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선거기행③]지난해 3월 보궐선거 때부터 ‘한궈위 돌풍’ 퇴조…친중파 지지자 횡포, 가장 큰 원인
  • ▲ 2015년 1월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해 대만 청천백일기를 흔든 것에 대해 사과하는 쯔위.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5년 1월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해 대만 청천백일기를 흔든 것에 대해 사과하는 쯔위.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만 총통・입법위원 선거 직전, 대만 언론들은 한국과 인연이 깊은 한 대만인의 동정에 주목했다. 트와이스 멤버 쯔위(본명 저우쯔위, 周子瑜)였다. 2016년 1월 총통 선거 당시 차이잉원 당선의 주역인 그는 이번 선거 직전 대만에 입국했다. 최근 선거권을 얻은 그의 투표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그의 모친은 쯔위는 투표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투표 당일 쯔위의 모친이 경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대만 남부 타이난(臺南)의 커피숍에는 많은 기자들이 몰렸다. 이날 쯔위 가족은 커피숍에 나타나지 않았다.

    2016년 차잉잉원 총통 당선의 주역 쯔위, 이번에 첫 투표권 행사 안 해

    쯔위는 2016년 총통 선거 직전 대만 국기 청천백일기를 들고 한 방송에 등장해 중국인의 맹비난에 시달렸다. 결국 소속사 JYP는 쯔위의 사과 동영상을 올렸다. 그런데 쯔위의 사과 동영상을 공개한 시점이 대만 총통 선거 전날이었다.

    당시 총통 선거 판세는 민진당 차이잉원 후보가 근소한 우세였는데, 쯔위 소동으로 차이 후보의 지지율이 1% 올랐다는 대만 언론의 분석이 있었다. 당시 “투표를 안 하려 했는데, 쯔위 때문에 화나서 투표했다”고 답한 유권자가 상당수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 쯔위의 동정에 대만 언론들이 주목한 것은 민진당의 선거 낙승 분위기를 상징하는 한 증표였다. 만약 국민당 한궈위(韓國瑜) 후보가 우세했다면 쯔위는 그리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쯔위의 고향 타이난은 민진당의 전통 텃밭이다. 그런데 2018년 후반부터 시작된 한궈위 돌풍을 뜻하는 한류(韓流)의 쇠퇴 징조가 처음 보인 곳도 타이난이었다. 2018년 11월 지방선거 당시 파격적인 스타일로 민진당 텃밭 카오슝(高雄) 시장에 당선된 한궈위는 2019년 초반만 해도 총통 선거의 최유력 주자였다.

    작년 3월 보궐선거에서 과격 한펀으로 인해 한류 쇠퇴 조짐 이미 나타나

    지금까지 선거에서 중국이 등장하면 민진당이 무조건 승리를 가져갔기 때문에, 요즘 중국은 선거 직전에는 도발을 자제한다. 그런데 이해 1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대만 동포에게 고하는 글’이라는 신년사를 통해 “무력통일도 불사하겠다”고 발언해 많은 대만인들이 경계심을 갖게 됐다.

    시진핑 주석의 2019년 신년사는 총통 선거를 1년 앞둔 시점에 나왔다. 하지만 1월과 3월 입법위원(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2석이 걸린 1월 선거는 각 지역에 안정적인 기반을 둔 민진당 및 국민당 후보가 각각 승리했지만, 4석이 걸린 3월 선거에서는 이번 총통 선거의 전조라고 할 수 있는 현상이 나타났다.
  • ▲ 한궈위 중국 방문 다음날  '한궈위가 (홍콩에 와서) 대만을 팔아 치웠다' 고 톱 제목을 뽑은 홍콩 성보 (成報). 친중계열 성보의 이 1면 지면은 대만사회에 충격을 줬다.ⓒ허동혁
    ▲ 한궈위 중국 방문 다음날 '한궈위가 (홍콩에 와서) 대만을 팔아 치웠다' 고 톱 제목을 뽑은 홍콩 성보 (成報). 친중계열 성보의 이 1면 지면은 대만사회에 충격을 줬다.ⓒ허동혁
    3월 보궐선거에는 타이난이 포함돼 있었다. 이곳 국민당 후보로 한궈위와 ‘한 세트’라고 불리는 셰룽졔(謝龍介) 타이난 시의원이 공천됐다. 그는 가수가 공연하듯 진행하는 대만어 유세로 유명한 인물로, 2018년 11월 지방선거에서 민진당 텃밭인 타이난에서 1등 당선됐다.

    만약 셰 의원이 당선되면 한류 바람이 민진당 텃밭을 완전 함락시키는 것이 돼 한궈위의 대선가도에 가속도를 붙일 수 있었다. 카오슝과 타이난 모두 지난 20년 간 민진당이 시장 및 입법위원 선거에서 단 한 석도 내준 적이 없다.

    게다가 보궐선거 당시 민진당은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여 두 명의 친여 후보가 출마했다. 보궐선거 판세는 한궈위의 지원 유세 한번으로 단숨에 셰 의원이 1위로 치고 올라갔다. 문제는 이때부터 발생했다.

    한궈위 열풍 쇠퇴의 주원인은 과격한 한펀 행태 때문

    한궈위의 주요 지지기반인 블루칼라 위주 한펀(韓粉, 한궈위 팬)의 과격행동이 보궐선거 때 점점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한궈위에 대한 비판을 절대 용납하지 않아 한궈위 반대파와 곳곳에서 충돌을 일으켰다. 이런 한펀의 행태에 반발해, 한궈위가 참석한 셰 의원 야외연설 때 한 반대자가 연단으로 계란을 투척한 일도 있었다.

    당시 이런 분위기를 미리 파악한 듯, 민진당 궈궈원(郭國文) 후보(전 노동 차관)는 불리한 여론조사에도 불구하고(셰 후보 약 36%, 궈 후보 약 25%, 친여후보 약12%), 단일화에 매달리지 않고 여유 있게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필자가 동행한 궈 후보의 전통시장 유세에서 60%의 시장 상인들이 궈 후보를 반갑게 맞이하는 것을 목격했다.

    결국 보궐선거 결과는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궈 후보가 47.1% 득표로 당선됐다. 국민당 셰 의원은 44.3%였다. 선거일 당시 이미 시진핑의 신년 담화 때문에 대만인들 사이에 긴장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고, 비이성적인 한펀의 행동으로 한궈위 지지층도 서서히 이탈하고 있었다.

    보궐선거 결과는 민진당 2석, 국민당 1석, 무소속 1석이었다. 무소속이 승리한 중국 연안 킨멘(金門)에서도 한류 퇴조 현상이 나타났다. 킨멘은 국민당 정부의 대만 이전(1949년) 이후 1992년까지 43년 동안 계엄령 하에 일반인 출입이 통제됐던 곳인데다 군인 가족이 많이 살아 평소 국민당 지지율이 90%씩 나오는 지역이다.

    그런데 보궐선거에서 친 민진당 성향의 무소속 첸챵쟝(陳滄江) 후보가 24.2% 지지율로 2위를 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1위는 친 국민당 성향의 무소속 첸유전(陳玉珍) 후보였고, 국민당 후보는 3위를 했다. 이번 총통선거에서도 민진당 차이잉원 총통은 킨멘에서 21.8%를 득표했다.
  • ▲ 한궈위 홍콩 방문 당시 투숙 호텔 앞에 대기중인 대만 기자들. 당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대만 언론의 관심대상이었다.ⓒ허동혁
    ▲ 한궈위 홍콩 방문 당시 투숙 호텔 앞에 대기중인 대만 기자들. 당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대만 언론의 관심대상이었다.ⓒ허동혁
    보궐선거 패배에도 한궈위 중국 방문 강행

    그러나 한궈위와 한펀은 이런 기류를 읽지 못하고 보궐선거 후에도 예전처럼 행동했다. 보궐선거 직후 한궈위는 홍콩, 마카오와 중국 선전(深圳), 샤먼(廈門)을 방문했는데, 이때 중국 고위관리들을 만난 것이 한궈위가 친중 인사로 낙인찍히는 계기가 됐다.

    한궈위가 출장 중 만난 홍콩, 마카오 중련판(中聯辦) 주임 그리고 국무원 대만 판공실 주임은 한궈위의 출장목적인 카오슝 특산물 판촉과는 관계없는 인물들이다. 중련판은 중국 정부의 홍콩, 마카오 출장기관으로 현지인들에게는 ‘총독부’로 불리며, 국무원 대만 판공실은 중국 정부의 대만 업무 관장부서로 대만인들에게는 대만침략 선봉기관으로 인식돼있다.

    한궈위는 시종일관 “카오슝에는 적이 없다. 만나서 밥 먹는게 뭐가 문제냐”며 자신의 중국 방문에 대해 항변했지만, 대만인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국 고위 관리와의 회동은 중국 최고 지도부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하다.

    필자는 한궈위의 홍콩・마카오 방문은 동행 취재할 수 있었지만, 중국 방문 때는 취재는 고사하고 일정조차 알 수 없었다. 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카오슝시 신문국(공보국) 직원에게 문의하면 “중국의 현지 관습을 존중하라”는 답만 돌아왔다.

    이는 당시 대만 제2도시 카오슝 시장이자 대만 총통 유력 주자가 중국의 통제 아래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뿐만 아니라 홍콩 중립계 신문의 중국인 기자와 일본 유력지 기자도 똑같은 경험을 했으며, 이런 굴욕적인 행태는 고스란히 대만 언론에 공개됐다.

    총통 유력후보 한궈위, 중국 방문중 완전히 중국 통제 하에 들어가는 굴욕 당해

    또한 당시는 점점 사회문제화 돼가는 한펀의 행동을 자제시킬 적기였지만, 한궈위는 한펀을 방치했다. 한궈위가 카오슝으로 돌아온 날, 한펀은 한궈위의 중국 방문을 항의하는 시민들과 공항에서 또 충돌했다. 이 장면은 대만 전역에 생중계됐다.

    이때부터 한류는 최소한 더 이상 상승 요소를 찾기 어렵게 됐다. 중국 방문 이후 한궈위는 중국과 관계된 일체의 행동을 중지했지만 소용없었다. 민진당은 3월 보궐선거에서 사실상 승리한 후 침묵 모드를 깼다. 라이칭더(賴清德) 전 행정원장(총리, 현 부총통 당선자)은 보궐선거 다음날 민진당 총통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4월부터 일부 여론조사에서 민진당 총통 후보들의 지지율이 한궈위를 앞서기 시작했다. 한궈위가 그렇게 장담하던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카오슝 방문이 무산되고, 중국 판다 수입 계획에 대해 중국이 공개적으로 부인하는 소동도 이때 벌어졌다. 이때부터 “한궈위는 거짓말쟁이”라는 비판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는 한궈위는 카오슝 시장 취임 3개월째여서, 총통 출마설을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었고 시장 임기를 끝까지 이행한다면 크게 문제될 만한 일은 아니었다.
  • ▲ 지난해 3월 타이난 (臺南) 보궐선거에서 국민당 후보 지원유세를 하는 한궈위 (옆모습). 이 촬영 직후 단상 앞으로 계란이 날라왔다.ⓒ허동혁
    ▲ 지난해 3월 타이난 (臺南) 보궐선거에서 국민당 후보 지원유세를 하는 한궈위 (옆모습). 이 촬영 직후 단상 앞으로 계란이 날라왔다.ⓒ허동혁
    한궈위의 최대 장점 중 하나는 포용력 있는 성격이다. 문제는 그가 가까이 한 중국 고위관리들과 한펀의 의도는 한궈위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한궈위가 카오슝으로 돌아간 직후인 3월 31일 중국 공군기 4대가 대만 영공을 침범해 대만 공군기 6대와 10여 분 동안 대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양국 공군기 대치는 2011년 이래 8년만이었다. 한궈위가 어떻게 나오든 중국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기에 충분한 사태였다.

    또한 필자가 직접 만나본 한펀 중 일부는 순수한 의도를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인물들이 있었다. 그런데 한궈위는 그들에게 단호하게 대응하지 않았고, 이들의 부추김으로 인해 출마여부 질문에 3선 입법위원의 관록과는 거리가 먼 미숙한 대답으로 일관했다.

    한궈위의 포용력이 도리어 과격 한펀 멀리하지 못해

    그의 이런 태도는 결국 국민당 내부 분열로 발전하게 된다. 궈타이밍(郭台銘) 폭스콘 회장의 국민당 총통 경선 참여는 국민당 내에서 한궈위의 지지 기반이 약하다는 생각에 따른 출마였다. 궈 회장은 경선 내내 “나는 한 시장에게 중국에 가지 말 것을 이전에 권고했었다”며 한궈위의 약점이 된 친중 행보를 지적했다.

    또한 왕진핑(王金平) 전 입법원장(국회의장), 양치우싱(楊秋興) 전 카오슝 현장의 국민당 탈당은 충격이 컸다. 당내 입지가 컸던 왕 전 원장은 궈 회장을 지지하며 경선 후 국민당을 탈당했다. 양 전 현장은 지방선거 당시 한궈위를 지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총통 경선 즈음부터 “한궈위는 허풍이 심하다” “차라리 차이잉원을 찍어라”며 탈당하고 한궈위를 비난하고 나섰다. 그는 지금도 “시장직을 자진 사퇴하라”며 한궈위를 압박하고 있다.

    홍콩 시위 질문에 ‘모른다’ 대답 연발, 결국 총통 선거에 치명타

    그런 와중에서 6월 홍콩 중국강제압송법 시위가 시작됐다. 시위 발생의 직접 원인은 대만에서 발생한 홍콩인 간의 살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당시 사건이 홍콩에서의 장기시위로 발전하리라고 예상한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했고, 대만 현지에서도 그 사건은 거의 잊혀져가고 있었다.

    한궈위는 홍콩시위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100만 명이 참가한 홍콩 시위 이튿날인 6월 10일 “홍콩에서 시위가 일어난 것을 알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모른다, 모른다”며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유튜브 참조). 이 모습은 생중계됐고, 그의 이런 태도는 총통 선거를 앞두고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가 돼 버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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