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 직격 ⑧ 중국 강제압송법 원인 살인범 찬통카이…“중국이 자수 강요하는 듯”
  • ▲ 10월 20일 카우룬(九龍) 시위에 등장한 모조 폭탄. 이날 원격조종 폭탄도 등장했지만, 위력이 약했다.ⓒ허동혁
    ▲ 10월 20일 카우룬(九龍) 시위에 등장한 모조 폭탄. 이날 원격조종 폭탄도 등장했지만, 위력이 약했다.ⓒ허동혁
    ‘중국강제압송법’이라 불리는 홍콩 ‘도주범조례’ 파동의 시발점이 된 찬통카이(陳同佳)가 23일 오전 석방됐다. 찬통카이는 대만 타이페이에서 발생한 홍콩 여성 살해사건의 용의자다.

    찬은 홍콩에서 살인 혐의가 아니라 살해한 여자 친구의 지갑에 있던 카드와 현금을 무단사용, 돈세탁을 했다는 혐의로 징역 29개월을 선고 받았다. 찬은 모범수에게는 형량의 3분의 1일 감경하게 돼 있는 홍콩 법에 따라 1년 7개월 만에 석방됐다.(사건 내용: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9/05/08/2019050800202.html 참조)

    현행 홍콩법, 홍콩인이 해외에서 저지른 살인사건 처벌 못해

    홍콩법은 영국 관습법에 따라 속지주의(屬地主義)를 채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만과 같이 해외에서 홍콩인이 저지른 범죄는 처벌 할 수 없다. 그런데 찬은 사실상 홍콩과 중국 당국에 의해 자수를 강요당하고 있고, 대만은 이를 거부하며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찬의 후견인 역할을 맡아 그의 자수 의사를 전하고 있는 피터 쿤(管浩鳴) 홍콩 성공회 목사는 중국 공산당원이자 중국정치협상회의(정협·政協) 위원이다. 홍콩 성공회 역시 1997년 홍콩반환 이후 중국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때문에 홍콩 현지 언론은 쿤 목사의 발언을 사실상 중국 및 홍콩 정부의 의사로 보고 있다. 그러나 쿤 목사는 이를 부인했다. 쿤 목사는 26일 대만 동삼신문TV(東森新聞)과의 인터뷰에서 “나의 정협위원 신분이 문제가 될지 몰랐다. 찬의 자수의사에는 변화가 없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찬의 후견인 자처 피터 쿤 성공회 목사는 중국 공산당원
  • ▲ 10월 20일 카우룬(九龍) 시위 당시 시위대에 의해 불타는 바리케이드ⓒ허동혁
    ▲ 10월 20일 카우룬(九龍) 시위 당시 시위대에 의해 불타는 바리케이드ⓒ허동혁
    대만 정부는 찬의 자수 계획을 중국 및 홍콩 정부가 이미 철회한 ‘중국강제압송법’의 합리화를 위한 계략으로 보고 있다. 법대로 하면 찬을 대만으로 송환할 수 없게 되자 ‘중국강제압송법’을 입안하면서 송환국에 대만과 중국을 포함시킨 것이 파동의 발단이다.

    수전창(蘇貞昌) 행정원장(총리)은 최근 연일 언론을 통해 “우리는 중국 정협 위원인 브로커 목사와 상대하지 않겠다. 찬이 대만에 자유롭게 와서 자수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대만 검찰이나 경찰이 홍콩에 입국해서 그를 압송하겠다. 만약 그가 도주하면 이는 전적으로 홍콩정부 책임”이라고 못 박았다. 대만 정부는 찬과 쿤 목사를 입국금지 대상에 올렸다.

    홍콩 정부는 대만의 이런 계획을 거부하고 있지만, 이미 대만 경찰 여러 명이 여행 명목으로 홍콩에 체류하며 그의 압송에 대비하고 있다는 미확인 정보가 나왔다.

    실제 찬의 석방 전날인 22일 밤 이와 관련된 움직임이 있었다고 알려졌다. 홍콩 당국이 찬을 BR828에 태우기 위해 23일 오전 0시에 찬을 석방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만 이민서(移民署)는 대만국적 에바항공 23일 오전 9시 10분 타이페이 도착편(BR828, 홍콩출발 오전 7시 25분) 예약명단에서 찬의 이름을 확인한 뒤 탑승권 발급을 취소시켰다고 한다. 대만 이민서는 찬이 다른 국적 항공기로 입국을 시도하면 즉시 항공 경찰국에 통보해 기내에서 체포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대만, 찬의 자수계획 미리 파악하고 탑승 예정 여객기 탑승권 발급 금지

    에바항공 BR828편은 이날 홍콩발 타이페이행 첫 비행기였다. 홍콩 감옥의 석방시간은 통상 오전 9시이다. 따라서 찬이 홍콩 당국의 도움을 받아 미리 석방돼 가장 빨리 대만으로 가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했다.

    그러나 홍콩 정부와 사실상 적대관계에 있는 대만 당국에서 찬이 대만 국적기인 에바항공을 타고 와서 자유롭게 자수하는 일을 방치할 리 없었다. 필자는 23일 오전 3시까지 찬이 아직 석방되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공항과 찬이 수감된 픽욱(碧屋) 감옥의 시간 거리상 BR828편에 탑승하려면 이때 석방돼야 했다.
  • ▲ 10월 20일 카우룬(九龍) 시위에 태극기를 들고나온 미국인 시위대ⓒ허동혁
    ▲ 10월 20일 카우룬(九龍) 시위에 태극기를 들고나온 미국인 시위대ⓒ허동혁
    결국 찬은 공식 발표대로 23일 오전 9시에 석방돼 쿤 목사가 준비한 밴을 타고 시내 야우마테이(油麻地)의 한 맨션으로 향했다. 많은 취재 차량이 찬이 탄 밴을 쫓았다. 석방되자마자 (타의에 의해) 재수감을 준비하거나, 혹은 재수감을 피하기 위해 도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쿤 목사는 맨션 도착 약 두 시간 뒤 야우마테이에서 한참 떨어진 홍콩 아일랜드의 성공회 성당에 나타났다. 그는 기자들에게 “찬은 맨션을 이미 떠났다. 오늘 새벽에 찬과 함께 감옥을 나와 첫 비행기로 대만에 가서 자수하려 했으나, 우리가 입국금지 대상에 오른 것을 알고 예약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쿤 목사 스스로 소식통의 정보를 인정한 것이었다.

    이후 쿤 목사는 매일 기자들에게 “찬은 언젠가 대만에 자수하러 갈 것이지만, 오늘은 안 간다”는 대답만 되풀이하고 있다. 쿤 목사는 현재 친중 매체의 인터뷰에만 응하고 있다. 또한 한 친중파 의원은 언론에 “내년 1월 실시되는 대만 총통선거가 끝난 뒤 자수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찬에게 살해당한 푼히우잉(潘曉穎)의 유족도 홍콩 친중정당 민건련(民建聯)을 통해야 연락이 가능한 상태에 있다. 살인사건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사실상 홍콩 당국 혹은 친중 정당 관리 하에 있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만 민진당 정부, 찬의 자수 저지에 총력

    대만 민진당 내부 사정에 밝은 대만의 한 대학교 정치학 교수가 전한 데 따르면, 대만 정부는 찬의 움직임과 그에 대한 대응이 내년 초 총통 선거 등 향후 대만 정국 운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차이잉원 총통과 수전창 행정원장이 직접 이 문제를 관장하고 있다고 한다.

    민진당 정부의 당면목표는 찬의 자수를 저지하여 중국 및 홍콩 당국의 의도를 좌절시키는 것이다. 내년 1월 총통 선거까지 찬의 처리를 미루려는 중국과 홍콩의 시도에도 대응에 나설 것은 분명해 보인다.
  • ▲ 살인범 찬통카이(陳同佳)의 후견인 피터 쿤 (管浩鳴) 홍콩성공회 목사ⓒ대만 동삼신문TV (東森新聞) 제공
    ▲ 살인범 찬통카이(陳同佳)의 후견인 피터 쿤 (管浩鳴) 홍콩성공회 목사ⓒ대만 동삼신문TV (東森新聞) 제공
    이 문제와 관련해 국민당 소속 마잉주(馬英九) 전 총통이 “민진당 정부가 내년 선거를 의식해 사법권 행사를 포기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등 대만 정치권에서도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수전창 행정원장은 26일 “대만에 대기 중인 사형수들이 너무 많다”며 자수에 따른 정상 참작을 기대하는 찬에게 간접적으로 경고했다.

    홍콩 중국강제압송법 파동은 결과적으로 집권 차이잉원 총통의 재선 가도에 가속도를 붙여줬다. 민진당은 ‘오늘의 홍콩은 내일의 대만’이라고 주장해 왔다. 홍콩 파동이 미래에 대만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었는데 대만 사람들에게 먹혀든 것이다. 따라서 민진당에 큰 도움을 준 찬이 대만에 오면 관대하게 처리될 것이라는 전망이 일부 있었는데, 수 원장이 그렇지 않다고 쐐기를 박았다.

    문제는 찬이 정말로 자수 의사가 있냐는 점이다. 홍콩법의 속지주의에 의해 자유 신분이 된 그가 자발적으로 대만에 갈 의무는 없다. 양심의 문제이다. 그러나 찬이 대만에 자수할 경우 그를 변호할 것으로 알려진 타이페이의 한 변호사 사무소는 야당인 국민당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게 대만에서도 찬의 자수 의사가 불순해 보이는 요소가 존재한다.

    한편 홍콩 시민들은 27일 쿤통(觀塘)에서 시위를 예고했으며, 이와는 별도로 시위 최전선 조직 용무파(勇武派)의 사정을 잘 아는 인사는 같은 날 경찰의 물대포 습격을 받은 침샤츄이(尖沙咀) 소재 이슬람 사원에서 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필자에게 밝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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