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0원에 반등한 점유율, 남은 건 구조적 리스크오지급 사고 이후에도 반복된 ‘점유율 우선’ 공식가격이 덮은 신뢰 공백, 가상자산 시장의 민낯거래는 돌아왔지만 시스템은 답하지 않았다
  • ▲ 이재원 빗썸 대표이사가 11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비트코인 오지급 사태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
    ▲ 이재원 빗썸 대표이사가 11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비트코인 오지급 사태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
    가격은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언어다. 규제도, 윤리도, 반성도 가격 앞에서는 한발 물러선다. 비용이 사라지는 순간, 불안과 의심은 생각보다 쉽게 무뎌진다. 빗썸 오지급 사태 이후 시장이 보여준 반응은 이를 극명하게 증명했다.

    초유의 비트코인 오지급 사고 직후, 빗썸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시스템 신뢰였다. 존재하지 않아야 할 가상자산이 장부에 찍혔고, 그 물량이 실제 거래로 이어지며 가격을 흔들었다. 금융 인프라를 자처해온 가상자산 거래소의 전산 구조와 내부통제가 근본적으로 시험대에 오른 사건이었다. 이재원 빗썸 대표는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대국민 사과를 했고, 금융당국은 현장 점검을 정식 검사로 전환했다.

    사고의 경위는 명확하다. 지난 6일 이벤트 보상 지급 과정에서 입력 단위가 잘못 처리되며 일부 이용자 계정에 수천 BTC가 반영됐다. 장부상 약 62만 BTC가 한순간에 생성됐고, 당시 시세 기준으로는 60조원에 달하는 규모였다. 빗썸은 약 20분 뒤 오류를 인지해 출금을 차단했고, 오지급 물량의 99% 이상을 회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매도로 이어진 일부 물량은 회수되지 못했고, 이 여파로 빗썸 내 비트코인 가격은 다른 거래소 대비 한때 10% 안팎까지 벌어졌다.

    사고의 본질은 숫자보다 구조에 있었다. 단일 입력 실수가 대규모 자산 생성으로 이어졌고, 이를 사전에 차단할 장치는 작동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시장을 향한 빗썸의 첫 대응은 구조 설명이나 시스템 개선이 아니었다. 전 종목 거래 수수료를 한시적으로 '0원'으로 낮추는 선택이었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사고 직후 20% 초반까지 떨어졌던 빗썸의 시장 점유율은 수수료 면제 이후 빠르게 반등해 다시 30%대를 회복했다. 반면 업비트의 점유율은 같은 기간 60% 중반에서 50% 초반까지 내려왔다. 거래대금은 숫자로 돌아왔고, 이용자 이탈은 제한적이었다. 불안은 가격 앞에서 유예됐다.

    이 장면은 가상자산 시장의 취약한 구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내부통제 실패라는 본질적 문제보다, 비용 인하가 더 강력한 신호로 작동하는 시장. 거래소는 그 특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위기 국면에서 가장 손쉬운 선택지를 꺼내 든다. 점유율 경쟁에 매달려온 업계의 오래된 관성이 이번에도 반복됐다.

    문제는 이런 대응이 구조적 리스크를 줄이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수수료 0원은 시간을 벌 수는 있어도 재발을 막지는 못한다. 장부와 실재 자산의 괴리, 사전 차단 장치의 부재, 이사회와 내부통제의 취약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사고가 발생해도 비용으로 봉합할 수 있다는 학습 효과만 강화될 뿐이다.

    디지털 자산의 가치는 결국 신뢰에서 나온다. 가격은 판단을 대신할 수 있지만, 구조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빗썸 오지급 사태 이후 시장이 보여준 반응은 명확하다. 수수료 0원으로 거래는 돌아왔지만, 신뢰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시장이 다시 묻기 전에, 거래소가 먼저 답해야 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