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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는
사회민주주의 이념일 뿐한정석 편집위원
정치권이 경제민주화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6월 26일
국회 정무위는 <대기업 계열사 일감몰아주기방지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에 의하면,
30% 이상의 지분을 가진 대기업 주주는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가 편법승계용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한마디로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식이다.
<금산분리강화법>안의 경우,
산업자본의 금융회사 지분율을 9%에서 4%로 축소조정하는 쪽으로 결정됐다.
아울러 제2금융권 마저 대주주자격 요건을 강화해
8촌 혈족 내에 경제사범이 없어야 한다는 [신연좌제]안이 마련됐다.재벌 규제를 위한 경제민주화
정치권이 이렇듯 과도한 기업규제법안을 양산하는 이유는
한결 같이 재벌 대기업에 대한 징벌이 목적인 것으로 파악된다.그렇다면 [경제민주화법]이라는 이름은
사실상 [재벌규제법]이라고 부르는 것이 혼란이 없을 것이다.
[경제민주화]라는 개념은
지난 대선 때 김종인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이 제시했다.
당시 여권과 재계 등은
이 [경제민주화]에 대한 개념 정의를 김 전 위원에게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그는 항상 모호하거나 침묵의 태도를 보였다.
그렇기에 [경제민주화]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른 양상을 띠게 됐다.
[경제민주화]는 영미권 경제학계에서는 거의 발견하기 어려운 개념이다.왜냐하면 [경제민주화]는
19세기 초 독일 <사회민주당>(SPD)의 핵심강령이었기 때문인데,
독일어로는 [Demokratisierung(민주화) der Wirtchaft(산업경제)]였다.
[데모크라티지훙 데 비르트차프트]라고 읽는다.
독일의 [경제민주화]는
20세기 초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고 그 이념가들과 경쟁했던
번슈타인(E. Bernstein)과 나프탈리(F. Naphtali) 등과 같은 학자들이
최초로 주창한 [사회민주주의]의 핵심 요체였다.
즉,
자본주의는 대기업의 독재를 초래하고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초래한다는 생각으로 인해,
모든 독재에 반대하는 이념이
바로 사회민주주의였고,
그 실천 방법이
[경제민주화] 즉 [데모크라티지훙 데 비르트차프트]였던 것이다.
<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을 역임한 민경국 강원대 교수(경제학·독일 프라이부르그대)는
독일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바로 [사유재산의 사회화]에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기업은 노동자들이 자치적으로 경영하는 형태가 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독일 사민당의 [경제민주화]는 이후 퇴조를 거듭해서,
지금은 당강령에 선언적 의미만을 가지고 있다.이렇게 된 배경에는,
패전 독일을 [라인강의 기적]으로 이끈
<기민당> 에르하르트 총리와 발터 오이켄이 채택한,
또 다른 경제이념 때문이었다.그것은 [Liberaliseirung der Wirtchaft](경제 자유화)라는 [질서 자유주의]였다.
흔히 [오르도 리베럴리즘](Ordo Liberalism)이라고 부른다.
독일에서 공부한 김종인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은
독일의 <사회민주주의당>이 강령으로 선택한 [경제민주화]의 개념을
차마 자기 입으로 밝히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대신 그는 이를 비판하는 이들에 대해
“절제 없는 시장경제를 맹신하는 사람은 정서적 불구자”라고 언론에 말한 바 있다.
그의 이 말은
다름 아닌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이 한 말이다.
그런 <새뮤얼슨>은,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사회주의가 망하기 3개월 전에도
소련식 계획경제도 마찰 없이 아주 잘 번영한다고 주장한,
비현실적 인식의 이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 헌법 119조가 말하는 [경제민주화]도 그런 개념일 것인가?이 부분에 대해서는 매우 색다른 견해가 있다.
1987년 민주화운동은,
경제에 있어서도 민주화를 요구했다.
6공화국은 이에 노동계와 산업계로부터 [경제민주화]에 대한 의견 청취에 나섰고
당시에 제시된 [경제민주화]는
정부주도의 [관치경제]에서 [민간경제]로의 이행이라는 해석이 우세했다.
그랬기에,
1987년 <경향신문>은
<경제민주화의 첫걸음>이라는 기사에서
공기업 민영화의 [국민주] 방식을 [경제민주화]의 방안으로 제시하며
[정부의 간섭 없는 경제운용이 경제민주화의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겨레신문도 비슷한 시기에
한국은행의 독립을 [경제민주화]의 의미로 해석하는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원래 의미는 정부 간섭 없애는 것
당시 국회 법사위에서
[87체제 헌법개정]을 주도했던 현경대 전 의원 역시
“[경제민주화]는 관치에서 민간으로의 경제 운용”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여기에는 노·사간의 자율적인 협상도 경제민주화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87년 헌법 119조 2항이
[경제주체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표명하고 있다는 점으로부터
다시 한번 드러난다.
즉 경제의 주체인 [기업-가계-정부]가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경제활동을 추구한다는 의미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이나 가계가
정부에 세금을 낮출 것을 요구하거나 규제를 해소해 달라는 요구도
[경제민주화] 차원에서 정당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러한 헌법의 [경제민주화]는
결코 당시 재벌기업에 대한 규제를 목표로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현재의 [경제민주화]는
재벌 대기업에 대한 규제 일변도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왜 지금 재벌기업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른 것일까.
이 의문은
우리 사회가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 하에서
사회 전체에 [사회주의 경향]이 확산돼 왔던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 김대중 정부가 추진했던 노사정위원회는
사실 독일과 북유럽 국가들이 추진했던 [코포라티즘]이라는 협동주의의 산물이었다.
그것이 다름 아닌 독일 [사민주의] 정책이 추구했던 제도였던 것.하지만 독일의 <노사정위원회>는
[사회적 영성]을 통한 현실참여를 추구해 왔던 교회들의 초월적 질서가
갈등을 통합하는 역할을 해왔다.
독일 사회는
그러한 교회들의 위상을 인정하는 관습에 따라
교회에 세금을 걷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출석교인들이 교회에 자기 소득의 1/10을
세금으로 납부하는 <교회세> 제도를 갖게 됐다.
이러한 독일의 교회들은,
2003년 독일 <사민당>이
침체에 빠진 독일경제를 일으키고자 제시한
자유주의 경제개혁 <아젠다 2010 노사정 협약>에 완강하게 저항했던 노조가
타협으로 돌아서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그러한 독일사회의 독특한 전통과 관습이
경제민주화를 사회주의로 흐르지 않게 만든 힘이었다.
그렇다면,
오늘 대한민국의 경제민주화가 추구하는 결과는 무엇일까?재벌의 개혁일까?
세계 모든 국가의 기업들은
그 나라 사회의 고유한 제도와 법,
더 근본적으로는 정치문화라는 환경에 적응해 진화해 온
사회적 유기체다.그렇기에,
각 나라 기업의 조직과 소유구조-경영방식에는
다른 나라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들을 저마다 간직하고 있다.
한국의 재벌 역시,
그런 [한국적 상황]의 진화물이다.
재벌은
번갯불에 콩구워 먹는 식의 법안 몇 개로 개혁될 대상이 아니라
시간을 갖고 진화시켜야 할 존재다.
다름 아닌 [시장의 원리]에 의해서 말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