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곳서 투표지 부족 … 초기 발표 대비 2배투표 중단에 개표 방송 중 투표 … 사상 초유"부정 막으려 인쇄 축소" 황당한 선관위 행정나경원 "국가 시스템 붕괴 … 선관위 해체하라"
  • ▲ 6.3 지방선거 송파구 개표소 집회가 11일째 이어진 지난 12일 시민들이 당일 현장 수개표를 요구하며 집회를 이어가는 모습. ⓒ정상윤 기자
    ▲ 6.3 지방선거 송파구 개표소 집회가 11일째 이어진 지난 12일 시민들이 당일 현장 수개표를 요구하며 집회를 이어가는 모습. ⓒ정상윤 기자
    6·3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이후 선거관리위원회를 둘러싼 불신이 거세다. 투표지 부족 사태를 통해 다양한 부실 사례가 추가로 발견되면서 정치권에서는 선관위를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이에 발맞춰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선관위 해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70%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 참정권을 지키지 못하는 무능한 국가 기관은 새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민심으로 풀이된다.

    13일 뉴데일리가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웰'에 의뢰해 지난 10~11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선관위를 해체해야 한다'는 응답은 70.4%로 집계됐다. '반대'는 17.7%,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12.0%다. (무선전화 100% 자동응답(ARS)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응답률은 2.7%,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선관위 해체론이 힘을 얻은 배경에는 '투표지 부족'을 넘어 연쇄적인 관리 부실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선거 준비 단계의 판단 오류부터 현장 대응 실패, 개표 검증 허점, 증거 관리 논란까지 이어지면서 선관위를 향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투표지 부족 사태는 선관위의 초기 설명보다 훨씬 광범위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선관위는 처음에는 50곳으로 파악했지만 추가 조사 결과 실제 추가 송부된 투표지를 사용한 투표소는 91곳에 달했다.

    선관위는 본투표날인 지난 3일 투표지 부족 우려가 제기된 전국 140개 투표소에 추가 물량을 공급했다. 이 가운데 실제 추가 송부된 투표지를 사용한 곳이 91곳이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42곳으로 가장 많았다. 이 가운데 송파구에서만 20곳이 확인됐다. 이어 경기 23곳, 인천 11곳, 대구 4곳, 부산 3곳, 울산·경남·전남 각 2곳, 충북·전북 각 1곳 순이다.

    실제 투표지를 추가로 공급받은 91개 투표소 가운데 26곳에서는 투표가 일시 중단됐다가 재개됐다. 서울에서는 송파·강남·광진·서초 지역 투표소에서 투표가 멈췄으며 부산·대구·인천·경기에서도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일부 유권자는 대기표를 받은 뒤 투표소 밖에서 장시간 대기하다가 투표에 참여했다. 서울 송파구 일부 투표소에서는 출구조사 결과 발표 중에도 투표가 이어졌다. 선거 종료 시점과 개표 절차가 뒤섞이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선거 당일 벌어진 혼란은 준비 단계에서부터 예고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선관위가 본투표용 투표지 최소 인쇄 기준을 유권자 수의 60%에서 50%로 낮춘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위철환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직무대행은 지난 11일 입장문에서 "선관위는 본투표 용지 인쇄 비율의 최하한을 50%로 하향하여 조정하되 지역 사정과 특성을 고려해 각 255개 구·시·군선관위의 결정으로 투표지 인쇄 비율을 결정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잔여 투표지 관리 부담과 부정선거 의혹 제기를 이유로 최소 인쇄 기준을 낮췄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기준 변경 과정 자체도 석연치 않다는 점이다. 투표지 부족 사례가 가장 많이 발생한 서울 송파구를 관할하는 송파구선관위는 선거를 한 달여 앞둔 지난 4월 28일 본투표지 인쇄 물량을 유권자 수의 50% 수준으로 정하는 안건을 '서면 의결'로 결정했다.
  • ▲ 6.3 지방선거 투표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재선거를 주장하는 시민들이 지난 5일 잠실7동 제2투표소 개표가 마무리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재선거를 주장하며 구호를 외치는 장면. ⓒ정상윤 기자
    ▲ 6.3 지방선거 투표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재선거를 주장하는 시민들이 지난 5일 잠실7동 제2투표소 개표가 마무리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재선거를 주장하며 구호를 외치는 장면. ⓒ정상윤 기자
    조현욱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투표지 부족 사태 진상규명위원장은 같은 날 선관위 과천청사에서 열린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에게 "송파구 선관위는 투표지 인쇄 매수 축소 비율을 50%로 선관위 의결로 결정했다"며 "가산하는 무번호 투표지 2000매를 축소 비율에 포함하지 않더라도 그 인쇄 매수 축소 비율이 50%에 미달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지역별 편차도 적지 않았다. 선관위가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투표지 부족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본투표 당일 준비된 투표지는 광주·세종에서는 유권자 대비 50%, 강원은 66% 수준의 투표지를 각각 인쇄했다. 수도권은 서울과 경기 58%, 인천 53%로 집계됐다.

    현장 대응 체계를 둘러싼 비판도 이어졌다. 진상규명위원회 조사 결과 투표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이후에도 선관위 내부의 보고·지휘 체계는 사실상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송파구 선관위 직원들은 무번호 투표지에 일련번호를 부여하고 이를 각 투표소에 직접 배송하는 업무에 총동원되면서 상급기관에 상황을 제때 보고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선관위와 중앙선관위의 현장 지휘권도 발동되지 않아 체계적인 대응이 이뤄지지 않았다.

    혼선은 무번호 투표지 처리 과정에서도 이어졌다. 관련 규정이 미비한 데다 평소 사용하지 않던 일련번호 부여 장비의 사용법을 익히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현장에서 직접 번호를 기재하는 방식까지 동원된 것으로 파악됐다. 

    조 위원장은 전날 선관위 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에서 "총체적 부실"이라며 "상급위원회의 현장 지휘권이 전혀 발동하지 못했고 신속한 보고 체계도 갖춰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투표 종료 이후에는 증거 관리 부실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서울동부지법은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던 김정철 개혁신당 최고위원이 제기한 투표지 보관상자 등에 대한 증거 보전 신청을 지난 9일 일부 받아들였다. 

    그러나 법원이 다음 날 잠실7동 제2투표소를 현장 검증했을 당시 증거 보전 대상이었던 투표지 보관상자 등은 이미 현장에서 치워진 상태였다. 결국 법원은 별다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선관위는 증거 인멸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증거 보전 신청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보관 의무가 없는 물품을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폐기했다고 했다. 투표지 보관상자도 용지를 처음 배부할 때만 사용하는 일회성 박스로 관행적으로 자체 폐기해왔다는 것이다.

    개표와 명부 관리에서도 허점이 드러났다. 경기교육감 선거에서는 개표 시스템 입력 오류가, 전북교육감 선거에서는 1104표 누락 사고가 확인됐다. 충북 청주에서는 선거인명부 일부가 누락돼 선관위가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투표지 부족을 시작으로 선거 관리 부실 사례가 잇따라 확인되자 서울 송파구 일대에서는 선거 당일부터 '재선거'와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집회가 계속되고 있다. 

    정치권도 선관위 개혁 필요성에는 공감대를 넓히고 있다. 국민의힘은 특검과 국정조사를, 개혁신당은 선거 절차 전반에 대한 검증을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선거제도 개혁 태스크포스(TF) 첫 회의를 열고 헌법 개정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과 허철훈 사무총장이 사의를 표명했지만 인적 교체만으로 신뢰 회복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6·3 지방선거는 단순한 관리 부실을 넘어서는 불공정이었고 국가 시스템의 붕괴였다"며 "선관위를 해체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공정한 새로운 '선거 거버넌스'로 전면 재구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한 해체 수준의 근본적인 개혁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공정하게 선거 관리를 해야 할 선관위가 이 상황에 이른 배경 중 하나는 '텅 빈 컨트롤타워'가 지목된다. 선거 관리의 최종 책임자들이 본업을 따로 둔 채 회의 때만 모이는 합의체로 운영되다 보니 현장 관리가 안 되고 사후 대응도 엉망인 행정 참사를 키웠다는 것이다.

    실례로 총 9명의 중앙선관위원 중 선거 업무를 전담하는 상임위원은 단 1명뿐이다. 지난 8일 지명 해제된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을 포함해 8명의 위원은 모두 비상임이다.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호선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중앙선관위는 대법관이, 시도 선관위는 지방법원장이, 시군구 선관위는 지법 부장판사가 위원장직을 겸하는 것이 관례처럼 돼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법관이 각급 선거관리위원장을 겸하는 관행을 깨야 선관위의 총체적 부실을 막을 수 있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외국에서도 선거관리기구 수장을 상근직으로 두거나 위원장 자격을 법관으로 한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캐나다와 뉴질랜드는 최고선거관리관이 상근하며 조직 운영을 총괄하고 인도는 선관위원 모두 상근 체제로 운영된다.

    앞서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1호 법안'으로 선관위에 대한 감사원 직무 감찰, 선거철 휴가 제한, 선관위원 전원 상근직 전환 등을 담은 이른바 '선관위 개혁법'을 예고했다. 

    이번 투표지 부족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선관위 직원 선거철 휴가 남용도 도마 위에 올랐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이 선관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방선거 한 달 전인 지난 5월 기준 선관위 휴직자는 181명으로, 선관위 정원 3034명의 약 6%다. 지난해 12월 말 148명과 비교하면 5개월 새 22% 늘었다. 이번 6·3 지방선거 투표지 부족 사태 당시에도 직원 179명이 휴직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선거가 없었던 2021년 2월 선관위 휴직자는 84명이었지만 대선과 지방선거가 겹쳤던 2022년 6월에는 226명으로 두 배 이상 뛰었다.

    앞서 선관위는 외부 기관으로부터 직무 감사를 받는 내용의 법안 개정안이 발의됐을 때 '위헌 논란'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밝혀 왔다. 헌법상 독립기관으로서 감사원 직무감찰이 헌법적 책무 수행을 제한할 수 있고 선거 과정에 감사원이 관여하면 국민적 신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감시 사각지대의 무소불위 권력 기관이 된 선관위는 오늘날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참정권 침해라는 참사를 낳았다. 

    한편 기사에 언급된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