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선거기행 ① - 국민당 한궈위 후보가 인기를 잃은 이유는 ‘홍콩’, ‘거짓말’ 때문
  • ▲ 반 한궈위 행진에 참가한 카오슝 시민들. 한궈위가 중국의 공비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다.ⓒ허동혁
    ▲ 반 한궈위 행진에 참가한 카오슝 시민들. 한궈위가 중국의 공비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다.ⓒ허동혁
    지난 21일 카오슝(高雄)에서는 국민당 총통 후보 한궈위(韓國瑜) 카오슝 시장 찬반 행진이 열렸다. 주최 측 추산으로 한 후보 반대 집회에 50만 명, 찬성 집회에 35만 명이 참가했다. 반대 집회 참가자들은 ‘한궈위 시장직 파면’을, 찬성 집회 참가자들은 ‘차이잉원(蔡英文, 현 총통) 하야’를 외쳤다.

    총통 선거가 22일 앞으로 다가온 현재, 민진당 후보 차이잉원 현임 총통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당 한 후보를 두세 배차로 크게 앞지르고 있다. 올 초만 해도 큰 인기를 누리던 한궈위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낮게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홍콩 시위 때문이다. 홍콩에서 6개월째 벌어지고 있는 시위가 장차 대만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시민들은 친중 행보를 보인 한궈위 후보에게 경계심을 갖게 됐다.

    중국의 홍콩 무력개입 여부와 무관하게 민진당 차이잉원 총통 재선 확실시

    중국이 홍콩에 무력개입을 하면 반중 성향 민진당 차이 총통의 재선은 더욱 확실해진다. 실제로 과거 대만 선거 때 중국이 군사도발을 하면 민진당이 그 반작용으로 이익을 얻었다.

    한궈위 후보는 지난 3월 카오슝 시장 자격으로 홍콩, 마카오, 중국 선전(深圳), 샤먼(廈門)을 방문하면서 중국의 대만 업무 관장부서인 대만판공실 주임 등 중국 고위 관리들과 회동했다. 이에 대만에서는 “카오슝 특산품을 팔러 중국에 간다더니, 대만 침략 선봉기관 우두머리는 왜 만나냐”는 비판이 일었다.

    홍콩 시위, 한 후보 지지율 하락의 결정타

    6월초 홍콩시위가 시작될 당시 한궈위 후보는 대만 기자들에게 “홍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반문했다. 한 후보의 현실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 이 답변에 많은 대만인들이 등을 돌렸다. 논란이 커지자 한 후보는 “중국의 일국양제를 반대한다”고 수차례 밝히며 반전을 시도했다. 하지만 논란을 잠재우지 못했다.
  • ▲ 한궈위 반대 조형물ⓒ허동혁
    ▲ 한궈위 반대 조형물ⓒ허동혁
    21일 행진에서 시민들은 한 후보를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 미국에서 오래 거주했다는 카오슝 시민 부부는 행진에 참가해 “1년 전 시장취임 당시 총통선거에 관심 없다고 약속해놓고는 출마하고, 시민들에게 돈을 쥐어주겠다고 수십 번이나 발언했지만, 아무것도 이뤄진 게 없다” 며 불만을 나타냈다.

    카오슝에 거주하는 한 여대생은 행진에서 ”한 후보는 카오슝 시민들을 우롱해 왔다. 그는 명백한 친중 인사”라고 주장했다.

    한 후보는 청년층의 지지를 거의 잃은 상태다. 한궈위 지지 행진 참가자는 대부분 중장년층이다. 반면 반대 집회 참가자는 반 이상이 청년층이다. 또한 한동안 학생들 사이에서는 한궈위 후보와 기념촬영 시 “왜 거짓말을 좋아하나요?(爲什麽愛説謊?)”라는 제목의 책을 들고 찍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반 한궈위 행진 참가자들 “한 시장은 거짓말쟁이”


    작년 지방선거 당시 카오슝은 고층빌딩만 즐비한 채 차와 사람은 보이지 않는 유령도시의 모습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이는 개선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후보의 현재 총통선거 공약에는 “시민들에게 돈을 쥐어주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외에 아놀드 슈왈제네거를 카오슝에 초대하겠다고 공언했다가 유야무야 되는 등 그의 거짓말 사례는 더 있다.

    또한 한 후보의 지지자와 지지 방송의 과잉행동도 문제가 됐다. 한펀(韓粉)으로 불리는 지지자들은 번번이 반대 혹은 경쟁 세력과 충돌을 일으켰으며, 국민당 총통선거 경선 당시 공개적으로 상대후보 진영에게 위협을 가했다. 한펀 지도자들은 몇몇 충돌을 일으킨 혐의로 고발당해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 ▲ 반 한궈위 행진에서 '罷韓' (한궈위 파면) 피켓을 든 카오슝 시민ⓒ허동혁
    ▲ 반 한궈위 행진에서 '罷韓' (한궈위 파면) 피켓을 든 카오슝 시민ⓒ허동혁
    한펀은 한 후보를 반대하거나 방해되는 사람은 무조건 비판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홍콩 시위가 한 후보에게 방해된다 해서 홍콩 시민을 비판한 일이다. 한펀은 수시로 홍콩 시민의 폭력성만 부각해서 라인, 페이스북 등에 선전했는데, 이는 대만 청년층이 한 후보에게 등을 돌리게 만든 하나의 원인이 됐다.

    한궈위 지지자들, 한궈위가 친중 행보 보여도 무조건 지지

    한궈위 후보를 공개 지지하는 중국시보(中國時報)계열 방송사의 논조도 문제가 됐다. 이 방송사 기자들은 한 후보의 행사 때 한펀을 동원해 경쟁 방송사 기자들을 밀쳐내 물의를 빚었으며, “오늘 하늘에 한 후보의 대권운을 상징하는 구름 모양이 나타났다”는 황당한 보도를 한 적도 있다.

    이 방송사가 이런 보도를 하는 이유는 모기업이 친중기업인 왕왕(旺旺)그룹이기 때문이다. 왕왕그룹은 중국에서 고급호텔 및 식품사업을 크게 벌이고 있으며, 친중 보도를 하지 않으면 중국 사업이 위험해 질 수 있다.

    한 후보는 작년 카오슝 시장선거 때와 같은 매력은 더 이상 보이지 못하고 있다. 작년 11월 지방선거 당시 입법위원(국회의원) 3선 경력의 한궈위 후보는 연고가 없던 카오슝에서 20년 간 아성을 지켜온 민진당 후보를 물리치고 시장에 당선됐다. 당시 민진당 정부의 연금개혁 및 외교정책 실패(5개국 단교)로, 한 후보의 캐릭터와 공약이 상대적으로 부각됐다.

    지방선거 당시 후보 토론회에서는 “카오슝 경제발전의 구체적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민진당 후보의 질문에 한 후보가 답변하지 못해 논리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당시는 이런 지적이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만, 시장 재직 중 각종 언행과 시정(市政)활동에서 이런 논리력 부족 문제가 더 드러나게 됐다. 홍콩 시위 질문에 대해 모른다고 즉답하는 등 전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발언을 한 일이 있다고 한다.

    지방선거 때 지적된 논리력 문제 지금 와서 문제
  • ▲ 반 한궈위 행진에 등장한 거대 걸개 현수막ⓒ허동혁
    ▲ 반 한궈위 행진에 등장한 거대 걸개 현수막ⓒ허동혁
    한 후보가 지방선거 때 한류 돌풍을 일으킨 주 원인은 포용력 있는 성격 때문이다. 그는 때때로 “그 어느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면서, 처음 보는 외국 기자들에게도 친근감 있게 대응해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성격이 한펀과 중국시보 계열 방송사의 과잉행동을 사전에 막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중국 고위관리 들에게도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발언한 점에 비추어보면, 그는 일부 대만인들이 주장하는 친공주의자가 아닌, 호방한 성격이 각종 논란으로 파생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그는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을 하지 않아왔다.

    한 후보는 아버지가 2차 대전 당시 인도 전선에서 일본군과 싸운 국민당군 출신이며, 한 후보 자신도 사관학교 출신인 외성인(外省人, 국공내전 패배 후 대만으로 이주한 중국 본토인, 대만 인구의 약 13%) 집안이다. 근본적으로 그의 집안은 중국 공산당과 거리가 멀다.

    한궈위 경계하는 미국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한 후보가 총통에 당선되면 그 선거가 대만의 마지막 민주선거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대만미국협회(AIT)는 한궈위 찬반 행진을 앞두고 “양측 간 충돌이 벌어질 우려가 있다”며 대만에 거주 중인 미국인들에게 접근 자제를 권고했다. 이는 사실상 미국이 한펀 주동의 폭력사태를 우려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 ▲ 대만 총통 선거 지지율 월별 그래프. 대만민의기금회 (台灣民意基金會) 조사ⓒ허동혁
    ▲ 대만 총통 선거 지지율 월별 그래프. 대만민의기금회 (台灣民意基金會) 조사ⓒ허동혁
    현재 대만 시민들의 관심은 총통선거 결과보다는 입법위원 선거와 한궈위 후보의 시장 파면선거 실시여부에 더 쏠려있다. 대만 현행법은 공직 취임 1년 후 파면선거를 제청할 수 있는데, 한 후보의 카오슝 시장 취임일은 작년 12월 25일이다.

    파면선거 실시에는 30만 명의 파면 서명이 필요하며, 서명이 접수되면 60일 이내에 파면 선거가 실시된다. 그리고 60만 명 이상이 찬성표를 던져야 파면이 가결된다.

    22일 한궈위 후보 반대행진 현장에서 선거운동 중이던 민진당 카오슝시 제2선거구 입법위원 후보 치우즈웨이(邱志偉, 재선)는 ‘한궈위 파면’ 피켓을 든 시민들을 가리키며 “저 많은 시민들이 왜 거리로 나와 ‘광복 카오슝’을 외치는지 보길 바란다. 현재 카오슝 시정부는 시민의 문제를 해결 못하고 있다”며 한궈위 파면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광복 카오슝’은 홍콩 시위대가 내세운 문구 ‘광복 홍콩’을 차용한 것으로, 카오슝 시장인 한궈위가 친공주의자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대만 언론에서는 한 후보의 파면 선거 실시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지만, 민진당이 한궈위를 총통 선거에서 낙선시키기 위해 전략적인 구호로 파면 선거를 주장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계속)

  • 홍콩시위 주요 상황 발생시 뉴데일리 유튜브 채널을 통해 라이브 스트리밍을 실시중입니다.

    뉴데일리TV 를 구독하시면 국내 유일의 홍콩현지 라이브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많은 구독과 시청 부탁 드립니다.   

    ▶ 뉴데일리TV 홍콩시위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