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해외공관 소통 필수 장비... FBI로 넘겨졌다면 北으로선 큰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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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이 괴한들에게 빼앗긴 것은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의 개인정보가 아니라 각국 대사관이 보유한 ‘암호통신장비’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19일 중국·러시아·유엔 주재 북한대사가 평양으로 급히 귀국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 ▲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정문.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지난 24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북한 언론동향 분석’에서 이 같은 주장을 제기했다. 태 전 공사는 “세계가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괴한 침입을 계속 보도하고 있음에도 북한이 한 달째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침입자들이 대사관의 핵심 기밀장비인 ‘변신용 컴퓨터’를 강탈하지 않았는가 생각된다”고 주장했다.
태 전 공사에 따르면, 해외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사람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평양과 주고받는 전보문의 암호를 해독하는 ‘변신용 컴퓨터’다. 북한의 해외 공관은 이 컴퓨터를 사용해 본국과 암호화된 전문을 주고받는데, 북한이 가진 암호기술은 다른 나라의 그것과 달리 ‘항일 빨치산식’이라고 한다. 태 전 공사는 “북한의 특수 암호기술은 그 어느 서방 정보기관도 풀 수 없다”고 주장했다.
태 전 공사의 설명에 따르면, ‘항일 빨치산식’ 암호는 중국공산당이 항일투쟁 당시 발명한 것으로 공산당 중앙에서 지방조직이나 국민당 통제지역에 있는 조직에 지시를 내릴 때 사용했다. 이 방식은 사전에 지정한 소설책 여러 권을 암호 해독용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전문을 보낼 때마다 서로 다른 책의 내용과 단락에 기초하여 암호를 해독하는 방식에서 유래했다. 즉, 서방국가들이 수학 공식을 사용해 만든 암호 작성법과는 전혀 다르다는 설명이다.
“중·러·유엔 주재 대사 귀국과 연관” 분석
태 전 공사는 “그런데 이런 암호 프로그램이 담겨 있는 컴퓨터가 미 연방수사국(FBI) 손에 넘어갔다면 북한으로서는 큰일”이라고 지적했다. 암호를 만들고 해독하는 방식이 모두 드러난 것으로 보고 세계 각국에 배치한 북한 소설책을 모두 없애버려야 하며, 새로운 암호통신 방식이 나올 때까지는 평양과 재외공관 간 암호통신도 못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외국 언론들이 이번 대사관 습격사건으로 해외 정보당국이 매우 가치 있는 ‘보물’을 얻었다고 보도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일 수 있다”면서 “북한 외교관이라면 대사관에 있는 변신용 컴퓨터가 강탈당하지 않게 목숨을 바쳐서라도 저지했어야 하는데, 그것을 빼앗겼다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태 전 공사는 “이번에 북한이 미국과 새로운 협상전략을 마련하면서, 중국·러시아·뉴욕(유엔) 주재대사들을 평양으로 불러들인 이유도 암호통신을 통해 기밀을 현지 대사관에 내보낼 수 없는 상황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
태 전 공사의 추측이 사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최근 황급히 평양으로 돌아갔던 중국·러시아·유엔 주재 북한대사들이 지난 23일 중국 베이징을 통해 자신의 근무지로 복귀한 사실은 그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일본 '교도통신'은 이날 “북한으로 귀국했던 김성 유엔 주재 대사, 지재룡 중국 주재 대사가 23일 평양을 출발해 중국 베이징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김형준 러시아 주재 대사는 언제 귀임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교도통신은 “지난 2월 말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핵문제와 경제제재에 대한 대응책을 평양에서 지시받은 뒤 임지로 복귀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북한당국은) 국면 전환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러시아·유엔 주재 북한대사들은 지난 19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공항에 도착해 북한으로 귀국했다. 당시 국내외 언론은 이들이 4월에 열리는 최고인민회의 참석차 귀국했다거나 김정은의 공식 성명이 나오기 전에 최종 논의를 위해 불러들였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보도했다. 그러나 이들이 귀국 나흘 만에 다시 북한을 떠나 자신의 임지로 복귀한 것을 보면, 평양과 비밀통신이 불가능해 부득불 귀국했다는 태 전 공사의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