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사건, 이용구 폭행 의혹 '부실수사' 입방아… "1차 수사 종결권 시기상조였다" 비판
  • ▲ 김창룡 경찰청장이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정인이 사망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기에 앞서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뉴시스
    ▲ 김창룡 경찰청장이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정인이 사망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기에 앞서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뉴시스
    경찰이 올해만 벌써 두 번째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정인이 사건'과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과 관련해 연달아 부실수사 정황이 드러나면서다. 검찰이 결국 경찰서를 압수수색하는 일까지 벌어지며 제대로 망신살이 뻗쳤다. 일각에선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에게 1차 수사 종결권을 부여한 게 시기상조라는 비판이 확산된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경찰의 1차 수사 종결권에 대한 재논의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이 차관 택시기사 폭행 사건 등에서 경찰의 졸속 처리 의혹이 검찰의 재수사를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 차관 사건과 관련해 경찰은 지난해 12월 28일 택시 블랙박스 영상이 없고, 복원조차 불가능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재수사에 착수한 검찰이 '지난해 11월 6일 폭행 사건이 발생한 지 하루 뒤 택시기사의 요청으로 블랙박스를 복원했다'는 블랙박스 영상 복구업체 관계자의 진술을 확보하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검찰 손만 대면 경찰 부실수사 정황 포착 

    검찰은 지난 25일 해당 관계자에 대한 참고인 조사에서 "블랙박스 영상을 복원한 뒤 사건 담당 경사와 이와 관련해 전화통화까지 했다. 경찰에게 블랙박스 영상의 존재를 알렸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피해자인 택시기사도 검찰 조사에서 "경찰에 영상을 제시했으나 담당 경사가 '못 본 걸로 하겠다'고 했다"고 진술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국가수사본부장 직무대리인 최승렬 수사국장은 지난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작년 말에 이 차관 사건에 관해 언론에 설명해 드렸는데 일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돼 국민들께 상당히 송구한 마음"이라고 사과했다. 

    급기야 경찰은 1차 수사 종결권을 부여받은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27일 검찰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하는 불명예까지 안았다. 서울중앙지검이 이 차관 택시기사 폭행사건 관련 경찰의 부실수사를 문제 삼으며 서초경찰서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한 것이다. 

    박원순 성추행 혐의도 경찰 빼고 모두 '인정'

    앞서서는 '정인이 사건' 관련 아동학대 신고를 3차례나 접수받고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다. 신고를 받은 당시 서울 양천경찰서가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면 정인양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김창룡 경찰청장은 지난 6일 "어린아이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 점에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대국민 사과했다. 양천경찰서장과 여성청소년과장 등은 대기발령 조치됐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서도 입방아에 올랐다. 경찰은 박 전 시장의 사망을 이유로 성추행 사실 등 실체적 진실 규명 없이 '공소권 없음'으로 내사 종결했다. 

    그러나 이후 검찰의 재수사로 성추행 사실이 확인되면서 경찰은 또 다시 궁지에 처했다. 검찰이 박 전 시장의 '피해자와 문자를 주고받은 것이 있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아무래도 이 파고는 내가 넘기 힘들 것 같다'는 등의 문자메시지 내용을 파악한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25일 박 전 시장의 성추행을 인정했다. 

    경찰 '1차 수사 종결권' 자격론 더욱 확산될 듯

    일련의 사건들 중 하나라도 경찰의 부실수사 또는 윗선의 개입 정황이 드러나면, 당장 올 1월 1일부터 경찰에 부여된 1차 수사 종결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욱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찰에 1차 수사 종결권을 부여한 것은 경찰과 검찰 간 견제 기능 활성화를 통해 법 집행기관의 권한 남용을 방지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경찰이 자의적으로 내사 종결한 사건에서 부실수사나 불법 정황이 잇따라 포착되면서, 경찰이 권한에 걸 맞는 역량과 자격을 갖췄냐는 비판이 속출하고 있다. 일각에선 '민중의 지팡이'에 빗대 '민중의 곰팡이'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나온다. 

    서울 시내에서 근무 중인 경감급 경찰은 "검경 수사권 조정 역시 필요하지만, 경찰 내부에서의 개혁도 중요하다"며 "수사 종결권을 남용한다면 결국 국민으로부터 외면 받는 것은 검찰이 아닌 경찰일 것"이라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