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별신굿 전수조교 김정희 씨 13일 사망… '강사임용규정' 재정비로 재계약 못해
  • ▲ 국가중요무형문화재 82-1호 동해안별신굿 전수교육조교인 고 김정희 씨의 생전 모습. ⓒ연합뉴스
    ▲ 국가중요무형문화재 82-1호 동해안별신굿 전수교육조교인 고 김정희 씨의 생전 모습. ⓒ연합뉴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전통예술원 전 겸임교수이자 동해안별신굿 전수교육조교인 김정희(58) 씨가 지난 13일 사망했다. 올 하반기 강사법 시행 이후 사실상 재임용이 어려워지자 김씨가 신변을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교육부와 학교 측은 김씨의 죽음이 강사법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주장하지만, 교육계 일각에선 ‘시간강사’라는 열악한 지위와 강사법의 허점이 그대로 드러난 사례라고 지적한다.   

    김씨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82-1호인 동해안별신굿 악사이자 전수교육조교였다. 4대째 무업을 계승한 김씨 가계에서 태어나 1998년 한예종 전통예술원이 설립된 직후부터 20년 넘게 학생들에게 전통예술을 가르쳤다. 

    16일 유족과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한예종 측이 지난 8월 강사법 시행 후 강사임용규정을 재정비하면서 김씨의 재계약이 어려워졌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김씨의 학력이 임용기준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사실상 해고 통보를 받았다는 주장이다. 이후 김씨는 지난 2학기부터 강의가 끊어지고 생활고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예종은 지난 6월 강사 모집공고를 내며 '전문학사 이상'의 학력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후 8월에 나온 추가 채용공고에는 학력제한을 두지 않았으나 김씨는 두 차례 모두 지원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학교 측이 강사법을 적용해 김씨를 해고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자 교육부와 학교 측은 사실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16일 교육부는 "강사법 시행령에 따르면 해당 분야 경력자는 초빙교원이나 그에 준하는 다른 교원 직위로 얼마든지 채용 가능하며, 김씨의 해고는 학교 측의 채용 의지에 달린 것이지 강사법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한예종 교무과의 한 관계자는 “강사 채용공고 당시 김씨는 시간강사 신분이었다”며 “강사법 근거에 따라 김씨도 다른 지원자와 동일하게 강사 공모에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김씨에게 해고를 통보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학교에서는 2019학년도 2학기 현재 학위 여부와 상관없이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다수의 강사가 채용돼 강의를 맡고 있다”며 “2020학년도 1학기에도 동일하게 강사 채용을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교육부·한예종 "김씨 죽음과 강사법은 무관" 주장

    지난 8월 시행된 '강사법'(개정 고등교육법)은 대학 강사에게 교원 지위를 부여하고 임용기간을 1년 이상으로 하는 등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그러나 제도 도입 전부터 강사법이 오히려 강사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대학이 비용절감을 위해 강사와 강좌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갈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한예종도 강사법을 앞두고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강사 임용조건을 강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영남권 4년제 대학의 사회학과 이모 교수는 “이번 사례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강사법의 허점이 그대로 드러난 사안으로 보인다”며 “강사법의 취지는 인정하지만 재정부담을 느끼는 대학들의 입장에선 강사 수를 줄여 추가 비용을 지출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강사법 안에는 교원의 학력제한이 따로 없지만, 대학들은 비용 등의 이유로 자체적, 암묵적으로 교원 자격기준을 더 강화할 것”이라며 “대학 강사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법안이 결국 고용불안정을 야기한 채 부작용을 낳고 있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고용불안정 낳는 강사법의 역설… 대학 운영 책임론 커져 

    8월 교육부 ‘강사 고용현황 분석 결과’에 따르면 2학기 시행 전 대학들이 재정부담을 이유로 강사 7834명을 해고한 것이 확인됐다. 강사법 시행 후 줄어든 대학 강좌 수는 5800여 개다. 대학알리미 자료에 나타난 한예종의 올해 2학기 강좌 수는 총 1378개로, 지난해 2학기(1403개) 대비 25개 줄었다. 

    김세중 전 서울과기대 강사는 “최저임금을 과도하게 인상하니 많은 실직자가 나오는 것처럼 강사법도 마찬가지로 유사한 결과를 나타낸다”면서도 “김씨의 개인적 비극은 강사법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김 전 강사는 “학교는 기존 강사들에겐 법령에 의해 앞으로는 강사 채용 시 지원서를 먼저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개별적으로 통보할 수도 있었지만, 공정성 시비를 우려해 이 과정을 생략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예종은 기존 임용된 강사들에게 개별 안내 없이 단체 메일을 통해 신규채용을 공지했다.   

    김 전 강사는 “20년간 학교에 몸담은 김씨의 경우를 볼 때 학교가 학문적 동반자라고 할 수 있는 강사에게 인간적 예의를 갖추지 않아서 모멸감을 준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제도가 사람을 죽인 게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죽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비정규직 교수들도 김씨의 죽음에 대해 대학의 책임을 지적하고 나섰다.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한교조)은 16일 김씨에 대한 추모성명을 내고 “강사법이 아니라 대학이 비정규교수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한교조는 “고인의 비극은 대학의 모든 비정규교수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일”이라며 “교육부는 당장 비전임교수들에게 법적인 교원의 지위를 부여해 대학이 함부로 해고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에는 “비전임교수들을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해고하는 일을 멈추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