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對러 관계 차질로 경제상황 크게 악화…서방 보상 약속도 없어"
    야누코비치 대통령 "러시아가 수입 제한 협박해 어쩔수 없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우크라이나가 그동안 야심차게 추진해오던 유럽연합(EU)과의 협력협정 체결 준비를 중단한다고 전격적으로 밝힌 가운데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당초 이달 28~29일 EU 순회의장국인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서 열리는 'EU-동부파트너십' 정상회의에서 EU와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골자로 한 협력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준비를 해 왔다. 하지만 21일(현지시간) 협정 체결 준비를 잠정 중단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따르면 니콜라이 아자로프 우크라이나 총리는 22일 의회 대정부 질의에 출석해 "EU와의 협정 체결 준비 중단 결정은 어려운 것이긴 하지만 현재 우크라이나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유일하게 가능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EU와의 협정 추진으로 러시아와의 경제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서 우크라이나 경제 상황이 크게 악화한 것이 협정 체결 준비 중단의 가장 큰 이유가 됐다는 설명이었다.

    여당인 '지역당' 원내 대표 알렉산드르 예프레모프도 최근 3개월 동안에만 러시아와의 교역 감소로 우크라이나가 약 50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며 아자로프 총리의 주장에 힘을 보탰다.

    그는 "기계제작, 조선 등의 산업이 사실상 중단됐고 항공 분야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며 "정부는 이같은 상황을 검토해 EU와의 협정 체결 준비를 잠정 중단키로 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강조했다.

    아자로프 총리는 또 지난 20일 공개된 국제통화기금(IMF)의 추가 차관 지원 조건도 협정 체결 중단 결정을 재촉한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는 현재 지난 2008년과 2010년 IMF로부터 제공받았던 차관 상환 등을 위해 약 100억 달러의 차관을 추가로 지원받는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아자로프에 따르면 IMF는 우크라이나에 추가 차관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주민들의 가스 및 난방비를 40% 가까이 인상하고 월급 및 최저 임금을 현재 수준에서 동결하며, 예산 지출을 크게 삭감하고 에너지 분야 보조금을 인하하는 등의 우크라이나 정부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했다고 비난했다.

    아자로프는 이밖에 우크라이나가 EU와 협력 협정을 체결한 뒤 옛 소련권 관세동맹 회원국(러시아-벨라루스-카자흐스탄) 시장을 잃으면서 입게될 손실에 대해 어떤 보상을 해줄지에 대해 유럽 파트너들로부터 분명한 답을 듣지 못한 것도 협정 체결 연기 이유가 됐다고 덧붙였다.

    러시아는 그동안 우크라이나에 EU가 아닌 관세동맹에 가입할 것을 촉구하면서 다른 결정을 내릴 경우 보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아자로프 총리는 우선은 러시아와의 관계 회복을 시도할 것이라며 당장 다음 주에 러시아-우크라이나-EU 간 3자 협상을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도 EU와의 협정 체결 중단 결정은 전적으로 경제적 이유 때문에 내려진 전술적 결정으로 유럽을 지향하는 우크라이나의 전략적 발전 방향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러시아의 압력 때문에 EU와의 협력 협정 체결이 어렵다고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이번주 EU 순회의장국인 리투아니아 대통령 달레이 그리바우스카이테와의 전화통화에서 러시아의 경제적 압박과 협박 때문에 EU와의 협력 협정에 서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이 전했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산 제품) 수입 제한, 특히 산업 중심지로 수십만명의 근로자가 일하는 동부 우크라이나 지역 기업들의 제품 수입을 제한하겠다고 협박했다"며 "그렇게되면 우크라이나가 수십억 달러의 피해를 입게되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EU와의 협정 체결 준비를 중단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이같은 해명에도 우크라이나 야당은 EU와의 협정 체결 준비 중단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날 야당 의원들은 아자로프 총리가 연설하는 동안 야유를 퍼부으며 단상 점거를 시도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21일 저녁 키예프의 독립 광장에는 정부 결정에 분노한 시민들이 몰려나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한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2일 오히려 EU가 협력 협정 체결 준비를 중단한 우크라이나를 협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를 방문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와 회담한 뒤 연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유럽 파트너들이 대규모 저항 시위를 지원하겠다는 식으로 우크라이나를 위협하는 발언을 듣고 있다"면서 "이것이 바로 압력이며 협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며칠 뒤면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이런 협박에 항복할지, 그것에 저항하면서 국가 이익을 위해 실용적 태도를 보일지가 분명해 질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