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강연 아냐… 직업란에 '정치인'이라 적을 일 없다"
  •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지난달 전격적으로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대선 국면에서 후보 외에 다른 특별한 '역할'을 맡지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기문 전 총장은 7일 저녁 서울 용산동 국방회관 충무홀에서 열린 한국안보문제연구소(KINSA) 아카데미 모임에서 특강을 한 뒤, 일부 취재진과 환담하는 자리에서 "내달 출국한 뒤 7월에 다시 (국내로) 들어올텐데, 그 때에는 새 대통령이 서고 새 내각도 구성돼 있을 것"이라며 "원래는 투표를 하기 위해서 중간에 들어오려고 했는데, 법이 바뀌어서 (조기 대선 때도) 재외공관에서 투표를 할 수 있게 됐더라"고 언급했다.

    '조기 대선' 때 재외국민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이에 따라 반기문 전 총장은 대선 투표를 재외공관에서 하면서, 7월까지는 해외에 계속해서 머무를 계획을 짠 것으로 보인다.

    빠르면 이번 주중으로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인용 결정이 날 경우, 5월 중순에는 대선이 치러지게 되는데, 이 때 국내에 있지 않을 반기문 전 총장이 대선 국면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앞서 반기문 전 총장은 이날 특강에서 "정치지도자들이 우선 안보에 신경을 쓰되, 국내적인 정치 문제에 함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꼭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하지 않더라도 대한민국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전직 유엔사무총장으로서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대선 국면에서 안보를 중시하는 후보의 손을 들어주거나 측면 지원을 하는 방식으로 일정한 '역할'을 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도 잠시 제기됐다. 하지만 대선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해외에 체류할 계획을 밝힘에 따라 그 가능성은 사라졌다는 평이다.

    이날 특강은 반기문 전 총장과 극히 긴밀한 인연을 맺고 있는 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의 초청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반기문 전 총장은 "노무현 대통령 첫해에 내가 외교보좌관, 김희상 장군이 국방보좌관으로, 그 때 정부나 청와대의 구성을 보면 몇 명 남지 않은 사람들과 같은 존재였다"며 "어려운 정치환경 속에서 대한민국의 외교안보를 어떻게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 할지 함께 열심히 일한 김희상 장군과의 돈독한 관계를 존중해서 이 자리에 섰다"고 특강의 계기를 밝혔다.

    그러면서 이날 특강이 자신의 정치 활동 재개로 비쳐지는 것을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다.

    반기문 전 총장은 특강 서두에 "마치 내가 오랫동안의 칩거를 끝내고 (정치) 활동을 재개하는 것처럼 보도가 되기도 했는데, 그와는 전혀 무관하다"며 "이 모임도 정치적인 성격을 가진 모임이 아니고, 정치적인 문제를 논의하는 강연의 장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못박았다.

    또, 특강 도중에도 "정치를 좀 해볼까 하다가 접었다"며 "직업란에 '정치인'이라고 적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해 좌중의 웃음을 유도하기도 했다.

    이날 특강에 참석한 150여 명의 청중 중에서도 정치에 관계된 인물은 거의 없었다. 현역 국회의원 중에서는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아카데미 7기 수료생인 자유한국당 지상욱 의원이 유일하게 자리를 지켰다.

    이처럼 현실정치에의 관여 가능성과 확실하게 선을 그은 반기문 전 총장이지만, 지난 1~2월에 걸쳐 20일간 진행됐던 대선 캠페인과 관련해서는 아직까지 여러 감정이 남은 듯한 모습도 보였다.

    행사 도중 성악단이 〈아름다운 나라〉를 열창하던 도중 "큰 추위 견뎌낸 나무의 뿌리, 푸르게 더 푸르게 수만 잎을 피워내 줄기로 하늘까지 뻗어라"라는 대목의 가사가 나오자, 듣고 있던 반기문 전 총장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