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국 출신 탈북 청소년' 다룬 다큐, 의원회관서 상영중국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왔지만 여전히 '이방인'
  • ▲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 다큐멘터리 '경계에 선 아이들'시사회가 19일 오전 10시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렸다. ⓒ 이종현 기자
    ▲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 다큐멘터리 '경계에 선 아이들'시사회가 19일 오전 10시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렸다. ⓒ 이종현 기자

    제3국 출신 탈북 청소년―. 

    이름만으론 아이들의 정체성을 알기 어렵다. 정확히는 탈북 여성을 어머니로 둔 청소년이다. ‘제3국’은 대개 중국이다. 1990년대 중순 이후, 많은 여성들이 북한을 탈출해 중국으로 갔다. 이들이 중국의 조선족이나 한족에게 팔려가 낳은 아이들. 이들을 ‘제3국 출신 탈북 청소년’이라 부른다. 

    기이한 운명을 타고난 이들 청소년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시사회가 19일 오전 10시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렸다. 북한인권 NGO인 (사)세이브NK가 제작한 ‘경계에 선 아이들’이다. 

    잔잔하게 펼쳐지는 다큐멘터리는 내내 좌중을 숙연하게 했다. 탈북 여성들과 그들이 중국 등 제3국에서 낳은 아이들, 그리고 그들을 곁에서 지켜봤던 제3국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제3국 출신 탈북 청소년과 탈북 여성들의 고통과 희망, 그리고 소외의 사연이 소개되는 동안, 세미나실은 고요했다. 

    올해 21세, 중국에서 태어나 한국에 온 예림이가 다큐의 주인공이다. 예림이는 엄마에게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이야?” 물은 적이 있다. 그 때 엄마는 ‘짝퉁’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아빠는 조선족이고 엄마는 북한사람이니까 짝퉁 아닐까?” 

    엄마의 농담일 뿐이었다. 그러나 자신을 규정한 한마디 말에 어린 예림이는 큰 상처를 받았던 모양이다. 

    “짝퉁이란 말을 들어서 너무 슬픈데 그 말과 내 상황이 너무 잘 맞아서 더 슬펐어요.” 

    한국의 아이들이면 그저 웃어 넘겼을 ‘짝퉁’이란 말. 그러나 예림이에겐 세상에서 제일 슬픈 단어였다. 말 그대로 ‘웃픈’(우습지만 슬픈) 이야기라고나 할까.

  • ▲ 다큐 '경게에 선 아이들'의 주인공 예림이(왼쪽)와 유나(오른쪽)가 마이크를 들고 관객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세이브NK 제공
    ▲ 다큐 '경게에 선 아이들'의 주인공 예림이(왼쪽)와 유나(오른쪽)가 마이크를 들고 관객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세이브NK 제공

    예림이와 동갑인 유나는 중국에서 고등학교 과정까지 마쳤지만, 한국에선 학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예림이는 대안학교에서 공부하며 검정고시를 통해 수능을 준비하고 있다.

    “모국어가 중국어라서 한국에서 대학에 갈 자신이 없었어요. 한국어는 말로는 잘 할 수 있지만 공부는 다르잖아요.” 

    엄마는 유나에게 중국에서 겪은 사연들을 세세하게 들려주지 않았다. 엄마에게 서운한 마음을 가지기도 했다. 

    “엄마가 나를 위해 중국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전혀 몰랐어요. 엄마가 말해주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저 때문에, 저를 공부 시키느라고 엄청 고생했다는 걸 알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엄마는 중국인에게 팔려서 원하지 않은 결혼을 했다는 걸 안 것도 최근이다.  

    “엄마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해서 저를 낳았다는 걸 늦기 알았어요. 하지만 저는 아빠를 사랑하거든요. 엄마는 아니겠지만.” 

    유나와 예림이는 서울 서초동에 있는 탈북민 대안학교 '다음학교'에 다니고 있다. 전사라 다음학교 교감은 “아이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탈북 청소년’이라고 부를 때 굉장한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고 말했다. 중국인으로 어린 시절을 지내다가, 한국에 와서 남한 사람이 됐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주위 사람들은 아이들을 ‘탈북 청소년’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전 교감은 “아이들이 ‘한국인’이란 존재감을 스스로 가져야 사회에서 제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의 대학들이 아이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문을 열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나와 예림이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경계에 서 있다. 이들이 과연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자신들이 원했던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다큐는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그건 아이들의 몫인 동시에, 우리 사회의 몫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995년부터 시작된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에선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했다. 탈북 행렬이 잦아졌다. 수많은 북한여성들이 중국 각지로 팔려갔고, 그렇게 팔려간 여성들이 중국 현지인들과의 사이에서 아이들을 낳는다. 10~20년 후 그들은 어머니의 나라를 찾는다. 

    2016년 기준으로, 대안학교에 재학 중인 제3국 출신 탈북청소년들의 숫자가 일반 탈북청소년의 숫자를 넘어섰다. 하지만 이들의 정착과 교육을 위한 제도적 장치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손문경 세이브NK 사무처장은 다큐를 제작한 이유에 대해 “제3국에서 태어나 중도 입국한 탈북청소년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시급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세이브NK는 이날 상영된 ‘경계에 선 아이들’을 국제 다큐멘터리 및 인권 영화제에도 출품할 예정이다. 

  • ▲ 19일 오전 10시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 다큐멘터리 '경계에 선 아이들'시사회에서 심재철 전 국회부의장이 축사하고 있다. ⓒ 이종현 기자
    ▲ 19일 오전 10시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 다큐멘터리 '경계에 선 아이들'시사회에서 심재철 전 국회부의장이 축사하고 있다. ⓒ 이종현 기자

    이날 시사회에는 정치인들도 여럿 참석했다. 

    심재철 전 국회부의장은 환영사에서 “2016년에 북한인권법이 만들어졌지만 북한인권재단이 폐지되어 아쉽다”면서 “이번 기회를 통해 탈북 청소년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 ▲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는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 ⓒ 이종현 기자
    ▲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는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 ⓒ 이종현 기자

    북한인권운동가 출신인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격려사에서 “북한이 정상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인권문제를 우선으로 해결해야 한다”면서 “북한도 대한민국처럼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이 될 수 있도록 국회가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 ▲ 시사회에 참석한 ⓒ 설훈 더불어 민주당 의원
    ▲ 시사회에 참석한 ⓒ 설훈 더불어 민주당 의원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격려사에서 “통일 이전에 국내 탈북민들을 보는 시각과 자세가 대단히 중요하다”면서 “국내 탈북민들에 대한 처우가 잘못되면 통일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의 김용태, 김영우 의원도 시사회에 나와 제작진과 청소년들을 격려했다. 

    다큐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손문경 세이브NK 사무처장의 사회로 김석향 이화여대 북한학 교수, 전사라 다음학교 교감, 오진하 탈북민 영화감독, 한옥정 탈북가수와 제작진, 그리고 출연진들이 제작 과정의 에피소드를 소재로 대화를 나눴다. 

    한옥정 씨는 “이렇게 아픈 사연들을 내 딸더러 털어놓으라고 했다면 쉬운 일이었겠느냐”며 눈물을 훔쳤다. 한 씨는 용기를 내 출연에 응한 예림이와 유나, 두 주인공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한 씨는 또 “아직도 '탈북자'라는 엄마의 신분 때문에 태어나서부터 쫓겨 다녀야만 하는 제3국의 아이들을 한국 국민들이 기억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주인공 유나는 “이번 다큐를 통해 우리와 처지가 같은 아이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다른 주인공 예림이는 “한국에 오지 못한 아이들은 열악안 환경 속에서도 나름 행복하게 살고 있다”며 “그들을 너무 불쌍하게만 보아주지는 말아 달라”고 주문했다.

    김범수 세이브NK 대표는 개회사에서 “앞으로도 탈북민 정착을 위한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만들어 북한 인권을 개선하고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