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재자' 빼고 트럼프와 직거래… 미중러 오가면서 '경제원조' 줄타기 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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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 30일 판문점에서 열린 미북정상 간 만남에 즉각 호응한 것에는 나름대로의 계산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무엇을 얻었는지는 판문점 회담의 후속 조치가 구체화되기 이전엔 알 수 없지만, 김정은이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는 데 대해선 이견이 없어 보인다.
- ▲ 30일 판문점에서 만나 군사분계선을 넘어 갔다 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정은, 경제원조 받을 마지막 기회로 생각했나
지난 2월 하노이 미북정상회담 당시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만을 제시하면서 부분적 제재 해제를 요구한 반면 미국은 영변 이외에도 서너 곳의 다른 시설까지 폐기할 것을 요구했다. 회담이 결렬된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사실을 밝히며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실천한다면 밝은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이후 대북제재를 더욱 강화하는 한편 북한을 향해 “완전한 비핵화만 실천한다면 아름다운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며 “북한은 잠재력이 대단히 큰 나라”라고 추켜세웠다. 북한이 아무리 협박과 비난을 퍼부어도 미국은 “우리는 언제든지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과 함께 “북한의 거대한 잠재력은 김정은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만 답했다.
김정은은 이후 중국과 러시아를 찾아 원조를 요청했지만 기대만큼 얻을 수는 없었다. 김정은은 지난 3월 러시아에 10만 톤의 무상 식량지원을 요청했지만 “5만 톤 지원을 검토하겠다”며 먼저 밀가루 4000톤을 보냈다. 나머지 식량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중국은 대북제재 와중에도 북한에 적잖은 무상지원을 했다. 그러나 대부분 비료였다. 지난 5월 한국경제가 중국 해관총서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데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북한에게 쌀 1000톤, 비료 16만2000톤을 지원했다. 세계식량계획(WFP) 등은 북한의 올해 식량 부족량이 140만 톤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를 찾아가 봐도 식량난은 해결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여유롭던 2월 하노이 때와 달리 긴장한 김정은
이런 현실에서 남은 곳은 미국뿐이다. 한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미국의 대북제재 때문에 과거와 같은 대북식량지원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김정은은 미국과 직접 부딪히지 않으면 만성적인 식량난을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해 미국의 제안을 즉각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
다만 미국이 제재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비핵화 조치가 필요하므로, 김정은은 이번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모종의 ‘상응조치’를 제안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문제는 이 ‘상응조치’를 어느 선까지 할 것인가이다. 북한 입장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한 비핵화를 단번에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상응조치를 안 할 수도 없다. 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지나는 수준의 조치를 해야 한다.
- ▲ 한국 측 자유의 집 앞에 선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수긍하고 받아들일지 알 수 없다. 지난 2월 하노이 회담 당시 미국이 예상치 못하게 비밀시설의 위치와 이름을 들고 나왔을 때 김정은은 적잖이 당황했다. 이번에도 ‘상응조치’랍시고 들고 나갔는데 또 들통이 날까 긴장했을 가능성도 있다. 백악관 측은 이에 대한 논의와 그 결과는 언론이나 한국 정부에는 구체적으로 알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이 얻은 것 ‘새로운 기회’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과 판문점 자유의집에서 회담을 했다고 당장 제재 완화나 식량지원을 얻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것을 얻었다. 바로 국내에서의 명분과 국제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대화 기회’다.
김정은과 트럼프 대통령의 판문점 대화는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직접 만난 게 된다. 이는 김일성 때부터 김정일 때까지 줄곧 추진해 왔던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제대로 이뤄낸 것이다. 이는 북한 내부는 물론 남한에도 쓸 수 있는, 대단히 좋은 선전 소재다. “위대한 영도자가 한국과 일본을 제치고 미국과 담판을 짓는다”는 표현만으로도 남북한의 김정은 지지 세력에게 큰 기대감을 심어줄 수 있다.
김정은이 여기서 더 나아가 부분적인 비핵화 조치를 실시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들여 백악관을 직접 방문하는 일이라도 생기면, 그와 북한의 입지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정상적인 국가와 그 지도자’가 돼 버린다. 대북제재의 일부 완화 또한 현실에 가까워진다.
만약 미국의 요구 수준을 “현재 보유 중인 핵탄두와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의 제거만 국제사회의 검증에 따라 해준다면 제재를 해제해주겠다”는 정도까지 낮추게 협상한다면, 김정은은 미국과 대립하는 전 세계 전체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스타가 될 수도 있다.
이렇듯 판문점 미북정상 간 만남은 김정은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