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 당시 '무보험' 항공기로 방북정부, "대북 제재로 항공보험 불가해 통일부 명의로 보증서 발급" 해명법조계 "남북협력기금법 적용했더라도 엄연한 항공사업법 위반"
  • ▲ 지난 2018년 3월 남북평화협력기원 남측예술단 평양공연팀이 이용한 평양순안공항 활주로 모습. ⓒ뉴시스
    ▲ 지난 2018년 3월 남북평화협력기원 남측예술단 평양공연팀이 이용한 평양순안공항 활주로 모습. ⓒ뉴시스
    지난 2018년 문재인 정부가 정권 출범 이후 처음으로 성사된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하기 위해 개최한 ‘남북평화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 당시 방북 민간 항공기를 무보험 상태로 운항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정부 측은 이 과정에서 ‘대북 치적 쌓기’에 혈안이 돼 현행법상 규정과 절차까지 무시하는가 하면 민간 항공사들은 정부의 압박에 ‘울며 겨자먹기’로 항공기를 제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15일 본보 취재에 따르면 지난 2018년 3월 29일과 31일 양일 간 도종환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단장으로 한 남측 예술단 190여 명은 선발대(기술진 70여명)와 후발대(공연단 120여명)로 나뉘어 이스타항공이 제공한 특별기편(ZE2815·ZE2816)으로 방북했다.

    당시 공연장비 등은 별도의 대한항공 특별 화물기편으로 인천공항을 통해 평양 순안공항으로 운반됐으며 예술단을 태운 항공기는 김포공항에서 출국했다. 예술단은 두 차례 공연을 하고 같은 해 4월 3일, 3박4일 간의 일정을 마치고 밤늦게 인천공항을 통해 귀환했다.

    해당 공연에는 조용필을 비롯해 이선희, 최진희, 윤도현 등 한국을 대표하는 톱스타들이 대거 참가했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씨가 공연장을 직접 찾으면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이 행사에 투입됐던 특별기들은 유엔 안보리 대북한 제재결의(2270호)에 따라 북한 항로 운항에 대한 항공보험 적용이 안 돼 무보험 상태로 운항된 것으로 확인됐다.

    행사 일정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항공보험 가입이 어려워지자 사업 주무부처였던 통일부 측은 남북협력기금법을 근거로 부랴부랴 만일의 사고에 대한 보상을 약속하는 정부 명의의 보증서를 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통일부가 보증서 발급 근거로 삼은 남북협력기금법에는 ‘(대북)교역 및 경제 분야 협력사업 추진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영 외적인 사유로 인하여 발생하는 손실을 보상하기 위한 보험(제8조 4항)’을 기금으로 운용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통일부 측은 “당시 대북 제재 상황으로 항공 보험 가입이 어려워 남북협력기금법에 따라 보상 문제와 관련한 보증서를 발급했고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통일부 측은 업무 처리에 문제가 없었다면서도 본보가 당시 절차상의 문제와 국토부 및 항공사 측에 제출됐다는 보증서 내용 등을 수차례에 걸쳐 요청했으나 ‘기밀 사안’이라며 공개를 거부했다.
  • ▲ 통일부는 평양 공연 관련 통일부장관 명의의 보증서에 대한 본보의 확인 요청에 기밀 사안이라며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위 사진은 통일부 측 답변 자료.ⓒ통일부 제공
    ▲ 통일부는 평양 공연 관련 통일부장관 명의의 보증서에 대한 본보의 확인 요청에 기밀 사안이라며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위 사진은 통일부 측 답변 자료.ⓒ통일부 제공
    ◆ 현행 항공사업법상 항공보험 가입은 필수…특별기 예외 조항도 없어

    통일부의 해명과는 달리 현행 항공사업법 제70조에 따르면 항공사는 ‘특별기’를 포함한 모든 항공기에 대해 항공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며 항공사는 해당 보험을 증빙하는 문서를 국토부에 제출해야만 한다.

    모든 항공기는 특별기를 포함해 반드시 항공보험에 가입한 상태여야만 운항이 가능하고 면허를 등록할 때도 항공보험에 가입했다는 증빙 서류를 국토부에 제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 측은 본보의 취재 요청에 당시 항공보험 가입 등의 절차를 밟지 않은 점은 인정하면서도 통일부가 주관한 사안이어서 내용을 잘 모른다고 통일부에 책임을 떠넘겼다.

    구본환 당시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장은 “해당 사안(평양 공연)은 국가 행사였고 통일부가 주관했기 때문에 국토부에서는 크게 관여한 바가 없다”며 “항공보험 가입이 어렵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여러 가지 절차 등이 단축됐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특별기편을 제공한 이스타항공의 김유상 대표(당시 이스타항공 전무)는 “당시 정부의 요청을 받고 특별기 지원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하다 정부가 간곡히 요청을 해 와 항공편을 지원했다”며 “정부 허가를 받고 진행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은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 법조계, “남북협력기금법 적용했더라도 무보험 운항은 위법”

    국내 항공법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에 대해 위법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남북협력기금법이 현행법에 우선하는 상위법이라고 하더라도 ‘항공보험 의무 가입’을 명문화 한 항공사업법에 별도의 예외 조항이 없는 만큼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법무법인 ‘지평’의 이춘원 변호사는 “현행법에 모든 항공기는 항공보험을 가입해야만 운항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명확히 명시돼 있는데 정부 행사라고 보험 가입을 안 해도 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며 “해당 경우처럼 정기노선이 아닌 일회성 노선이라고 할 땐 항공사가 해당 노선에 대한 항공보험을 다시 가입해야만 한다”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전문 변호사도 “국토부가 (평양 행사를)주관하지 않았더라도 현행법상 항공기 운항과 관련된 모든 업무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은 국토부에 있다”며 “정부가 특수한 상황이라고 해서 실정법을 임의대로 해석하고 적용한다면 법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강민경 기자 / klk707@newdailybiz.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