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주한미군 훈련중단을 얘기하고, 김정은을 치켜세웠을까?트럼프 언행 뒤에 숨은 '옵션'과 '준비'를 봐야 한다.
  •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협상학’이라는 단어가 생소한 편이지만 미국 등 주로 선진국에선 많이 발전된 학문 중 하나이다. 하버드 로스쿨에서는 2000년부터 비즈니스스쿨 뿐만 아니라 바로 옆의 MIT, 터프츠 대학 등과 함께 전문 강좌를 개설하고 활발한 연구 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정부와 기업 그리고 개인들에게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북미 협상에 대한 시각과 평가가 우리와는 다소 차이가 있어 보인다. 명칭부터 우리는 북미정상‘회담’하나지만 미국 현지에서는 북미정상‘협상’이라는 표현도 많이 쓴다. 현재 진행 중인 남북간 실무협상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양한 사안에서 북한과 미국, 주변국과의 협상을 이어가야 하는 만큼 북미 협상을 협상학의 관점에서 보면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이 무엇인지 짚어보고 개선점도 이야기하고자 한다.

    트럼프가 ‘주한미군 훈련 중단’ 카드를 꺼낸 이유

     첫째, 협상결과 보단 결과에 도달하기 위한 ‘옵션’에 대한 더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협상’의 가장 기본요소는 ‘이해(Interest)’로 이는 최종 결과 즉, 우리가 협상을 마무리할 때 취할 수 있는 실리를 의미한다. 협상학에선 ‘이해’도 중요하지만 이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 즉 ‘옵션’들이 어떤 것들인지에 더 관심을 갖고 개발하며 중요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에게 북한 비핵화가‘이해’라면 이를 위한 ‘옵션’으로 ‘군사훈련 재개 가능성’ 이라는 카드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군사훈련 중단 이야기를 처음  꺼냈을 때 우리는 섣부른 언행이라고 평가했지만 실상은 많은 고민과 논의 끝에 나온 협상 ‘옵션’을 깔기 위한 포석이었을 것이다. 부수적으로 훈련중지에 따른 경제적 가치도 얻었다. 하지만, 북한에게 ‘경제개발 및 체제보장’이 이해라면 이를 위한 옵션은 무엇인지 뚜렷하지 않다. 다만, 협상장에 나와 미국과의 ‘관계’ 를 개선하고 ‘약간의 시간’을 얻은 셈이다. 하나 남은 옵션이라면 판을 깰 듯 말 듯 ‘줄 타기’를 하는 것인데, 이 방식은 오히려 트럼프가 능하다. 따라서 ‘김정은 위원장만 실리를 챙겼다’는 시각은 옳지 않다. 길고 긴 협상은 이제 시작일 뿐이고 우리도 핵심 당사자 중 하나이다. 우리가 가진 강력한 ‘옵션’은 무엇이 있는지 살펴볼 때다.

    결과 예측보다 더 중요한 것

    둘째, ‘결과 예측’보단 ‘준비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협상학에서 가장 강조하는 1원칙은 ‘준비’다. 실제로 협상 1라운드 전후에 미국 언론의 기사를 보면 미국 정부가 김정은 위원장 또는 김영철 등 주요 참가자들이 원하는 내용, 목표, 영향력, 평소 관심사, 인물 됨됨이까지 얼마만큼 세세히 다양한 각도에서 파악하는 지를 볼 수 있다. 회담 이후에는 준비 내용에 대한 평가나 앞으로 계획 등을 주로 다루었다. 반면 우리는 북미의 사전 준비 내용과 그 평가 보단 결과에 대한 예측이 더 많았다. 심지어는 회담이 잘되었을 때의 희망을 담아 어떤 사업이 뜰 것이다, 라는 근거 없는 기대성 내용들이 정부와 언론에 의해 많이 다루어졌다. 이런 경향은 다양한 분야에서 남북간 실무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요즘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언론과 정치권, 국민이 ‘결과 예측’보단 ‘우리가 얼마만큼 준비되어 있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때 실제 협상에 나서는 협상팀에게 힘을 보태는 일이 될 것이다.

     셋째, 협상 대표 선수를 공개적으로 비난하지 않아야 한다. 비록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에 논란이 있다고 해도 협상을 앞두고 비난하는 내용은 미국 여야를 막론하고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반면 우리나라는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 도를 넘어 비난을 한 야당 대표가 오히려 비난을 사기도 했다. 비록 잘못된 부분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한들 협상이 진행 중인 가운데 협상 대표선수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누워서 침을 뱉는 일일 뿐만 아니라 상대에게 우리 약점을 노출 시킬 뿐이다.

    ‘벼랑끝 외교’ 북한의 헛점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협상의 원칙 중 하나는‘파이를 키워라’이다. 내가 상대를 꺾거나 무엇을 빼앗아 와야 하는 것은 협상이 아니다. 상대 스스로도 몰랐던 가치를 일깨워주고 함께 얻을 수 있는 것을 키우는 것이 진정한 협상이다. 트럼프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치켜세우는 모습은 단순히 그의 기분에 따른 것이 아니라 고도로 계산된 전략이다. 진정한 협상가는 협상이 끝났을 때 상대방에게 ‘내가 이겼구나’라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미국에선 협상의 결과를 평가를 무엇을 잃고 얻었는지에 대해 냉정하게 따지지만 우리나라처럼 ‘누가 이겼고 졌다’는 식의 ‘승패’의 논리로 접근하지 않는다.  북한과 협상한 경험한 적이 있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무언가를 빼앗긴 느낌’을 받는 점이라고 한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북한은, 비록 벼랑 끝 외교술로 유명할지는 모르지만, 협상학에서는 협상을 가장 못하는 나라로 평가받는다. 우리도 같은 우를 범하지 말고, 쓸 만한 옵션을 포함해 협상이 잘 진행되지 않았을 때에 대비한 대안까지도 철저히 준비해주길 바란다.

    /권신일 에델만코리아 부사장(관광정책학 박사, 하버드대 로스쿨 협상학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