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박한철 헌재소장

    "조화와 통합에 중점"


     

    (서울=연합뉴스) 박한철 신임 헌법재판소장은 "조화와 통합에 중점을 두고 국민적 관심 사건을 신속히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박 소장은 25일 '법의 날'을 맞아 연합뉴스·보도채널 뉴스Y와 가진 공동인터뷰에서 "복지와 환경 분야 등의 복잡한 이해관계 대립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조정하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다음 달부터 중요하고 긴급한 사안의 경우 절차를 달리 해 신속히 처리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잇따른 대법원과의 갈등 사례에 대해서는 "대법원이 권한을 넘어섰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박 소장과의 일문일답.

    --헌재 운영의 기본 방향과 위상 정립 방안은.

    ▲오랜 공백과 혼란으로 흔들린 헌법재판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시급하다. 누적된 미제사건을 줄이는 것도 과제다. 국민의 기본권 보호가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겠다. 가장 중점을 두고 싶은 것은 '조화와 통합'이다. 노동·교육·연금 등 복지 분야와 환경 등 영역의 복잡한 이해관계 대립 속에서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조정하겠다.

    --복지나 환경 분야에 중점을 두고자 하는 배경은.

    ▲최근 복지가 국민의 관심사가 되고 정치적으로도 이슈가 됐다. 양극화나 계층·지역·세대간 갈등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헌법소원이나 헌법재판 사건도 늘어나고 있어 앞으로 헌재의 비중은 그런 부분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심판사건 처리가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개선 방안은.

    ▲헌법적 쟁점이 중요하고 긴급한 처리를 요하는 '신중처리사건', 선례가 다수 있거나 각하가 예상되는 '신속처리사건' 등으로 처리절차를 달리 할 계획이다. 검토됐던 사건들은 종전처럼 절차를 밟으면 처리 기간이 길어진다. 트랙을 달리해서 처리기간을 줄이고 중요사건에는 힘을 안배해 더 심도 높게 검토할 계획이다. 연구관과 재판관들의 의견을 수렴해 5월께 제도를 시작하려고 한다. 그런 체제로 연구부를 개편하려고 준비 중이다. 지금은 전속 연구관이 재판관마다 한 사람만 지정돼 있어 연구 지원이 깊이 있게 안 되는 측면이 있다. 전속 연구관을 늘려서 중요하거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건들을 깊이 검토할 수 있도록 하겠다.

    --중요사건은 어떤 것이고 결정은 누가 하나.

    ▲국가적으로 중대하면 특별팀을 만들어서라도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 일차적으로 선임부장이나 수석부장이 검토 단계에서 의견을 낼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주심 재판관이 결정할 것이다. 사건처리 지연에 대해 문제 의식은 갖고 있었는데 그동안 제도적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청문회에서 재판소원(법원의 판결에 대한 헌법소원)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원의 반대가 만만찮은 상황에서 계획은.

    ▲현행 헌법소원 제도는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금지해 사법권은 물론 행정처분에 의한 기본권 침해에 대해서도 권리구제를 받을 수 없다는 비판이 있다. 반면 독일처럼 재판소원을 인정하면 헌재가 실질적으로 제4심이 돼 사법제도의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우리나라의 사법 풍토, 헌재의 여건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면밀하고 신중하게 검토돼야 한다.

    --사실상 4심제 아닌가.

    ▲모든 사건을 그대로 가져가 헌법 측면에서 재검토하면 4심제가 될 우려가 있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 재판소원 사건이 2.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여러 장치로 걸러서 필요한 최소한의 부분만 심사하기 때문이다. 재판소원을 허용해도 전체 사건을 그대로 재심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법원은 최근 헌재의 한정위헌 판결에 대해 '법률의 해석 권한은 법원에 속한다'며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긴급조치에 관한 위헌심사권을 놓고도 갈등을 빚었다. 헌재의 입장은.

    ▲대법원이 조세감면규제법 부칙 23조를 대법원이 유효하다고 판단한 것은 이해할 부분이 있다. 하지만 조세법률주의는 민주주의 국가의 대원칙이다. 법률에 규정이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하는 것은 대법원의 권한을 넘어선 것이다. 지자체 위촉위원을 공무원으로 해석해 뇌물죄를 적용한 판결도 헌법상 죄형법정주의를 넘어선 것이다. 어떻게 보면 대법원이 해석을 통해 새로운 입법을 한 것이다. 법원의 결정은 기본적으로 그 사건에 한해서만 기속력을 갖는다. 헌재만이 유일하게 위헌결정으로 대세적 효력을 발휘한다. 위헌 결정으로 법률을 무효화하면 모든 사람이 적용을 받는다. 다만 헌재와 대법원의 관할은 기관 사이의 권한 다툼이라는 각도로 생각하면 답이 없다. 헌법과 그 원리에 부합하는지 검토해 해결할 문제다.

    --재판관 중에서 소장이 지명될 경우 잔여임기만을 수행하는지 아니면 새로 6년을 하는지의 문제도 불거졌다. 소장은 잔여임기만 수행한다고 했지만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대안은.

    ▲현직 재판관이 소장으로 임명되는 경우 새로운 임기 6년을 보장하는 쪽으로 입법 개선이나 관행 정립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헌법재판소법을 개정해 소장의 임기에 관한 명시적인 규정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행법 아래에서는 재판관이 소장으로 내정되면 사임하고 헌법재판관 겸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서 임명받는 관행을 정착시켜야 한다.

    --지금처럼 대통령이 소장을 지명하는 방식으로는 정치적 논란이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있다.

    ▲이강국 전 소장이 정치기관 간 이해관계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재판관들의 호선으로 선출하는 방법과 국회 재적의원 3분의2의 가중 정족수에 의해 선출하는 방법을 언급한 것으로 안다. 다만 호선제는 현재 방식보다 헌법재판소 구성의 민주정 정당성을 더욱 취약한 구조로 만들 위험성을 가진다는 비판이 있다. 가중 정족수 방식도 정치적인 갈등이 있을 경우 선출이 용이하지 않다는 난점이 있다.

    --헌법재판관 선출방식과 관련해서도 논란이 있다. 조대현 전 재판관 퇴임 이후 계속 재판관 공석 사태를 맞았다. 개선책은.

    ▲장기간 공석 사태는 국가 긴급사태 못지않은 심각한 문제다. 재판관의 일시적 유고 상태는 있을 수 있어도 장기간 공백이 있으면 국민의 다양한 의사를 반영하지 못하는 결과가 된다. 공석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임기가 끝난 재판관이 후임 재판관 선출시까지 임시로 재판에 임하도록 할 수 있다. 임기만료 후 2개월 이내에 후임 재판관이 선출 또는 임명되지 않으면 헌재에 재판관 추천권한을 부여해 선출을 간접 강제하는 방안도 있다. 이는 모두 헌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이다. 정치권이 문제의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헌법재판관이 고위 법관 또는 검사 출신으로 채워져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는 지적이 있다. 헌재의 존립 목적상 이런 재판관 구성은 한계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모든 사안을 이른바 보수 또는 진보 일색으로만 바라보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재판관들도 마찬가지다. 재판관들은 오로지 헌법 원칙과 법 원리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개인의 기본권이 부당하게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만 앞으로 재판부를 보다 다양하게 구성할 필요는 있다. 재야 변호사, 여성은 물론 다양한 학식과 경험을 가진 비법조인 중에서도 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법원에 비해 헌재의 연구관 수가 적고 재조 경력이 짧아 경쟁력이 다소 뒤처진다는 평가가 있다.

    ▲대법원은 이미 상당한 경력을 가진 숙련된 판사들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데 비해 헌재는 신임 연구관을 선발해 교육시키는 일도 병행한다. 헌법재판에는 늘 새롭고 다양한 시각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최근 사건이 증가하고 사회 변화에 따라 새로운 유형의 사건 및 다양한 쟁점들이 제기되고 있어 연구관 인력을 확충하고 역량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는 점은 공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