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측근 등 원로 모두 사라지고 주변에는 장성택 측근들 뿐

  • 장성택의 ‘등장과 퇴장’으로 본 김정은 2년


    김정은의 1년
     
    <김정일>에 대한 짧은 애도 기간을 거친 뒤
    곧바로 군 최고사령관에 오른 <김정은>은
    2012년 2월 [김정일 훈장]을 제정하는 등
    축제 분위기 조성에 박차를 가했다.

    4월엔 당 대표자회와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했고
    장거리 로켓 발사에 이어
    대대적인 [김일성 100회 생일] 기념행사를 치르며
    이른바 체제안정을 과시했다. 

    6월에는 우리 언론기관들의 좌표까지 적시한
    [최후통첩장]을 공개하는 등
    대남 위협을 통해
    한국은 물론 북한 내 분위기를 고도로 긴장시켰으며
    예년에 없던 소년단창립 66주년 행사를 치르는 등으로
    어린이들까지를 포함한
    [사회의 단결]과 [체제수호]를 독려했다. 

    그리고 7월초 <김정은>은
    <리설주>를 대동하고
    디즈니 캐릭터의 인형들이 등장하고
    [록키]의 테마음악이 연주되는
    모란봉여성악단의 공연장에 나타나
    변화의 제스처를 보이였다.
    흰 반소매 재킷과 미니스커트를 입은
    패셔너블한 평양처녀들의 유희에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데 골인한 <김정은>이다. 

    같은 해 7월에는
    북한군의 실세라 불리던
    <리영호>(총참모장)가 숙청되고
    군수뇌부의 교체와 함께
    권력층 전체에 대한 인사가 강행되면서
    <김정은> 체제의 안정화를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김정은>의 고민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김정은>에게 아비의 유산과 같은
    [공화국 원로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렸고
    당시의 <김정은>으로서는
    이를 컨트롤할 아무런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김정은>은
    자신과 함께 갈 것이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던
    [아버지 주변사람들]을 잃어버렸다.
    심지어는 12월의 영결식장에서
    자신과 은구차를 호위했던
    이른바 권력핵심 7인중 군부 4인방이
    모두 실각하거나 한직으로 물러났지만
    [구경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살아야 했다. 

    결국 남은 사람은 <김기남>과 <최태복> 등
    80세 이상의 상징적 인물들이었고
    이제 <김정은> 체제에 머문 사람은
    하루아침에 대장 칭호를 받고
    북한의 핵심세력으로 부상한
    <최룡해>와 <장성택> 뿐이었다. 

    일각에서는
    김정은 체제하에 새롭게 급부상한 두 인물을 놓고
    서로 다른 무게를 부여하고 있지만
    아래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장성택>이 없는 <최룡해>는 생각할 수 없는 인물이고,
    결국 <장성택>으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해 버렸다.

    년 도

    장 성 택

    년 도

    최 룡 해

    1985.07

    노동당 청년사업부 제1부부장

    1986.08

    사로청 중앙위원회 위원장

    1989.07

    노동당 청년 및 3대혁명소조 부장

    1989.01

    제13차 세계청년축전 준비 위원장

    2003.09

    송림제철소 혁명화

    1989.01

    평양 상하수도관리소로 혁명화

    2006.01

    조선노동당 행정부장

    2006.04

    황해북도 당위원회 책임비서

    2010.06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2010.06

    변동 없음

    2010.09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2010.09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2012.11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2012.04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이론적으로는
    명실 공히 최고사령관으로 등극한 <김정은>,
    이를 지근거리에서 확실하게 보필하는 <장성택>,
    여기에 빨치산 투사의 자녀로
    누가 보기에도 문제없어 보이는 <최룡해>까지
    등장함으로 김정은 체제는 [완성]으로까지 치닫는 듯 했다. 

    하지만 뒤에서는
    [김일성-김정일 후계 체제]의 [학습효과] 때문에
    <김정일>의 사망과 함께
    <김정은>을 향해 급속히 결집되었던
    북한 권력층의 행태였을 뿐
    [<김정은> 체제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장성택>의 ‘벽’을 넘어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장성택의 사람들]이 확실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최룡해>를 제외하고라도
    <김영일> 당 국제부장,
    <김평해> 중앙당 비서,
    <문경덕> 평양시당 책임비서 등이 그들인바
    이른바 북한의 젊은 그룹으로 분류되기까지 했다. 

    여기에 원로세대의 자녀들인
    <오일정(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의 차남)> 당 군사부장,
    <서동명(서철 전 노동당 비서의 장남)> 대외보험총국장,
    <리용호(리명제 당 조직지도부 1부부장의 장남)> 외무성 제1부상,
    <리용철(리화영 전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의 장남)>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제1비서 등이
    <장성택>의 천거로 <김정은> 체제에 복속됐다. 

    군 인사만큼은 장성택의 주도에 맡기지 않겠다는
    <김정은>의 복심이 작용하기도 했지만
    역시 <장성택>의 추천과 대립되었음으로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던] 군 수뇌부 인사였음도 감지된 바다.
    여기에 [김정일의 유훈을 받든다]는 명분까지 겹쳐
    <김정일> 때의 인물과 시스템이 혼선을 빚어왔음을
    목격하기도 했다. 

    이제, 김정은의 1년을 다시 돌아보면
    [놀이동산 가서 풀을 뽑고],
    [김정일이 안하던 육성연설을 하고],
    [각종 행사에 부인 리설주를 대동]하고 다녔으며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안아주었던] 일들만 남는다. 

    더하여 [로켓 발사 실패를 곧바로 공개]하는 등
    새로운 리더십과 품모를 강조하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같은 일들은
    체제유지의 핵심사안인
    [우상화]와 [수령의 신비]를 스스로 허무는 꼴로
    작용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김정은>은
    과거의 지도자들처럼
    위대하지도 영웅적이지도 않은
    보통의 인간이 되어 버렸고
    그만큼 북한주민들이 <김정은>에게 거는 기대는
    [하루세끼 옥수수밥이라도 먹여달라]는
    현실적인 것들이 되어버렸다. 

    주민들은
    <김정은>을 향한 권력층의 비상한 결집과 달리
    새로운 지도자를 모르쇠로 일관했고
    역시나 [<김정은> 권력 핵심층은 결집된 반면
    인민대중은 정권을 외면하는]
    역 삼각형과 같은 불안정한 구도가 되어버렸다.

    (계속)
     
    탈북자 김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