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정치자금 수수] 항소심서 징역 2년 선고받자 음모론 제기...민주당도 동참
  • ▲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가 16일 오후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가 16일 오후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에 대한 무죄는,
    [정치검찰]에 대한 단죄.

    이명박 정권과 [정치검찰]이 합작해서 만든
    [추악한 정치공작]에 대한 단죄라고 생각한다."

       - 2011년 10월 31일, 한명숙 전 총리.
          불법정치자금 9억원 수수의혹 사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직후.


    이것은 [정치적 판결]이다.
    이 재판을 기획한 MB정권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
    박근혜 정권에서 유죄로 뒤집혔다.
    새로운 증거도 없는데 검찰 주장만 120% 받아줬다.

       - 2013년 9월 16일, 한명숙 전 총리.
          불법정치자금 9억원 수수 의혹 사건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의 유죄판결을 받은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는,
    퇴임 직후 두 건의 송사에 휘말렸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받은 판결 선고만 모두 다섯 번.
    그녀는 앞선 네 번의 판결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5억원 뇌물수수 사건]은 1심부터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모두 무죄를 주장한 그녀의 손을 들어줬다.

    기업인으로부터 9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또 다른 재판에서도
    1심 법원은 그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판결을 받을 때마다
    그녀는
    [청렴]을 상징하는 백합을 손에 쥐고
    기자들 앞에 섰다.

    그러나 다섯 번째 판결은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9억원 불법정치자금 수수 사건] 항소심 판결이 있었던 2013년 9월 16일.
    서울고법 형사6부(정형식 부장판사)는
    피고석에 선 그녀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그녀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8억8,302만원을 선고했다.

    그녀는 크게 당황했다.
    이날만은 백합도 빛을 잃었다.

    그녀를 [정치적 어머니]로 따르던 원내 제1야당은 당혹스러워했고,
    그녀를 지지하는 한 인터넷 언론은,
    [충격과 공포]
    라는 단어를 쓰며
    판결 결과를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제1야당은 항소심 판결을 [정치공작]으로,
    그녀를 기소한 검찰을 [정치검찰]로 단정 지었다.

    그녀를 구하기 위한 당내 특별 기구까지 등장했다.

    <정치공작분쇄 및 정치검찰 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라는 긴 이름을 단 대책 기구는
    항소심 판결을
    [검찰과 법원이 각본에 따라 짜 맞춘 정치적 판결]
    로 정의했다.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를 지낸 변호사 출신 국회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마치 판결의 배후가 따로 있는 것처럼
    묘한 여운을 남기는 댓글을 올렸다.

  • ▲ 문재인 의원이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항소심 판결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 트위터 화면 캡처
    ▲ 문재인 의원이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항소심 판결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 트위터 화면 캡처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주 초,
    대한민국의 시계는 적어도 삼사십년을 거꾸로 돌아간 듯 했다.

    [사법부가 권력의 시녀가 됐다]는 식의 주장이 민주당사 주변에서 터져 나왔다.

    [정치공작 분쇄], [짜 맞추기 판결]과 같은,
    박제(剝製)가 된 박물관 유물에나 쓰일 법한 문구들이 서울 여의도 주변을 맴돌았다.

    심지어 [재판을 기획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기상천외한 [음모론]까지 나왔다.

    이들은
    한 나라의 사법부를
    최고권력자의 눈치를 보며, 통치자가 원하는 대로 판결을 선고하는
    꼭두각시로 만들었다.

    불과 2년 전,
    같은 사건 1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사법부를 향해
    [경의]를 표했던 전직 총리와 제1야당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 ▲ 9억원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 항소심 판결 직후, 한명숙 전 총리가 트위터에 올린 글.ⓒ 트위터 화면 캡처
    ▲ 9억원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 항소심 판결 직후, 한명숙 전 총리가 트위터에 올린 글.ⓒ 트위터 화면 캡처

    위 내용은
    지난 한 주 서울 여의도 정가와 서초동 법조타운 주변을 떠들썩하게 만든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민주당이 보인 반응을 정리한 것이다.

    [9억원 불법 정치자금 수수] 항소심 판결에 대해
    한명숙 전 총리와 민주당이 보인 반응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그들이 얼마나 당황했는지는
    “MB정권이 재판을 기획했다”
    한명숙 전 총리의 글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전직 국무총리가 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발언을
    여과 없이 내뱉을 정도로 한명숙 전 총리와 민주당은 동요했다.

    한명숙 전 총리와 민주당을 공황상태로 몰아넣은 것은
    16일 열린 서울고법 판결이었다.

    서울고법 민사항소 6부는
    이날 열린 [9억원 불법정치자금 수수 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한명숙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깨고,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 사건에 대한 검찰의 공소내용은 간단하다.

    한명숙 전 총리가
    2007년 3월부터 9월 사이
    여러 차례에 걸쳐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에게 9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검찰은
    금품을 받은 시기가 총리에서 물러난 직후였고,
    대통령 후보 경선을 앞둔 시점이라는 점에서
    한명숙 전 총리가 기업인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한명숙 전 총리에게 실형을 선고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피고인(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금품 수수 당시 지위와
    수수의 명목-규모 등에 비춰
    죄질이 무겁다.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받은 금원을
    일부 개인적으로 사용했고,

    비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등
    책임을 통감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아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항소심 재판부는
    한만호 전 대표의 검찰 진술에 대해
    [신빙성]
    이 있다고 판시했다.

    한만호 전 대표의 진술에 일관성과 신빙성이 없다고 본
    1심 재판부와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린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총리 재임 당시 피고인이 한만호 전 대표를 공관으로 초대해
    함께 만찬을 할 정도로 친분이 있었고,
    돈이 오간 뒤 통화를 한 기록이 있는 점도 유죄의 근거로 제시했다.

    한명숙 전 총리가 돈을 받은 이듬해
    한씨에게 2억원을 돌려 준 점,
    한만호 전 대표가 발행한 수표를
    한명숙 전 총리의 동생이 전세자금으로 사용한 점도 [신빙성]있는 증거로 인정했다.
    이어 재판부는 한만호 전 대표의 교도소 접견기록도 유죄판결의 근거로 봤다.

    2억원을 전달한 직후
    한만호 전 대표가 한 전 총리와 통화했다는 사실은
    2억원을 반환한 주체가
    한 전 총리라는 강력한 정황자료.

    교도소 접견 기록을 보면
    한 전 대표가
    한 전 총리의 비서를 통해

    3억원의 반환을 추가로 요구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1심 재판부가 무죄의 이유로 본
    [돈을 전달한 장소]에 대해서도 항소심 재판부는 다른 판단을 내렸다.

    대로변에서 돈을 전달했다고 해도
    한명숙 전 총리가 차에서 내리지 않은 상황에서
    한만호 전 대표가 돈 가방을 차 안으로 넣어준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1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결정적 근거인
    한만호 전 대표의 진술 번복에 대해서도
    항소심 재판부는 다른 입장을 취했다.

    한 씨가 공판 과정에서 진술을 번복했더라도
    검찰 진술의 [신빙성]을 담보할 자료가 적지 않아,
    한 전 총리가 9억여 원을 받았다는 공소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이날 항소심 재판부가 유죄의 근거로 제시한 내용들은 
    모두 1심 재판 당시 나온 증거를 바탕으로 했다.

    1심 재판부는
    한만호 전 대표가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한 사실에 주목해,
    한명숙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한만호 전 대표의 진술에 일관성과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증거의 [증명력]도 부정했다.

    9억원의 환전내역이나 금융자료,
    휴대전화 통화내역 등의 자료도
    유죄 판단의 증거로 보기엔 부족하다.

    두 사람이 거액의 정치자금을 주고받을 만한 친분이 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

       - 2011년 10월 31일.
          [9억원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 1심 판결 이유 중 일부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1심 법원이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한 증거들에 대해 [증명력]을 인정했다.

    결국 이 사건에서
    1심과 항소심 재판부가 전혀 다른 판결을 한 근본적인 원인은
    [증거의 증명력] 여부에 대한 판단의 차이에 있다.

    같은 증거나 진술에 대해
    [증명력]을 인정할 것인가의 여부는
    전적으로 [법관의 자유재량]에 속한다.
    이것을 [자유심증주의]라 한다.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 - 형사소송법 308조


    [자유심증주의] 아래서 증거를 사실이라고 믿을지 여부,
    증거에 의해 범죄사실을 인정할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법관의 몫이다.

    [실체적 진실 발견]을 목적으로 하는 형사소송법의 이념에 비춰 볼 때,
    법률이 [자유심증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런 논리의 귀결이다.

    다만,
    증거에 대한 법관의 판단은 경험칙과 논리법칙에 부합해야만 한다.

    만약 증거 혹은 진술에 대한 법관(재판부)의 판단이
    경험칙이나 논리법칙에 맞지 않는다면,
    [사실을 오인]
    한 것이 돼 [항소이유]가 된다.

    즉, 증거에 대한 법관의 판단에 이의가 있다면
    상소로 다툴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
    이것이 [삼심제도]이다.

    1심 재판부가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은 증거에 대해
    [증명력]을 인정한 항소심 판결은 [자유심증주의]에 바탕을 둔 결과다.

    증거의 [증명력]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을 인정할 수 없다면
    대법원에 상고를 할 일이지,
    [기획 재판], [정치적 판결] 등의 근거 없는 비난을 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발언의 당사자가
    여성부 장관과 환경부 장관,
    전직 국무총리를 지낸 현역 국회의원이라면 더욱 그렇다.

    2년 전 한명숙 전 총리는
    자신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 결과에
    “정치검찰에 대한 단죄”
    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런데 자신에게 유죄를 선고한 재판부에 대해서는
    [기획 재판], [정치적 판결]이란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남이 하면 불륜이요,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아전인수]
    식 태도와 다를 것이 없다.

    한 때
    대통령을 대신해 행정부를 통솔했던 전직 국무총리가
    대한민국 사법부를 욕보이는 것도 모자라,
    근거도 없는 [음모론]을 앞세우는 모습은 안타깝다 못해 안쓰럽다.

    제1야당이란 민주당의 반응 역시 공당이 보일 태도는 아니다.

    마치 항소심 판결에 석연치 않은 배후라도 있는 것처럼
    의혹을 제기한 문재인 의원의 행태 또한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
    법치의 근간인 [자유심증주의] [삼심제도]를 모를 리 없다.

    민주당문재인 의원이
    등 돌린 민심을 다시 얻으려면 
    한명숙 총리에 대한 맹목적인 보호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공직자로서 물의를 끼친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과 관련해
    국민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이 먼저다.

    <정치공작 분쇄를 위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에 앞서,
    근거 없는 [음모론]으로 상처받은 법관들에게 사과를 표하는 것이 순리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렸다는 이유로
    온갖 [음모론]을 내세우는 행태는,
    국민들이 [전직 국무총리]와 [대통령 후보], [제1야당]에 바라는 모습이 결코 아니다.

    [사법부를 정치의 시녀로 만들려는 이들]은
    [음모론] 속 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자신들이란 사실을,
    한명숙 전 총리와 민주당은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