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삼각편대, 아르메니아에 '융단폭격'
  • ▲ 러시아 축구대표팀ⓒ러시아 축구협회 공식 홈페이지
    ▲ 러시아 축구대표팀ⓒ러시아 축구협회 공식 홈페이지
    러시아가 크라스노다르의 쿠반 스타디움에서 아르메니아를 상대로 2-0 승리를 거뒀다.
    '우승 청부사' 파비오 카펠로 감독의 러시아는 도깨비팀으로 손색이 없는 아르메니아(30위)를 상대로 완승을 거두며 월드컵 준비는 끝났음을 알렸다. 특히 공격 때 무서운 집중력을 보였던 점은 한국이 안고 있는 숙제에 대한 해결책을 보여주는 듯했고, 전체적인 경기력에 있어서도 우리나라에게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러시아 대표팀의 핵심 미드필더이자 주축인 알란 자고예프(24·CSKA모스크바)는 의외로 벤치에서 경기를 맞이했다. 또한 A매치 77경기에서 24골을 기록 중인 알렉산드르 케르자코프(제니트 A매치 77경기에서 24골을 넣은 알렉산드르 케르자코프(31, 제니트)도 선발 출장하지 않았다. 러시아로선 5월 31일 노르웨이와의 평가전이 월드컵 전 마지막 경기이기 때문에, 주전을 처음부터 가동하지 않은 것은 주목할 만하다. 아르메니아전을 통해 드러난 파비오 카펠로 감독의 의중은 옥석을 가려내기 보다는, 주전 선수들을 뒷받침 할 수 있는 백업 선수들을 정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했다.
    전반 20분까지는 러시아와 아르메니아 모두 일진일퇴의 양상을 보였다. 양팀 모두 확실한 득점 기회를 만들어 내지 못하며 오히려 소강상태로 접어드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런 흐름을 깬 것은 러시아의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나선 젊은 공격수, 알렉산드르 코코린(22, 디나모 모스크바)이었다. 지르코프와 사메도프로 구성된 러시아의 삼각편대는 순식간에 아르메니아의 포백 수비진을 무너뜨리며 1-0으로 달아났다. 코코린이 오프사이드 라인을 깨는 사이, 알렉산드르 사메도프(29, 로코모티브 모스크바)가 낮은 크로스를 올렸고, 이는 그대로 코코린의 발 앞으로 떨어지며 득점으로 연결됐다. 중앙과 측면을 모두 활용한 과정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기세가 오른 러시아였지만 전반이 마칠 때까지 아르메니아의 전열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원정팀의 부담감이었을까? 아니면 이른 시각에 실점을 했기 때문에 초조해졌을까. 41분에 문전에서 미숙한 볼 처리로 실점의 위기를 넘긴 아르메니아는, 불과 2분 뒤인 전반 43분에 페널티박스에서 불필요한 태클로 페널티킥을 허용하며 무너졌다. 드미트리 콤바로프(27, 스파르타크 모스크바)가 골망을 흔들며 자신의 A매치 데뷔골을 쏘아 올렸다. 러시아의 '플랜B'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 전반전이었다.
    후반전에 자고예프가 파이줄린을 대신하여 투입되며, 러시아는 기본 포메이션에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 기존 글루샤코프와 쉬로코프, 파이줄린 역삼각형으로 배치됐던 중앙 미드필더진이 자고예프가 투입됨으로써 정삼각형의 형태로 변경됐다. 이는 러시아가 자고예프를 중심으로 후반전을 운영하겠다는 카펠로 감독의 의도가 드러나는 것이었다. 아울러 케르자코프와 코즈로프, 데니소프가 동시에 투입되며 전술의 다변화가 시작됐다.
    자고예프 효과는 후반 4분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페널티 박스밖에서 공을 잡은 자고예프는 슈팅을 시도할 수 있는 거리였음에도 코코린에게 패스를 했고, 코코린은 다시 콤바로프에게 열어주며 추가 득점의 기회를 잡기도 했다. 아르메니아의 베레조브스키 골키퍼의 선방이 아니었다면 점수차는 더욱 벌어질 수 있었다. 후반 10분, 코코린과 케르자코프로 이어졌던 패스 게임은 러시아가 결코 단순한 팀이 아니라는 걸 반증하는 정거였다.
    러시아의 주도권 속에 진행된 후반전은 득점없이 마쳤고, 결국 경기는 러시아의 2-0 승리로 끝났다. 추가골을 반드시 기록할 필요가 없었던 러시아는 공격진의 숫자가 상대 수비진 보다 많을 때만 속공을 했을 뿐, 그 외에는 모두 지공을 택하며 무난한 경기 운영을 했다.
    하지만 러시아도 결코 '완벽하다'고 평할 수는 없는 경기였다. 헨릭 므키타리안 등 아르메니아가 전체적으로 부진했기에 경기를 쉽게 풀어 나갈 수 있었고, 러시아 스스로에게도 자고예프 외에 패스와 탈압박 및 시야 확보 등의 역량을 갖춘 일명 '스페셜리스트'는 보이지 않았다. 물론 러시아 공격진의 연계 효과는 좋았지만, 이는 동시에 아르메니아 선수들이 압박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실제로 경기 중 좋지 않은 패스가 수 차례 나왔음에도 러시아는 공의 소유권을 가져갈 수 있었다. 또한 러시아는 1:1 돌파 기회에서도 돌파 대신 패스를 선택 할 정도로 특출난 '드리블러'는 보이지 않았다. 자고예프가 간혹 발재간을 보여주긴 했지만, 효율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돌파를 위한 드리블보다는 볼을 키핑하기 위한 드리블 성향이 더 강했다.
    오늘 경기로 한국은 어떻게 러시아를 상대해야 할 지, 어느정도 감이 잡혔을 것이다. 스페셜리스트가 없는 러시아를 상대로 한국이 완수해야 할 임무는 바로 '압박'과 경기장을 넓게 쓰는 것, 이 두가지다. 최전방에서부터 이어지는 강한 압박은 러시아의 패스 공간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열쇠로 작용 할 것이며, 경기장을 넓게 쓸 수 있다면 짧은 패스 위주로 풀어가는 러시아의 체력을 크게 소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