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北 헌법수정, 주석제 부활 움직임…김정은 대의원 불출마도 같은 이유"
  • 2017년 최고인민회의에 참석한 김정은.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7년 최고인민회의에 참석한 김정은.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정은이 지난 10일 실시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에 출마하지 않은 것은 ‘국가주석’ 제도를 부활시켜 취임하려는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정은이 김일성의 뒤를 이어 ‘국가주석’ 자리를 차지할 경우 현재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그 지위를 넘겨주게 된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지난 17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북한언론을 통해 본 금주 북한 동향’이라는 글에서 김정은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에 출마하지 않은 것은 ‘헌법수정(개헌)’을 통해 공석인 ‘국가주석’ 자리를 차지하려는 속셈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 같은 최고지도자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북한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며 “북한에서 4월 초에 열릴 제14기 최고인민회의 1차 회의에서 김정은의 직위와 관련한 헌법수정을 준비하는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여러 가지 추측을 해볼 수 있겠지만, 북한이 연초부터 국가제일주의, 국조, 국풍, 국화 등 ‘국가’를 거듭 강조한 것을 보면 ‘정상국가화’ 추진의 일환으로 내달 초에 열리는 제14기 1차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을 새로운 직위로 추천하려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태 전 공사는 북한이 개헌을 통해 김정은의 직위를 수정하려는 이유를 국제사회에서의 활동문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북한 헌법상 국가수반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다. 김정은은 최고통치자이기는 하나 국무위원장일 뿐이다. 과거 김정일이 실질적인 최고 지도자이면서도 국방위원장 자리만 차지했던 것과 비슷한 형태다.

    이 때문에 북한에 부임하는 외국 대사들이 신임장을 제정할 때도 김정은이 아니라 김영남에게 했고, 문서에도 북한 국가수반을 김영남으로 표시했다.
  • 생전 김일성의 모습. 김일성은 1972년 국가주석직을 만든 뒤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맡았다. 김일성이 죽은 뒤 북한에서 국가주석 자리는 공석이었다. ⓒ채널Y 김일성 관련보도 화면캡쳐.
    ▲ 생전 김일성의 모습. 김일성은 1972년 국가주석직을 만든 뒤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맡았다. 김일성이 죽은 뒤 북한에서 국가주석 자리는 공석이었다. ⓒ채널Y 김일성 관련보도 화면캡쳐.
    “김정은, 서방에서는 대통령이 의원직 겸임 않는 것 안다”

    태 전 공사는 이에 대한 자신의 경험담도 소개했다. 그는 “내가 영국 주재 북한 공사로 있을 때 영국 측에 여왕의 9·9절 축전을 김정은 앞으로 보내 달라고 계속 요구했으나 영국 측은 매번 ‘그런 의례적인 조치를 취하려면 북한 국가수반이 김정은임을 각서로 확인해줘야 한다’고 말했다”면서 “그러나 헌법에서 김영남이 북한 국가수반이라고 돼 있으므로, 법치를 중요시 하는 서방국가들은 김정은이 아니라 김영남에게 축전이나 서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서방에서 유학생활을 한 김정은은 서방에서는 대통령이 국회의원 직을 겸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므로, 북한 헌법에도 국가수반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겸직하는 제도를 없애려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사실 헌법을 통해 김정은을 북한의 국가수반이라고 명기하는 것은, 향후 다국적 합의로 체결될 종전선언이나 한반도 평화협정에 김정은이 서명할 때 그의 헌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태 전 공사는 “북한은 아마도 이런 대외적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이번 14차 1기 회의에서 국무위원장이든 또는 다른 직책을 새로 만들든 김정은이 국가수반임을 명백하게 헌법에 반영하는 방향으로 개정하지 않겠는가 생각된다”면서 “이렇게 되면 김영남이 차지하고 있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자리는 폐지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국가주석’ 제도는 1972년 처음 생겼다. 김일성은 국가주석 자리를 만들어 취임한 뒤 1994년 7월 죽을 때까지 이 자리를 차지했다. 김일성이 죽은 뒤 국가주석 자리는 영구 공석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