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투표도 못 했다"…거리로 나온 청년 세대"선거 결과 아닌 절차의 문제"…참정권 침해·선관위 책임론 제기전국 18개 대학 시국선언 동참…"빼앗긴 한 표, 민주주의 훼손""청년세대 특유의 문제의식 표출…공정성 요구 의미 있어"
  • ▲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현장. ⓒ정상윤 기자
    ▲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현장. ⓒ정상윤 기자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따른 절차적 공정성 훼손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2030 청년 세대가 거리로 나서고 있다. 청년들은 잠실 개표소 앞 시위와 전국 대학가 시국선언을 통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개혁과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특정 정치세력의 주장보다 참정권 침해와 선거 절차의 공정성 문제를 앞세우며 거리로 나왔다. 취업난과 주거 불안, 계층 이동의 어려움 등 사회·경제적 부담을 겪는 상황에서도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참정권만큼은 보장될 것이라고 믿어왔는데, 투표용지 부족으로 일부 유권자가 투표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강한 상실감과 분노를 느낀 것이다.

    현장에서 직접 만난 2030들의 목소리는 이들의 분노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들은 단순히 선거관리위원회의 얼빠진 업무 처리에 분노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체감한 불공정한 '기성 사회 시스템'에 진저리가 났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 역시 청년들의 집단적 분노가 단순히 투표용지 부족 사태 자체보다 사회 전반에 누적돼 있던 불안과 박탈감이 표출된 결과라고 분석한다. 정치권이 그동안 청년 세대의 목소리에 충분히 응답하지 못했다는 인식이 누적된 상황에서 이번 사태가 불만을 분출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 ▲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현장. ⓒ정상윤 기자
    ▲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현장. ⓒ정상윤 기자
    ◆ "선거 결과보다 절차가 문제" … 참정권 침해에 분노한 청년들

    현장에 참가한 청년들은 선관위의 행정 부실과 무책임한 대처를 강하게 비판했다.

    시위 현장에서 만난 청년들은 선거 결과 자체보다 국민이 정상적으로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점에 주목하며 선관위의 책임 있는 해명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현장에서는 직장 생활이나 학업을 병행하면서도 퇴근 후 또는 주말마다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는 청년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일부는 자발적으로 물품 배부와 질서 유지에 나서는 등 농성 지원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었다.

    시위에 참가한 20대 김모씨는 "처음에는 증거가 명확하지 않아 단순 부실선거라 굳게 믿었지만 전국 91곳에 달하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선관위의 변명을 보며 화가 나 거리로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30대 직장인 이모씨도 "일을 병행하면서도 현장을 지키는 이유는 이것이 좌우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라며 "국민 참정권을 앗아간 행위인 만큼 여러 정치인들 역시 시민과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30대 직장인 박모씨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에게 표를 온전히 배분하지 않은 사태가 과연 정상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며 "선관위에 대한 특검과 해체 수준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 ▲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현장. ⓒ정상윤 기자
    ▲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현장. ⓒ정상윤 기자
    ◆ "정쟁 아닌 참정권 문제" … 정치색 경계하는 청년들

    다만 집회가 장기화하면서 후원금을 노리는 유튜버 등 외부 세력 유입을 우려하는 청년들의 목소리도 나온다. 현장에선 시위의 목적과 방식을 두고 참가자들 간 갈등을 빚기도 했다.

    집회 구호에도 변화가 있었다. 지난 주말에는 '재선거' 구호가 주를 이뤘으나, 지난 8일에는 '재선거'와 '부정선거·재선거'가 혼재하는 양상을 보였다. 지난 9일부터는 '부정선거·재선거', '당일 투표·수개표' 구호가 반복적으로 울려 퍼지며 사실상 통일된 분위기를 보였다.

    지난 10일 오후에는 경기장 2-4 게이트 인근에서 한 여성 참가자를 중심으로 일부 참가자들이 '서부지법 청년 석방' 등 선거 사태와 무관한 피켓을 들고 발언을 이어가자 일부 2030 참가자들이 반발하기도 했다.

    한 30대 참가자는 "참정권 회복을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자리인데 성조기 등 이번 사태와 무관한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또 다른 30대 백모씨는 "청년들 주도하에 자원봉사도 하고 있는데 저런 문구들이 나오면 반발이 생길 수밖에 없어 제지해야 한다"며 "6·3 선거와 관련해 일어난 일인 만큼 다른 사람에 대한 언급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현장. ⓒ정상윤 기자
    ▲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현장. ⓒ정상윤 기자
    ◆ 대학가 18곳 시국선언 동참 … "빼앗긴 한 표의 문제"

    청년들의 참정권 수호 요구는 대학가의 집단행동으로도 번졌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대와 연세대를 비롯한 전국 주요 대학 총학생회는 각 캠퍼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규탄 시국선언을 열었다.

    학생들은 선거 결과의 유불리를 떠나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참정권 보장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따져야 한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이번 시국선언에는 서울대·연세대·성균관대·숙명여대·숭실대 등 전국 18개 대학 총학생회가 참여했다. 참가 학생들은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중앙선관위 구조 개혁 등을 촉구했다.

    연세대 철학과에 재학 중인 20대 학생은 "1987년 시민과 학생 등 선배들이 거리에서 외치며 쌓아 올린 국민의 권리가 2026년에 다시 무너졌다"며 "훼손된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선거관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쇄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세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20대 학생도 "이번 사태는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주권의 문제이자 상식의 문제"라며 "어렵게 마련된 청년들의 자리를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말고 명확한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 ▲ 지난  1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캠퍼스에서 열린 '6·3 지방선거 규탄 시국선언' 현장. ⓒ이기륭 기자
    ▲ 지난 1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캠퍼스에서 열린 '6·3 지방선거 규탄 시국선언' 현장. ⓒ이기륭 기자
    ◆ "청년 세대의 문제의식 표출 … 참정권 침해에 자연스러운 반응"

    전문가는 이번 사태를 청년 세대 특유의 문제의식이 표출된 현상으로 해석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청년 세대는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문제를 제기하고 가장 오래 행동에 나서는 경향을 보여왔다"며 "이번 사태 역시 2030 세대가 투표를 하지 못하게 된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법적·제도적 절차를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청년 세대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참정권 보장과 절차적 공정성에 대한 요구라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재선거 요구나 부정선거 의혹 제기와는 별개로 투표권 행사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들여다보려는 움직임 자체는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2030세대는 이전 세대와 비교해 훨씬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랐지만 내 집 마련은커녕 결혼과 출산조차 꿈꾸기 어려운 현실을 마주했다"며 "이런 경험 탓에 이들에게는 어쩌다 한 번 찾아오는 기회가 소중한데 원칙이 흔들리는 순간 이들은 간신히 붙잡고 있던 기회의 사다리가 휘청거린다고 받아들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들은 공정한 기회를 가로챈 조국 일가에게 분노했고 부동산 정책 실패와 채용과 입시에서 드러난 갖가지 특권과 반칙에 분노했다"면서 "지금은 참정권조차 제대로 보장하지 못한 선관위에 분노하고 있다. 이 분노는 특정 정파에 대한 호불호보다는 '적어도 기회는 공정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바람을 분출하는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