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前 在美기자의 기고:
    대한민국 언론의 추락
    ‘윤창중 보도’는 화장실 낙서 수준이다!


    卞鐘和(前 在美기자)    

    나는 어렸을 때 동대문 옆 축대위의 주택에 살았다. 축대 밑에는 공중변소(지금은 공중 화장실)가 있었다. 변소 벽에는 항상 낙서가 쓰여 있었다. 예를 들면 “철수는 영희와 x했다.” 하루에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몇 십 명 정도였을 것이다. 다음날은 다른 낙서가 오르게 마련. 그건 그때 상황. 지금은 어떤가? 공중변소의 낙서와 광화문에서 발행되는 <동아일보>가 동등한 사회적 인용력을 갖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 윤창중 사건을 보도하는 한국의 언론상은 그 전문성의 결여로 말하면 공중변소 낙서 인용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사 작성의 철칙은 ‘정확성’ 이다. 그 정확성을 뒷받침해줄 최소한도의 노력은 ‘2인 확인제’이다. 적어도 두 사람이 현안에 대해 사실 확인을 해줘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에서 나타난 것은 ‘동대문 공중변소’에는 이렇게 쓰였고, ‘서대문 공중변소’에는 이렇게 저렇게 쓰였다는 식의 속보의 연속이었다.

    미국의 법집행 절차에 대한 無知(무지)도 크게 한 몫했다. 워싱턴 경찰이 검찰, 혹은 연방 검찰의 수사지휘를 받게 될 것이라든가 신고는 경범으로 취급되었으나 ‘중범 수준’으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든가, 혹은 신고자가 일반 경찰 전화가 아닌 911으로 신고한 것은 모종의 긴박한 상황이 있었을 것이라든가…. 도대체 한국 기자의 상식의 한계성을 이만큼 단시일 내에 만 천하에 공개한 사건은 전례가 없을 듯하다.

    우선 검찰의 수사지휘 운운 부분. 일반적으로 미국 검찰은 수사를 지휘하거나 수사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수사는 경찰이(연방 범죄일 경우 FBI) 전담하며 수사결과가 검찰에 송부되면 체포 여부를 결정하여 판사가 체포영장에 사인할 때 비로소 한국사법제도의 ‘立件(입건)’이 성립되는 것이다. 그것도 피의자가 처음으로 법정에 출두하여 본인의 유죄/무죄에 관한 진술 (Arraignment)시까지는 ‘피고(Defendant)’가 아닌 ‘피의자(Suspect)’의 신분을 유지한다.

    911 신고가 사태의 긴박성을 암시한다는 소설 같은 기사는 수백만 在美(재미) 韓人(한인)의 苦笑(고소)를 받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미국에 살면서 응급시 911 아닌 경찰번호로 신고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일곱 살짜리 아이들도 아는 사실 아닌가? 미국 어느 곳에서 라도 911을 돌리면 발신지 추적으로 우편번호나 주소 등이 파악되고 따라서 관할 경찰/소방서에 사건이 즉각 배당되는 것이다.  

    연방 검찰이 이 사건을 떠맡을 수도 있다는 보도 역시 무지의 소치라 볼 수밖에 없다. 연방 사법제도는 한 사안에 두 개 이상의 州(주)가 개입되었을 경우, 연방 헌법 위반 행위, 위조지폐, 납치 등 특수 사안에 한해 개입한다. 기타 형사 처리 책임(경범이건 중범이건)은 3심제 주법원의 소관이다.

    ‘성폭행’-이것은 한 웹사이트에 올라온 글이었다. 이것이 핵폭탄의 뇌관이 된 것이다. 성폭행은 일반적으로 강간을 의미한다. 그것에 미치지 않는 행위는 ‘성추행’으로 처리된다. 그런데 미국의 형법 제도는 그 이상의 세분화 된 정의를 내리고 있다. 형사 재판정 입구에 게시된 당일 사안에 ‘강간’이나 ‘성추행’은 없다. 단지 CSC FIRST DERGEE (Criminal Sexual Conduct First Degree)-‘1급 성범죄’로 표기 된다. 사안의 경중에 따라 2~5급 등으로 분류된다. 일반적으로 CSC 1급은 최고 무기형이다. 사형제도가 아직도 존재하는 주에서는 사형까지 언도될 수 있다.

    이번에 처음 제보한 ‘미씨USA’ 회원은 ‘성폭행’으로 글을 올렸다. 한국의 고위 공직자가 인턴여성을 강간(CSC 1급)했다는 내용이었다. 최고 사형 내지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중범으로 신고 된 것이다. 거기에는 강제에 의한 삽입이 따라야 한다. 그냥 엉덩이를 만졌다는 피의자의 진술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일단 ‘강간’의 범주에서는 떠나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보자가 무지의 결과로 CSC 1급의 엄청난 파급 효과를 인지 못했을 가능성을 고려해보고 싶다. 만약 알고도 그랬다면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나는 이 사태가 어떻게 귀결 날지에 대해서는 예측하고 싶지 않다. 단지 한국 언론의 건강, 자정능력, 전문성, 원칙고수 의지 등의 쇠퇴가 심히 우려되는 바이다. ‘발로 쓰는 기사’의 소멸이 안타깝다.  1970년대 미국의 언론계는 사상 최고의 사회적 위상 을 누렸다. 바로 <워싱턴 포스트>誌(지)의 ‘워터게이트 폭로’ 기사로 대통령이 사임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당시 미국 각 대학의 신문학과는 전대미문의 호황을 누렸다. 그 당시 <워싱턴 포스트> 기자 밥 우드워드와  찰스 번스틴은 모든 젊은이들의 꿈이요 우상이었다.

    필자는 당시 20대로 미시간주의 한 지방 신문에서 정치/법원 담당 기자로 근무할 때였다.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후보의 모금을 위한 옥수수 구이 파티가 열렸다. 취재기자는 응당 회비를 안내는 것으로 인식될 때였지만 왠지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 것 같아 회비를 지불했다. 이것이 나중에 민주당 후보측의 신문사에 대한 편파성 의혹제기에 대처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을 보면 정치적 사안이라는 것은 이렇게 사소한 주의력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국뿐 아니고 全(전) 세계적으로 인쇄 매체가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던 신문도 120년의 역사를 접고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내가 작성한 기사 수천편도 현지 공립도서관으로 이관되었다. 내가 쓴 기사를 열람하려면 편당 3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은퇴한 지금  가끔씩 그 기사들을 꺼내보며 취재당시의 열정을 되새겨 보곤 한다. 오늘의 기자들은 그 열정 대신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기민성, 신속성, 네트워킹, 상상력, 그리고 재구성의 괴력….

    이번 사건의 보도행적을 바라보는 그 많은 신문학, 언론학 교수들, 국내 해외에서 많은 연구를 쌓으신 분들, 왜 이리 잠잠들 하신지? 언론자유의 최대의 敵(적)은 외부의 간섭이다. 그러나 그것은 自淨(자정)능력의 확립을 전제로 한 것이다. 自淨능력의 구성 첫 단계로 ‘별표 제도’를 실시함이 어떨지? 호텔업계에서는 이미 全세계 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소비자의 판단을 도와주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가령 <동아일보>는 별 5개, 변두리 주간지는 별 1개. 동대문 공중변소는??

    변 종 화(卞鐘和) cwpyen@yahoo.com

    [필자 프로필]
    1969~1977 미국 미시간주 <입실랜티 프레스>지 정치부 기자
    1977~2006 미국 미시간주 <앤아버 뉴스>지 기자
    -주요취재 보도분야
    각급 지방자치정부, 법원, 연방 범죄 수사기관, 환경문제, 인종관계, 소비자 보호, 노사관계, 각종 선거 취재, 도시계획 및 지역개발 정책, 세금제도, 인구문제, 논설위원실
    2006~현재 Fourth Dimension Initiative (communications consulting) 대표
    2008~현재 Director of Community Relations, The Center for Pan Asian Community Services, Atlanta, GA, USA
    *보도상 AP 보도상, UPI 보도상,  IDPA, Unity, NNA 등 우수보도상 수상
    학  력:서울고, 서울 문리대 영문과 졸업, 미국 시라큐스대학 Journalism 석사

    기  타
    미국연방민권위원회 기술용역제공
    The Korean-American Journalists Association 창립회원
    The Asian-American Journalists Association 회원
    한국신문, 잡지 수시기고
    이중문화, 이중언어 관련 특강실시
    한영/영한 번역, 통역 활동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