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임명동의 절차 지연될수록, 한명숙 상고심 선고 늦어져
  • ▲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가 2013년 9월 16일 오후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가 2013년 9월 16일 오후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야당의 인사청문회 거부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대법관 공백에 따른 상고심 재판 차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법관 한 명이 하루 평균 담당하는 재판 건수는 하루 평균 8건 이상. 지난달 17일 신영철 전 대법관이 퇴임한 이후, 지금까지 24일째 신임 대법관 임명이 늦어지면서, 남은 대법관의 업무부담은 그만큼 늘어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달 23일께부터 신임 대법관이 맡아야 할 사건을 나머지 11명의 대법관에게 나눠서 배당하고 있다.

    신영철 전 대법관이 몸담았던 대법원2부의 경우, 기존 이상훈·김창석·조희대 대법관이 배당 사건을 나눠 맡고 있지만, 대법관 4명의 합의가 필요한 사건은 처리가 지연될 수밖에 없다.

    박상옥 후보자에 대한 야당의 인사청문회 거부와 이에 따른 국회 파행이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면서, 대법원장이 국회의장에게 친서를 보내는 일까지 벌어졌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3일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박상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개최를 요청하는 친서를 보냈다.

    양 대법원장은 친서에서 대법관 공백이 장가화되면,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협조를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장이 국회의장에게 인사청문회 개최를 요청하는 친서를 전달한 것은, 법원 안에서도 찬반 논란을 일으킬 만큼 이례적인 사건이다.

    역설적으로 이런 사실은 대법원이 그만큼 현재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야당이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서, 새로운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야당의 인사청문회 거부 이면에, 새정치민주연합 한명숙 의원에 대한 대법원 상고심 재판을 고의로 지연시키기 위한 의도가 담겨있다는 분석이 그것이다.

    이런 분석은 한명숙 의원에 대한 상고심 재판을 대법원 2부가 맡고 있다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앞서 한명숙 의원은 지난 2013년 9월 17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정치자금법 위반 항소심 재판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다만 재판부(서울고법 형사6부)는 한명숙 의원이 현역의원이라는 점을 고려해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한명숙 의원은 국무총리 재임 시절 한만호(55)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9억여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2010년 7월 기소됐다.

    당시 검찰은 한명숙 의원이 2007년 3~8월 한만호 전 대표로부터 대통령 후보 당내 경선비용 지원 명목으로 32만7,500여 달러와 현금 4억8,000여만원, 1억원짜리 자기앞수표 1장 등 9억 4,000여만원을 받은 것으로 보고,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1심 법원은 한만호 전 대표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조사에서의 한명숙 의원 진술을 원심 재판부가 살피지 않은 것은 위법하다는 취지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한명숙 의원에 대한 상고심 선고는 서울고법의 항소심 절차가 마무리된 지 1년 6개월이 다 되도록 나오지 않고 있다.

    한명숙 의원에 대한 상고심 선고가 지연되면서, 대법관들이 야당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나오기도 했다.

    ‘교육과 학교를 위한 학부모연합’(이하 교학연)은 지난 1월 1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명숙 의원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 지연을 강하게 비판했다.

    교학연 관계자는 “한명숙 의원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 2013년 9월 나왔는데 아직까지 상고심 선고기일이 잡히지 않았다”며, 사법부가 야당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면 조속히 사건을 매듭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당이 한명숙 의원을 구하기 위해 대법관 인사청문회를 악용하고 있다는 비판은 법조계 안팎에서도 나오고 있다.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자체를 거부한 사례가 없는데다가, 야당이 인사청문회를  거부하면서 내세우고 있는 이유도 석연치 않기 때문이다.

    야당은 박상옥 후보자가 초임 검사 시절,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수사한 부서에 소속돼 있었다는 이유를 인사청문회 거부의 주된 이유로 들고 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은 당시 서울지검 형사2부가 맡고 있었으며, 박상옥 후보자는 당시 임관한지 3년밖에 안 된 말석검사로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공동대표 이헌·정주교, 이하 시변)은 “임관한 지 3년차인 말석검사가 당시 시국을 좌지우지하던 관계기관 대책회의라는 거악에 저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는 인사청문회 거부사유가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시변’은 “굳이 당시 수사 책임을 묻고 싶다면, 인사청문회를 열어 박 후보자 본인에게 따지면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시변’은 박 후보자가 참여정부 시절, 새정치민주연합 현 대표인 문재인 의원이 수석비서관으로 있던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검증을 거쳐 홍조근정훈장을 수훈 받은 사실도 있다며, 야당의 박 후보자 비판은 정치적 목적에 따른 흠집내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2부에는 한명숙 의원 사건 외에도,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횡령 배임 사건, ‘유서 대필 사건’ 당사자 강기훈 씨가 제기한 재심 사건 등이 계류돼 있다.

    법원 주변에서는 신임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의 임명 동의 절차가 늦어질수록 남아있는 대법관들의 부담이 늘어나, 대법원의 재판 운영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