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골부대의 전신인 ‘서북청년단’의 상징 해골을 부대마크에
  • “이걸 보면 MB정부의 군대는 70년대 유신시대 수준이다. 멸북통일은 말 그대로 우리의 적이 북한군이 아닌 북한주민 모두를 포함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으며 헌법정신에도 위배된다. 우리 군의 대북관이 얼마나 구시대적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 10월 17일 ‘막말 변태의원’이라는 별명이 붙은 김광진 민주통합당 의원이 한 말이다. 

  • ▲ 육군 백골부대 정문에 붙은 구호. 김광진 민통당 의원이 문제 삼았던 부분이다.
    ▲ 육군 백골부대 정문에 붙은 구호. 김광진 민통당 의원이 문제 삼았던 부분이다.

    당시 김 의원은 ‘멸북통일 최선봉 천하무적 백골사단, 북괴군의 가슴팍에 총칼을 박자!’라는 구호에 경기를 일으키다시피 하며 비난했다.

    이 백골부대가 6.25전쟁 당시의 부대 상징을 되찾게 됐다. 바로 ‘해골’ 마크다.

    육군 백골부대는 3일 새로운 부대마크를 공개하고 관련행사를 가졌다. 새로운 부대마크는 기존의 삼각형 안에 별이 3개 그려진 마크 중앙에 백골을 넣은 것이다. 

  • ▲ 3일 육군 백골부대가 새로 공개한 부대마크. 북한군이 기억해야 할 마크다.
    ▲ 3일 육군 백골부대가 새로 공개한 부대마크. 북한군이 기억해야 할 마크다.

    부대 측은 이번의 부대마크 변경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부대를 거쳐 간 지휘관이나 장병들이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최전방 부대로서 마크가 용맹성을 나타내지 못해 개선해야 한다는 건의가 계속돼 이번에 마크변경을 결정한 것이다.”

    부대 마크에 백골을 넣은 건 ‘죽을 각오로 싸우면 반드시 산다’는 필사즉생(必死則生)의 정신, ‘죽을 수는 있어도 패할 수는 없다’는 수사불패(雖死不敗)의 정신을 담은 것이라고 사단 관계자가 설명했다.

    백골부대는 1947년 12월 1일 부산에서 조선경비대 3여단으로 창설됐다. 여기에 서북청년단원들이 대거 몰려 들었다.

    6.25전쟁 직전 서북청년단원들이 '백골이 되어서라도 고향을 되찾겠다'는 각오로 철모에 백골을 그려 넣으면서 백골부대라는 이름을 얻었다. 1950년 10월 1일 백골부대가 최초로 38선을 넘어 북진하면서 이날을 '국군의 날'로 정하게 된, 전설적인 부대이기도 하다.

    1973년 3월 7일에는 북한군이 훼손한 휴전선 남방한계선 표지판을 수리 중이던 우리 장병들을 향해 북한군이 총격을 가하자 사단 예하 포병대가 북한군을 향해 포격, 36명을 사살하기도 했다.