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룰' 변경 불가피… 국민선거인단 구성 못할듯
  • ▲ 자유한국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주영 의원 등 지도급 인사들이 10일 오전 당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견해로 파면당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자유한국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주영 의원 등 지도급 인사들이 10일 오전 당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견해로 파면당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뇌우 경보에도 우산을 들고 골프를 치다 마침내 결국 벼락을 맞은 꼴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으로 날벼락을 맞은 자유한국당은 초상집 분위기다.

    이날 탄핵 인용 결정이 헌법재판관 전원 일치의 의견으로 내려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자유한국당은 애당초 인용 결정을 전제로 움직여 왔다. 정우택 원내대표가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을 영입하고, 이른바 '양아치 친박'들을 징계에 처하며, 새누리당에서 지금의 당명으로 바꾼 것도 현 정권과 선을 긋고 새롭게 거듭나겠다는 의지였다.

    그런데 당내 일각에서 탄핵 기각을 외치고 나서기 시작했다. 상실감에 빠져 있던 지지층을 결집하는데는 일정 부분 효과를 발휘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 현실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결국 탄핵이 인용으로 결정나고보니,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은 경솔한 처신이 되고 말았다. 탄핵 인용을 예상하고도 탄핵 기각 목소리를 제어하지 못하고 파국을 맞은 것이, 마치 뇌우 경보에 우산을 들고 골프를 치다 벼락을 맞은 모양새라는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인명진 위원장과 정우택 원내대표가 탄핵 기각을 당론으로 채택하는 것만은 끝까지 저지했다. 만약 정당 차원에서 탄핵 기각을 당론으로 채택했더라면, 인용이 된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선에 후보를 낼 명분조차 잃을 뻔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탄핵 기각을 당론으로 채택했더라면, 인용이 된 순간 지도부 총사퇴는 불가피할 뻔 했다"며 "대선은 5월 9일로 확정돼 시계는 째깍째깍 돌아가는데, 지도부 공백이 생겼더라면 우리 당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을 것"이라고 '불행 중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인명진 위원장과 정우택 원내대표는 탄핵 기각 목소리와는 거리를 둬왔기 때문에, 이날 결정과 무관하게 물러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국당은 당분간 '인명진 체제'로 대선 준비에 돌입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한국당의 향후 대선 준비 일정은 어떻게 될까.

    일정 기간 석고대죄에 돌입하는 것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으로 즉시 파면돼 전직 대통령 지위로 내려앉은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한국당도 이날로 집권여당의 지위를 상실했다. 그러나 전 집권여당으로서 책임을 진다는 차원에서 대국민 사죄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석고대죄 이후로는 빠르게 경선 룰을 논의하면서 대선 준비 체제로 전환할 것으로 관측된다. '경선 룰'과 관련해서는, 대의원 20%·책임당원 30%·일반국민선거인단 30%·여론조사 20%가 한나라당 시절부터 내려오던 일관된 룰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을 앞두고서는 이 룰이 지켜질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한국당 대권주자 측 핵심관계자는 "특히 일반국민선거인단을 모집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며 "외주 줘서 전화 돌리면서 '한국당 경선 선거인단에 참여하겠느냐'고 물어봐 모집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누가 한국당 선거인단에 응하겠느냐"고 회의적인 견해를 토로했다.

    결국 일반국민선거인단은 제외하고 대의원·책임당원·여론조사 비율을 재조정해서 경선을 치를 개연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대권주자로는 이미 출마 선언한 원유철 전 원내대표, 안상수 의원, 이인제 전 최고위원,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신용한 전 대통령직속 청년위원장 등 5명이 있다. 여기에 김관용 경북도지사와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도 곧 출마 선언을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으로 그간 탄핵 기각을 부르짖거나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했던 이인제 전 최고위원·김진 전 논설위원·김관용 지사·김문수 전 지사는 경선은 모르되 본선에서의 경쟁력은 상당히 낮아졌다는 평이다.

    또, 탄핵 기각을 외쳤으니 논리상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고, 그렇다면 탄핵 인용의 결과로 치러지는 조기 대선에 출마해야 할 정치적 명분까지도 불분명해졌다는 지적이 많다.

    반면 신중하게 거리를 둬오면서 헌재 결정에의 승복을 강조하는 정론을 견지해온 원유철 전 원내대표·안상수 의원과 신용한 전 위원장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강화됐다.

    출마 여부가 최대 관심사인 홍준표 경남도지사도 "정치적으로는 무능해 탄핵감이지만, 법리적으로는 검토의 여지가 있다"는 입장이었던 만큼, 탄핵 인용으로 특별한 정치적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는 분석이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사실상 출마 쪽으로 기울었다는 게 여권 안팎의 관측이다.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의 출마 가능성도 미세하게나마 여전히 남아 있는데, 조만간 본인 스스로 거취를 결정짓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탄핵 인용 결정을 계기로 당이 순탄하게 대선 준비 체제로 돌입하기보다는 다시 한 번 내홍에 휩싸일 가능성도 엿보인다.

    한국당 나경원 의원이나 강석호 전 최고위원 등 잔여 비박(비박근혜)계 의원들이 탄핵 인용 결정을 계기로, 그간 탄핵 기각의 당론 채택을 압박했던 '양아치 친박'계의 책임론을 들고 나오면 당이 재차 내홍에 돌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권 핵심관계자는 "현재 당내에 잔류한 비박계 의원들은 약 30여 명 정도"라며 "탄핵 기각의 당론 채택에 동조했던 친박계 60여 명에 비하면 숫적 열세가 명료하기 때문에, 탄핵 이후 각 정당의 지지율 변화에 따라 내홍을 명분삼아 집단 탈당을 결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