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액은 공개-증액 비공개? 겉과 속 다른 행태-쪽지예산 논란 반복
  • ▲ 국회 전경.ⓒ뉴데일리 이종현 사진기자
    ▲ 국회 전경.ⓒ뉴데일리 이종현 사진기자


    국민의 혈세(血稅)로 이뤄진 정부 예산안을 몇몇 국회의원이 마음대로 조정하는 '초법적 행태'가 재연되고 있다. 

    해마다 되풀이 됐던 '쪽지 예산', '밀실(密室) 증액 심사' 등의 정치권의 구태가 올해도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혈세 예산 증액 심사를 비공개로 하는 것도 모자라 속기록조차 남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입법기관의 위헌성 또는 불법행위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국회는 10일 부처별로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본격적인 증액(增額)·감액(減額) 작업에 들어갔다. 여야는 이날 '증액' 부분에 대해서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야 간사들이 비공개로 논의한다는 방침에 합의했다.

    현재 예결위원장은 새누리당 홍문표 의원이, 여당 간사는 새누리당 이학재 의원, 야당 간사에 이춘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맡고 있다. 

    결국 이들의 결정은 세금을 아껴쓴다는 식의 '예산 감액'은 공개적으로 하고, 증액은 밀실에서 하겠다는 것인데 보여주기식 정치를 넘어,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表裏不同) 행태'라는 지적이 높다.

    일반적으로 정부가 편성한 예산안은 국회의 각 상임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예결위로 보내진다. 예결위는 예산안조정소위를 열고 본격적인 감액 심사를 실시한 뒤 '증액 심사'를 진행하는데, 여기부터 '밀실 심사' 등의 논란이 불거진다.

    증액 심사를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한다는 점에서 예산을 나눠 먹으려고 꼼수를 부리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이다.

    특히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대의기관'으로서 속기록을 남기는 것이 당연함에도 이조차도 불가능하게 했다.   

    상임위 위원장과 간사들이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은 채 국민 세금을  마음대로 주무르겠다는 것인데, 결국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라는 원성마저 나올 지경이다.  


    사실 예결위의 이런 행태는 위헌적 소지가 다분하다. 

    대한민국 헌법 57조는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재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회가 국민 혈세를 바탕으로 한 예산을 새로운 항목 등을 만들어 증액할 수 없도록 예산수정권한에명시적인 제한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예산 증액시 속기록조차 남기지 않고 비밀리에 증액하겠다?

    이는 해석에 따라 '초법적 행태'에 해당할 수 있고, 
    피같은 세금을 내는 국민 입장에서는 범죄행위로 비춰질 소지가 충분해 보인다. 

    특히 우리나라는 조세법률주의를 택하고 있다. 법률의 근거 없이는 국가는 조세를 부과·징수할 수 없고, 국민은 조세의 납부를 강요받지 않는다는 원칙(헌법 59조)인데, 증액 심사는 이런 헌법적 원칙에도 어긋날 뿐더러 재정민주주의와도 거리가 있는 행태다.

  • ▲ 홍문표(가운데) 예산결산특별위원장과 새누리당 간사인 이학재(왼쪽)·새정치민주연합 간사인 이춘석 의원이 지난 7월 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를 마치고 나서 함께 손을 잡고 있다. ⓒ연합뉴스
    ▲ 홍문표(가운데) 예산결산특별위원장과 새누리당 간사인 이학재(왼쪽)·새정치민주연합 간사인 이춘석 의원이 지난 7월 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를 마치고 나서 함께 손을 잡고 있다. ⓒ연합뉴스


    예산 증액 심사를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에 대해 예결위 야당 간사인 이춘석 의원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예산안 삭감은 국회 권한이지만, 증액은 행정부처의 동의가 필요하다. 국회에서 필요로 하는 예산증액을 위해서는 행정부와 협상을 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을 공개하기에 어려운 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헌법 57조의 예산 증액 제한 규정을 염두한 발언으로
    위법성 여부가 논란이 될 수 있는 만큼 이를 비공개적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결국 자신의 행동이 위법행위 혹은 잠탈(潛脫)행위해당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셈이다. 

    또 예결위는 증액 심사를 비공개로 하는 것에 대해 "예산안을 12월 2일까지 본회의에 넘기려면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역시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높다. 사실 정치권의 '밀실 심사'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야는 '증액 심사 비공개는 밀실 심의'라는 비판에 밀려 '증액심사 투명화 방안 추진'을 선언했다.

    그러나 양당 간사에 대한 증액심사 위임 금지 및 증액심사 속기록 작성 의무화 등을 논의만했을 뿐 실질적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올해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4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이번 예산안 심사에서 '쪽지예산'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나섰지만, 과거 행태에 비춰 보면 결국 그런 말은 바람처럼 사라질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그동안 상당수 국회의원들은 간사들 간의 증액 심사 과정에서 이른바 '쪽지 예산'을 버젓이 챙겨왔다.

    기록이 남는 예산 '감액' 회의에선 예산을 아껴쓰는 듯한 발언을 한 뒤 비공개인 증액에 있어선 낯 뜨거운 지역구 선심성 예산을 쪽지에 적어 간사들에게 전달, 편법적 예산 증액을 챙겨온 것이다.

    실제 2011년 2000억원대였던 쪽지 예산은 2012년에 4000억원대로, 2013년엔 5574억여원으로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관계자는 "지역구를 가진 상당수의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를 위한 쪽지 예산을 여야 간사에게 보낸다"며 "예산 증액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예결위 간사의 경우엔 수백억 원씩 예산을 챙겨간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떠돌고 있다"고 말했다.

    예산안을 대하는 국회의 두 얼굴로 인해, 피해는 결국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온다는 지적이 나온다. 쪽지 예산을 반영하느라 정작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사업에 예산이 지원되지 않거나 깎이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의 이옥남 정치실장은 "정치권의 밀실 심사 구태가 또 반복되고 있다. 이런 행태로 인해 정작 필요한 예산에는 배정되지 않는 심각한 국가재정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며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국회는 올해부터라도 예산 증액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공정한 심사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