던가.

해방 석달 후 11월 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한다. 미국은 ‘개인자격’으로만 귀국을 허용했다. 
왜냐하면, 2년전 카이로 회담때 중국 장제스가 “전쟁 끝나면 한반도는 중국에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루즈벨트는 이 말을 듣자 ‘장제스 품안의 코리아 임시정부’는 절대로 승인해선 안되겠다’고 결정한다. 다시 한반도가 ‘중국 속국‘이 되면 또 쟁탈전이 재발할 테니까.
남북한 미-소의 대결구도, 새로운 세계질서의 전개! 강대국들을 알고 세계정세를 볼 줄 알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국제전투무대가 한반도에 막을 연 것이다. 이것을 아느냐, 이것이 얼마큼 보이느냐...여기서 이승만과 김구의 길이 하늘과 땅처럼 갈라진다. 

★9월에 한민당(한국민주당)을 결성한 국내파들은 임시정부환영회를 구성, 생활대책을 강구하였다.
한민당수 송진우는 친구이자 광산왕 최창학의 저택 경교장을 김구 일행에게 주기로 합의하고, 모금을 통해 900만원, 경방 김연수가 500만원을 임정 측에 제공한다. 그런데 임정의 모 인사가 “부정한 친일파 돈은 안 받겠다”고 했다. 주는 것 다 받으면서.
12월 12일 저녁, 한민당은 김구 김규식 이시영 등 임정요인들을 초청, 종로 국일관에서 ‘봉영회’(환영대회) 개최를 위한 간담회 겸 만찬을 베풀었다. 

술잔이 돌면서 임정 측 해공(海公) 신익희가 대뜸 독설을 터트린다.
“국내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살았으니 총독부에 크든 작든 협력한 친일파들이다”
환영 자리는 금방 싸움판으로 변했다. 
한민당 장덕수가 벌떡 일어나 항변한다.
“임정이 그런 색안경을 끼고 우리 국민들을 보다니…해공, 그럼 난 숙청감이로군”
고하(古下) 송진우가 가세하였다..
“국내에 발붙일 곳도 없게 된 임시정부를 누가 모셔왔기에 그런 소리를 하오? 우리가 임정을 국민들이 떠받들게 하려는 것은 3.1운동 법통 때문이지 개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란 말이오. 당신들이 중국에서 무슨 짓을 해먹고 살았는지 우리가 모르는 줄 알아? 배는 고팠을 테지만 마음 고통은 우리보다 적었을 거요. 하여간 환국했으면 힘을 합해 건국에 힘쓸 생각부터 해야지, 그런 말은 앞으로 삼가시오. 해외에서 헛고생들을 했군. 쯧쯧.”
임정환영대회는 19일 서울운동장(현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에서 성대하게 치뤄진다.
◆1945년 12월 30일 한민당 대표 송진우(宋鎭禹, 57세) 암살.
12월 27일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마침내 ‘신탁통치 5년’ 발표가 나왔다. 
28일 경교장 긴급대책회의. 양측 발언 요지를 보자.

★김구 한독당=미군정을 엎어버리고 임정이 독립을 선언, 통치권을 행사해야한다.
                     ‘반탁 국민총동원 위원회’ 결성. 9대 강령 발표.
                   *신탁통치 순응자는 반역자로 처단하자.
                 *대한 임시정부를 절대 수호하자.
              *외국 군정의 철폐를 주장하자. 

★한민당 송진우=신탁통치안을 보지도 않고 서두르면 안된다. 미군정과의 충돌은 피하는게 좋다. 미국이 물러가면 남한은 조직이 막강해진 공산당 세상이 될 것이고 소련이 남북한을 먹을 것. 이를 막으려면 미국의 힘이 최소 2년쯤 필요하다. 무작정 흥분하지 말고 냉정하게 전략을 세워야한다.

임정 한독당 사람들은 “집어 치우라. 매국노 아니냐”며 고함을 지르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연이틀 맞서던 양측 회의는 30일 새벽 4시경 일단 휴회하고 송진우는 원서동 자택으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었다.

캄캄한 겨울 새벽 6시경, 송진우 방에서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청년들이 권총을 송진우에 난사하고 도망쳤다. 
송진우는 13발중 7발을 맞고 숨졌다.
범인 1명이 잡히고 나머지는 전국에 수배된다.

그러나 미군정도 정계도 시선은 모두 김구에게 집중되었다. 
왜냐하면, 김구가 중국에서 밀정과 친일파등 30여명을 살해할 때 동원한 비밀테러조직이 귀국하여 지하활동을 재개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구는 새로운 이름의 청년조직도 만들었다. 
미군정사령관 하지는 암살의 배후로 김구를 지목하였고, 새해 1월1일 김구를 불러 “쿠데타 일으킬 생각 말라”고 직접 경고하였다. 
수사를 맡은 수도경찰청장 장택상도 김구를 내사하였으며, 뒷날 브루스 커밍스도 그의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김구를 배후라고 써놓았다. 

★『송진우를 죽인 한현우는 송진우가 미국의 후견을 지지한 것이 살해동기였다고 말했다. 다른 증거는 한현우를 김구와 연결시켰다. 김구는 귀국했을 때 중국에서의 전력 때문에 여기저기서 ‘Killer'(자객)이라 불렸다. 하지는 김구에게서 별 감명을 받지 못했다. 김구의 첫 번째 행동이 한민당수 송진우의 암살을 공작함으로써 ‘Killer'라는 호칭이 사실무근이 아님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브루스 커밍스, ‘한국전쟁의 기원’ 1986)

★『고하(송진우)는 스탈린의 야심을 잘 알고 있었다.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을 지금 받아들이지 않으면 북한은 소련 것이 되고 말며, 우리의 힘으로는 반영구적으로 회복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기 때문에 불명예스러운 탁치라도 몇 년간만 눈 딱 감고 받자고 했던 것이다. 여운형도 같은 입장이었다...』 
 (남로당 총책 박갑동 ‘통곡의 언덕에서’ 1991)

송진우 암살사건으로 한민당은 물론, 미군정도 김구를 부정적으로 보게 되고, 임정세력 기피 또는 거부 의식이 곳곳에 자라난다.
◆2년후 1947년 7월 19일 몽양 여운형 암살. (이 사건은 소련-북한과 인연 깊은 여운형의 좌우합작에 얽힌 내막이 복잡하므로 여기서 일단 제외함).

◆1947년 12월 2일 한민당 정치부장 장덕수(張德秀,53세) 암살.
설산(雪山) 장덕수는 동대문 밖 제기동 자택 청설장(聽雪莊)에서 오늘도 동지들과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를 논의한다. 
11월 유엔총회서 통과된 ’유엔감시 남북한 총선 결의안’에 따른 한민당의 집권전략이 발등의 불이다. 
한독당과의 통합문제는 김구의 임정 집권론에 막혀 장덕수는 “합당이 아니라 헌당(당을 바치는 것)”이라며 반대하였다. 
임정봉대론은 비현실적인 김구의 권력욕일 뿐, 궁지에 빠진 한독당을 합당으로 구해줄 이유가 없다고 결론내린 지 오래다. 
미군정 당국은 여운형 암살사건도 ‘배후는 김구’로 찍어 수사 중인 상황, 유학과 독립운동을 함께한 선배동지 송진우를 잃은 장덕수의 분노는 갈수록 깊다. 하지만 북한에 정권을 세운 소련의 반응을 기다리며 역사상 최초의 총선거 대책에 부심하는 나날이 어수선하기만 하다.

12월 2일 오후6시경 날이 저물어 저녁 밥상이 들어왔다.
일행이 식사를 시작할 무렵 “경찰이 찾아왔다”는 전갈을 받는다.
장덕수 부인 박은혜(뒷날 경기여고교장)이 나가 보았다. 
경찰복 청년과 검은 옷 입은 청년이 서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는지?”
“긴한 일이라 장 부장님을 직접 뵙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부인은 경찰관인지라 아무 생각 없이 방안의 남편에게 알렸다. 
숟가락을 놓은 장덕수도 별 의심 없이 방문을 열고 성큼 나섰다. 
몇 마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칼빈 총이 불을 뿜었다.
탕 탕 탕---그 자리에 쓰러진 장덕수는 그대로 숨을 거둔다.

▲ 장덕수 암살사건 재판정에 출석하여 증언하는 김구.

▶ “김구 선생의 지시 받아 죽였다” 백범 측근들의 진술 일치.

범인 2명은 이틀후 체포된다. 종로경찰서 경사 박 모(23)와 명문대학생 배 모(20)였다.
이들은 김구가 새로 조직한 ‘대한학생총연맹’ 간부들, 중국에서 김구와 윤봉길 이봉창이 그랬듯이 태극기를 배경으로 수류탄을 들고 ‘대한독립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기로 맹서함’ 혈서를 가슴에 붙이고 사진을 찍은 대한혁명단원들이다. 즉, 김구의 집권을 절대시하는 청년들이 반대측 선봉 장덕수를 살해한 것이었다. 숭배하는 백범선생의 장애물 제거 성공.

하지 사령관과 장택상 경찰청장은 이번에도 ‘배후는 김구’임을 직감하였다고 한다.
김구의 측근 한독당 간부 김석황과 여러 명이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
 “백범 선생의 지시를 받아 죽였다”는 진술이 줄줄이 나왔다. 
김구가 ‘나쁜 놈, 죽일 놈’으로 좌표를 찍으면 죽였다는데 몇 명이 더 남았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이듬해 3월 미군정 법정은 김구가 출석한다는 뉴스에 초만원 상태, 증인석에 앉은 김구는 “왜놈 말고는 죽이라 하지 않았소”라며 결백을 주장했다. 미군 법무관들이 증거를 제시하며 물고 늘어지자 김구는 증언을 거부, 범인들은 “모략이다” 외치며 법정소란을 일으켰다.
우여곡절 끝에 결과는 ‘김구 무혐의’로 마무리된다. 

하지 사령관이 장택상을 말렸다고 알려졌으나 임정을 도왔던 장택상도 주저했으리라.
뒷날 ‘창랑滄浪’ 일대기를 펴낸 장택상의 딸은 이런 증언을 남긴다. “아버지는 임정주석을 살인교사범 만들 순 없다며 수사 기록을 모두 없애겠다고 말씀 하셨다.” 
미군정 사람들은 “김구는 백범이 아니라 흑범, 블랙타이거(Black Tiger)"라 불렀다 한다.

★김구와 한독당은 사면초가의 벼랑 끝에 몰렸다. 
한독당원들은 다른 당으로 빠져나간다. 당이 세조각 났다. 
그러나 장덕수 암살 훨씬 전부터 접근한 ‘구원의 손길’이 있었다.
바로 유명한 거물간첩 성시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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