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천안함 추도식'·진보 '3·23범국민 촛불대회' 개최…곳곳서 실랑이, 큰 충돌은 없어
  • ▲ 23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천안함 9주기 추도식이 열렸다.ⓒ뉴데일리DB
    ▲ 23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천안함 9주기 추도식이 열렸다.ⓒ뉴데일리DB
    주말인 23일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보수·진보단체가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다. 일부 참가자들 사이에서 고성이 오가거나 몸싸움이 벌어졌지만 우려했던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오후 2시 동화면세점 앞 '천안함 9주기 추도식' 

    이날 오후 2시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47명의 천안함 피격 사건 희생자를 비롯한 순국 장병들의 희생을 기리는 '천안함 9주기 추도식'이 일파만파애국자총연합 등 40여개 보수단체 주최로 열렸다. 집회에는 보수단체 회원 2000여명(집회측 추산)이 참여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박근혜 대통령 만세" "대한민국을 해체하는 문재인을 끌어내자" 등 구호를 외쳤다. 

    김경식 대한민국애국단체총연합회 부총재는 "(이번 추도식에)자유대한민국 수호를 다지기 위해 모였다"면서 "천안함이 폭침된 지 어언 9주년이 되었는데 이 나라는 종북 주사파정권의 나라 허물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무관심에 비통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 ▲ 23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진행된 천안함 9주기 추도식 참석자들이 광화문 인근에서 추모 행진을 하고 있다.ⓒ뉴데일리DB
    ▲ 23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진행된 천안함 9주기 추도식 참석자들이 광화문 인근에서 추모 행진을 하고 있다.ⓒ뉴데일리DB
    정광작 전군구국동지회 회장은 개회사에서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그리고 그 해 11월 연평도 포격, 이보다 8년 앞선 2002년에는 연평해전 등 여러 차례 북한의 도발에 맞서 싸우다 모두 55명의 호국 장병들이 아깝게 희생됐다"고 말했다.

    김수열 일파만파애국자총연합회장은 "주사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서해의 영토마저 적에게 헌납한 절박한 상태"라며 "그러나 이자들에게 우리나라를 맡겨 놓으면 나라가 빠른 속도로 망가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47명의 천안함 희생자들의 위패를 들고 단상에 올라선 참석자들은 한 명씩 이름을 크게 호명하는 의식을 거행했고, 호명이 끝나고 진행된 위령 추모에서 무형문화재 남순옥 선생은 55송이의 흰 꽃을 뿌리며 위령춤을 추는 등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추모사를 마친 뒤 참석자들은 오후 3시쯤부터 2시간 가량 동화면세점을 출발해 광화문 사거리를 거쳐 보신각, 을지로입구, 한국은행 사거리, 남대문 시장, 시청 등 5.1km 거리를 행진했다. 
  • ▲ 23일 민중공동행동 등 5개 진보단체가 광화문 광장에서 3·23범국민 촛불대회를 열었다.ⓒ뉴데일리DB
    ▲ 23일 민중공동행동 등 5개 진보단체가 광화문 광장에서 3·23범국민 촛불대회를 열었다.ⓒ뉴데일리DB
    오후 4시 광화문광장서 '3·23범국민 촛불대회'

    보수단체들이 집회를 가진 동화면세점 앞에서 300m 가량 떨어진 광화문광장에서는 이날 오후 4시부터 민중공동행동·416연대·518시국회의·민중공동행동·반전평화국민행동 등 5개 진보단체가 3·23범국민 촛불대회를 열었다. 

    집회 참석자 200여명(주최측 추산 500여명)은 '자유한국당 해체', '5·18 모독 역사왜곡 처벌 하자'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자유한국당 해체"를 주장했다.
  • ▲ 2019년 3월 23일 광화문광장에서 경찰이 우파단체와 좌파단체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막아선 모습.ⓒ뉴데일리DB
    ▲ 2019년 3월 23일 광화문광장에서 경찰이 우파단체와 좌파단체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막아선 모습.ⓒ뉴데일리DB
    보수·진보단체들이 인접한 곳에서 집회를 여는 바람에 광화문광장 주변 곳곳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각 진영 집회 참가자들은 "빨갱이는 물러가라"거나 "수구 꼴통들이나 물러가라"며 언쟁했고, 일부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찰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의경 등 12개 중대 병력을 배치했지만, 우려했던 진영간 대규모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