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1명도 사망자 없이 600명으로 4천여 명의 중공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 ▲ J. Frank Dalley 미국 육군(준장) (1913.10.15~1990.4.8).ⓒ보훈처
    ▲ J. Frank Dalley 미국 육군(준장) (1913.10.15~1990.4.8).ⓒ보훈처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프랭크 댈리 미국 육군 준장을 5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1951년 5월 26일 밤, 중공군과 교전이 한창이던 경기도 가평의 홍종리 인근, 프랭크 댈리 중령이 이끄는 제213야전포병대대에 미군 제24사단 21보병연대를 포격 지원하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그러나 포병부대를 경호하던 전투 병력이 적군을 봉쇄하기 위해 전진하면서 포병부대는 전투 병력의 보호 없이 홀로 남겨지고 말았다.

    4,000 명에 달하는 중공군은 240명의 병력에 불과한 포대가 지키고 있는 좁은 협곡을 돌파구로 삼기 위해 맹렬히 공격해 왔다.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전투는 흡사 백병전의 양상으로 전개됐다.

    새벽까지 이어진 포화 속에서 협곡을 둘러싼 능선을 오르려고 시도했던 적군은 미군의 공격에 마침내 무릎을 꿇었고, 퇴각도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대규모로 투항해 왔다. 

    350명의 적군이 전사하고 830명 이상이 생포되거나 투항하는 대기록을 남긴 이날의 전투에서 더욱 놀라운 것은 제213야전포병대대에는 단 한 명의 전사자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 유타주 서밋 출신의 프랭크 댈리 중령은 그 누구보다 병사들의 안전과 운명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213부대는 모두 유타 주의 인근 마을에서 온 600명의 어린 병사들로 이루어진 부대였기 때문이다.

    당시의 부대원은 댈리 중령의 고뇌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기도 했다. ‘그는 훌륭한 리더였으며, 우리 모두를 염려해주었다. 파병 당시 약 187파운드(약 85kg)였던 그의 몸무게는 1년 후 부대원에 대한 근심과 스트레스 때문에 147파운드(약 67kg)로 줄었으며 갈색이던 머리도 백발이 됐다’

    프랭크 댈리 중령은 자신에게 맡겨진 부대원 600명의 책임자로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으며, 이에 600명 전원이 가족과 친구가 있는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다. 유타주 주민들은 이를 두고 ‘가평의 기적’ 또는 ‘가평의 전설'이라고 부르며 해마다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