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떠나는 탈북자들> ②무엇이 그들을 떠나게 했나
    자본주의 사회 적응 실패 주요인…한국사회 '편견'도 싫어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30일 "남조선에 갔다가 공화국의 품으로 돌아온 주민들"이라며 박진근·장광철 씨와의 좌담회 내용을 공개했다.

    이들은 좌담회에서 인신매매꾼들의 회유와 협박에 못 이겨 한국으로 끌려갔었다고 주장했다.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유럽과 북미국가 등으로 이주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최근에는 이러한 재입북 사례가 늘고 있다.

    목숨을 걸고 '자유의 땅' 한국을 찾았던 이들이 왜 다시 떠나는 것일까.

    작년 8월 장광철 씨와 같은 기수로 하나원을 수료했다는 L씨는 "장광철은 아내와 어린 아들을 한국에 데려오겠다며 중국에 갔다가 보위부의 덫에 걸려 북한으로 끌려갔다"고 주장했다.

    그는 "장광철을 하나원에 있을 때부터 지켜봤는데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었다"라며 "정신적으로나 인간관계에서도 크게 문제가 없었다"고 북한 당국의 '자진 입북' 주장을 부인했다.

    탈북자 사회에서는 재입북자 중에 장 씨처럼 가족을 데려오려고 중국이나 북한에 몰래 들어갔다가 보위부에 붙잡히는 경우가 절반이 넘는다고 추정한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스스로 북한행을 택하는 탈북자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 경찰 관계자는 "재입북자들을 보면 한국에서 출국하고 나서 두 달 이내에는 벌써 북한에 가 있더라"라며 "북한에 갈 사람은 한국에서부터 아예 작심하고 가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으로 돌아간 탈북자들의 기자회견 내용을 보면 대부분이 한국행 브로커들의 '악행'을 비난하는 내용이다.

    실제로 탈북자들 속에서는 브로커 비용을 둘러싸고 소송과 협박이 끊이지 않고 있다.

    브로커들은 중국에서의 계약과 달리 한국 도착 후 약속했던 비용을 내지 않고 버티는 탈북자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고 주장하지만, 해당 탈북자들은 한국에서 삶이 지치고 힘들 때마다 '한국에 가면 얼마든지 잘살 수 있다'라고 환상을 심어줬던 브로커들에게 분노를 느낀다.

    북한에서 기자회견에 나선 재입북자들은 한결같이 "남조선 사회는 사람 못 살 생지옥이고 탈북자는 어디 가나 천대와 수모를 받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 대학을 졸업하고 중견 기업에 취직한 탈북청년 김재영 씨는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 중에는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라며 "제 발로 북한에 돌아간 사람들의 공통점은 한국 적응에 실패했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재입북자뿐 아니라 한국에서 살다가 유럽 등 제3국으로 건너가 위장망명을 신청하는 탈북자의 상당수도 한국 적응에 실패한 경우로 보인다.

    2010년 노르웨이에 난민 신청을 했다가 3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탈북자 김복희(가명) 씨는 "노르웨이에 간 젊은 탈북자 중에는 일하기 싫어하고 한국에서 적응에 실패해 도망친 경우도 많았다"고 전했다.

    김 씨는 노르웨이에서는 난민들이 의사소통이 가능해져 취직할 때까지 기초생계비를 준다며 "탈북자 남자애들은 (생계비에 의지해) 음주와 낚시질로 허송세월하고 모여서 싸움질만 하곤 했다"고 덧붙였다.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 적응에 실패한 원인에 대해서는 정부의 탈북자 지원정책 문제도 있겠지만 탈북자 본인의 의지에서 문제를 찾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탈북자 출신인 박건하 NK지식인연대 사무국장은 "우리 정부의 탈북자 지원정책에는 문제가 없다"라며 "한국 사람들도 다 아등바등 사는데 탈북자가 한국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외국으로 나가는 것은 본인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사회 적응에 실패하고 도망치다시피 제3국으로 이주하는 탈북자 중 상당수는 한국을 떠나기 전에 은행에서 불법 대출을 받거나 '자동차 깡' 수법으로 5천만 원에서 최고 1억 원까지 마련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은행 직원과 자동차 딜러들이 이들에게 불법대출과 자동차 깡을 알선해주고 20∼30%의 수수료를 챙기는 등 이미 제3국 행 탈북자를 대상으로 한 '시장'도 생겼다.

    이처럼 한국사회에 피해를 주고 떠난 탈북자들은 제3국에서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해도 한국으로 되돌아오지 못한다. 결국 이들은 한국에 돌아와 신용불량자가 되기보다는 또 다른 나라로 건너가 난민 신청하는 길을 택한다.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 대표는 "탈북자들은 영국에 갔다가 쫓겨나면 네덜란드에 가고 거기서 쫓겨나면 다시 캐나다로 가는 식으로 움직인다"라며 "그 과정에도 다 브로커들이 있어 다 연결해준다"고 말했다.

    한국을 떠나는 탈북자 중에는 적응에 실패한 사람도 있지만, 탈북자에 대한 한국사회의 편견이 싫어서 떠난 경우도 많다.

    3년간 한국에서 살다가 2008년께 영국에서 난민 인정을 받은 탈북자 이모 씨는 "한국에서 살 때는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이 친구들로부터 탈북자라고 따돌림받았지만 여기 영국에서는 학교 적응을 아주 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곳(영국)에서는 그릇 닦는 일을 해도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자녀의 사교육비 부담 때문에 한국을 떠나 영어권 선진국으로 향하는 탈북자도 적지 않다. 특히 영국이나 캐나다는 자녀들에게 돈 안 들이고 영어를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에 탈북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국가다.

    탈북자 김모 씨는 초등학교와 유치원 연령대의 두 자녀를 데리고 2011년 캐나다 토론토에 정착했다.

    김 씨는 "사교육 경쟁이 심한 한국에서 자녀를 대학까지 보낼 자신이 없었다"라며 "특히 영어를 못하면 취직도 어려운 한국에서 애들을 공부시킬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고 밝혔다.

    그는 "위장 망명이 잘못된 일임을 잘 알지만 자녀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비난도 감수할 수 있다"며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당당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